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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Jan 25. 2017

미술과 뇌과학에서의 환원주의 - 에릭 칸델

2017.1.19(CHAPTER.3) Lecture

노벨수상자 에릭 칸델(Eric Kandel)의 무료특강이 지난 1월 19일 쿠퍼 유니온 대학 퍼블릭 프로그램의 주최로 열렸다. 그의 신간 <Reductionism in Art and Brain Science>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에서, 우리가 미술작품을 경험하고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살펴보는 방법을 어떻게 과학이 알려줄 수 있는지 설명한다. 그는 어떻게 환원주의(Reductionism: 보다 거대한 과학적 혹은 미학적 컨셉을 축소하여 보다 다루기 쉬운 요소로 증류하고 걸러내는 법. *과학철학에서 환원법은 1) 관측하지는 않았으나 그 일이 일어날 법한 가능성이나 성향이 이론적으로 있는 성질들의 정의나- '비 관측 가능적', 2) 실제로 관측이 가능한 성질들의 용어로써 실체들을 설명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혹은 한 이론의 설명 혹은 법칙들의 설명에 있어서 보다 기초적이고 근본적이며 혹은 보편적인 용어로써 정의나 실체를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과학사사전(2001) 참조)이 과학자들과 예술가들이 그들 각자의 진실들을 추구하기 위해 이용되어져왔는지 예를 든다.


지난 1월 19일 Cooper Union Arts & Science Hall


칸델 박사는 고등생물 정신과정의 복합 작업을 명백히 알아내기 위해서 해양 민달팽이(괄태충)의 학습과 기억 능력을 신경생물학적으로 마치 강력한 역회전 변화구를 던지듯 밝혀내 2000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은 이력이 있다. 그는 상향식(bottom-up) 지각과 하향식(top-down) 인지기능을 통하여, 어떻게 과학이 인간 지각의 복합성을 탐구하고 명작들을 이해하고 감상하고 지각하는데 과학이 도와주는지를 입증한다. 칸델은 폴록, 드 쿠닝, 로스코, 루이스(Louis), 터렐(Turrell), 플라빈(Flavin) 등의 전후(post-war) 세대가 추상표현주의에 도달하기 위해서 사용한 환원주의적 접근법을 설명하고, 어떻게 카츠(Katz), 워홀, 클로즈(Chuck Close), 샌백(Sandback)이 구상미술과 미니멀아트를 재구축(reimagine - 동일한 것을 가져오되 배경을 바꾸어버리는 생각의 전환)하여 뉴욕파의 진보를 이루었는지 설명한다.

에릭 칸델은 현재 콜롬비아대 신경과학부, 생화학과 분자생물 물리학, 정신의학부 교수로 역임 중이며 카블리 뇌과학 연구소(Kavlli Institute for Brain Science) 소장이다.



미와 뇌에 관해 논하다


아플리시아라는 해양 달팽이는 단순 개체이므로 신경수신행동(neuro-receipient behavior)을 살펴보기에 용이하기 때문에 칸델이 뽑은 연구대상이었다. 이 생물은 Mantle, gill, siphon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사이에서 단기 기억과 장기기억이 저장되어 학습이 이루어진다. 강의 초반은 인본주의적 학습과 기억에 관해 과학적인 접근으로 설명하였고, 후반은 환원주의적 접근을 하며 미술작품들을 예로 들어 예술과 뇌과학 간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내 일러스트 Homunculus]

피아노 연습의 경우 일정한 반복을 통해 신체 기억을 저장시킨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이르기를, 숭고미(*숭엄미 [崇嚴美, Sublime] 위대한 문학작품의 특징이 되는 고결한 사상·감정·정신. 숭엄(숭고)이라는 용어는 통상적으로 위대한 것에서 느끼는 사람의 경이로움과 외경(畏敬)을 표현할 때 쓰이는데, 우미(優美)와 더불어 가장 훌륭한 미적 범주에 속한다. 문학비평용어사전(2006) 참조)는 절대적으로 위대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아름다운 것(beautiful)과 숭고한 것의 차이는 확연히 차이점이 있다고 구분하였는데, 경계(boundaries)들을 가지며 오브제의 형체들로 연결된 것이 아름다움이라면, 숭고미는 형체가 없는 오브제로 발견되며 무경계(boundlessness)로 표현된다.





Imagination filling the details


JMW Turner의 Calais Pier(1803)라는 작품과 Snow Storm(1842)라는 작품을 비교해보면, 전자는 사람과 사물을 현실적으로 표현하는 구상미술 버전이며 후자는 추상미술이다. 주제는 같으나 표현법이 다르다. 실제와 최대한 비슷한 상(image)을 구현한 것을 볼 때, 우리의 뇌는 인지활동을 활발히 할 기회가 비교적 줄어들게 된다. 생략된 것들, 뒤에 감추어져 있는 것들을 세부적으로 상상할 때 창조력이 증진되는 것이다.


칸델 박사의 강의를 들으면서 창의력과 연결성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창조성이란 연결 짓지 못했던 분리된 두 개념을 하나의 공통된 주제로 통합하여 연결 짓는 것이기도 하다. Creativity is Connectivity! 


위대한 명작은 모호하다(Great Art is Ambiguous.) 
- Ernst Kris (1900)


Aloiis Riegl (1858-1905)의 "Beholder's Share"

환상(Illusion)이란 보는 자의 반응에 따른, 창조성을 연구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 Ernst Gombrich (1909)


탑다운/바텀업(상하향식) 인지력(Helmholtz)을 시험해 볼 수 있는 Kanizsa Square가 여기 있다. 검은 사각형이 보이는가? 아니,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텀업 프로세스의 실패를 입증하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에릭 칸델의 글 (2013. 4. 14)

http://www.nytimes.com/2013/04/14/opinion/sunday/what-the-brain-can-tell-us-about-art.html





Willem de Kooning, Excavation, 1950.


어느덧 강의는 후반에 접어들었다. Clement Greenberg 추상표현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칸델은 액션 페인터 W. de Cooning과 J. Pollock을 논했다. 큐비즘에서 (<휘트니 미술관> 편에서 소개했던 쿠닝을 기억하는가? <MET Beurer> 편에서 보여드렸던 쿠닝의 초기 여인작을 기억하는가?) 초현실주의로 그리고 추상표현주의로 작품세계를 펼쳤던 쿠닝은 특이하게 <excavation> 작품 이후에도 다시 구상미술로 재방문하기도 하였다. 그림 속에서 그의 붓터치는 시각적으로도 그 속도가 느껴진다. 한편, 잭슨 폴록도 구상미술(말 그림, Lee Krasner와 함께 하는 티타임)에서 추상미술(블루)로 가는 과도기를 겪었다. 대중이 익히 알고 있는 드리핑 기법은 무의식의 세계를 보여준다. 질답 시간에 누군가가 폴록의 작품에서 어떻게 무의식을 분석할 수 있냐고,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냐고 물었는데 칸델이 아몰랑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러자 질문자가 다시 심리치료사이고 정신의학자여서 혹시나 하고 질문했다고 하였다. 하!






I'm not an abstractionist. I'm not interested in the relationship of color or form or anything else. I'm interested only in expressing basic human emotions: tragedy, ecstasy, doom, and so on.
- M. Rothko


대학원 2학년 과정 때 로스코에 대한 중독 치료 페이퍼를 썼다. 시각적인 단어를 줄이고 기하학적인 추상을 탐구한 로스코. 그의 후기 색면 작품들은 영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특히 예배당에 걸려있어서 기독교나 천주교적 성격으로 바라보았는데, 칸델의 강의를 들으니 보다 불교적 명상(Buddist Meditation)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 편은 히말라얀 아트 중심의 <루빈 미술관>) 






모리스 루이스(Morris Louis, 1912-62, 메릴랜드 출생)는 베일 Veils, 펼쳐진 Unfurled, 스트라이프 Stripes series 세 가지 연작들이 유명하다. 이외에도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척 클로스(Chuck Close)들이 있다. 왜 미술에서 (추상표현주의에 이은 색면 사조 등 복잡한 시각 요소들을 점점 줄이고 줄이는) 환원주의가 성공하고 있는 것일까? 잠깐 그의 강의를 벗어나 최근에 우연히 읽었던 좀 더 쉬운, 혹은 좀 더 다른 접근의 잡지 기사 한 꼭지 들춰보고 가고 싶다.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2011&contents_id=112846


앤디 워홀에게 영향을 끼친 알렉스 카츠(Alex Katz, 1927)는 사라, 안나 윈투어 등의 초상화를 단순하지만 아름답게 그렸다. 미술의 중심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간 현대에 바로 Beholder's Share의 인지신경을 발전하기 위한 시도의 첫걸음이 있었다(construal lev theory, Trope and Liberman, 2010). 




질문을 받고 있는 칸델 박사


많은 질문자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개중에는 질문자 스스로도 갈팡질팡하여 혼란스러워하는 점도 있었고 칸델 박사도 정확한 답을 위해 질문을 재차 확인하였다. 마음이 아팠던 점은 아마 나도 영어 발음이 그리 좋지 않기에 공감되었을 터인데, 한 여성이 강한 인도 영어 악센트를 쓰자 강연자는 못 알아듣고 다른 사람이 반복해주었던 것이다. 왜지, 자기 학부에 인도 학생들 많지 않나? 미국에서 가장 유학생이 많은 대학교 4위가 콜롬비아대이고 미국대학에 재학중인 인도유학생이 국가별 2위(1위 중국 3위 한국)를 차지한다는데 쩝..ㅜㅜ

질문자 중에 누군가 미스터 캔들이라고 불러서 어디선가 낄낄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스트리아 유태인 출신으로 나치를 피해서 미국으로 건너 온 분이라 본 포스팅에서의 이름은 칸델이라 고집했다.)


좋은 질문은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발전시키게 하는 아주 중요한 토론의 기회를 양성한다. 또한 심리치료/상담사로서는, 적절한 질문을 통해 내담자가 스스로 답을 찾게끔 도와주는 질문자의 역할을 한다. 한국의 내담자들은 조언을 받기 위해 상담사를 찾게 되는데 무언가 자신이 모르는 지식과 답을 얻어가려는 기대가 있다. 교육의 장에서 보면 상담사는 교사, 내담자는 학생의 위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담자 자신만의 일, 사건, 성격, 신념, 인생인데 누구에게 답을 구하는 것일까? 다시, 교육으로 비유해보자면 상담사는 학생, 내담자는 교사, 이러한 관계도가 더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담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보이는 반복 행동 패턴을 통해 성격과 신념을 상담사에게 학습시켜 준 후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면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상담가는 질문을 하는 학생이다. - 물론 여기서 기본 치료적 접근법은 내담자 중심주의(Client-centered, Person-centered therapy)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중 몇 개 흥미로운 질문들이 있었다. 1) Beholder's Share(관찰자의 공유)라는 개념은 지식(intellectual  knowledge)과 경험의 체득에 비례하는가? 작품들을 더 많이 보고, 전문적/학술적인 미술교육을 훈련받으면 볼 수 있는 것들이, 알게 되는 것들이 더 많은가? 당연히 그러하다고 박사는 답한다. 필자는 이것이 바로 전에 언급한(네모 안에) 인간 중심적 접근 이론과 방향을 같이 한다고 생각했다. 보는 자, 받아들이는 자의 기존에 구축된 내면적 배경(지식 - 이것은 학식일 수도 경험일 수도 있다)에 따라 주관적인 세계는 변화한다. 다시 말하면, 직접적이고 노골적이고 사실적이며 설명적인 구상미술을 볼 때 우리는 메시지를 도식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것은 사람, 이것은 집, 이것은 나무, 이것은 우산. 더 이상의 해석의 여지는 있을까? 그러나 모호하고 간접적이며 추상미술을 볼 때에는, 보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그 해석의 가능성이 열려있고 무한한 것이다. 


디테일을 감소시키는 것이 뇌가 스스로 더 많이 활성화하도록 조장하는 것


또다른 질문. 2) 뇌의 성숙도 혹은 나이듬(aging)에 따라 뇌 활성과 '관찰자의 공유법'이 어떻게 다른가? (님아 그건 개체차가 크겠지..) 칸델은 노인보다 아동이 조금 더 활성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는데, 내 생각은 아무래도 교육과 선입견(preconception)에 적게 노출되어 그들의 창조력이 개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초입에서 언급했다시피 창조성은 연결성이기도 하다. 서로 전혀 다른 분야의 개념들을 잇고 새로운 것을 창출하기에 보다 (많이 보고 많이 접한) 성숙한 뇌가 유리할 수도 있으므로 뚝 잘라서 어느 쪽이 더 좋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 현재 필자가 연구 중인 논문 주제가 바로 미술치료에서 신참 치료자와 경험 치료자와 문외한(이지만 예술가)을 결과물을 비교 분석하는 중에 있다. 진행을 할수록 증거기반의 연구가 과연 이 분야에서 가능할까라는 회의도 있는데, 다음 두 질문을 보면 더욱 그렇다.


3) 모든 사람이 추상화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하고 연구결과에 의문을 제기. 넷플렉스를 보며 즐기는 대중들이 순수 추상미술보다 많은 것을 보면. 칸델은 이에 동의하며, 사람들 마다 다른 것이고, 구상과 추상은 스펙트럼이라고 말했다. 자, 나의 회의는 이 '사람들 마다 다른 것'을 일반론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심리학이라는 데에 있다. 각설하고, 나는 우리 인간이 인지적으로 얼마나 게으른 동물인지 다시 한번 상기했다. 뇌 활성화에 드는 에너지는 상당하기 때문에 생각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우리는 익숙한 습관을 따른다. 훈련과 학습을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 질문은 보다 흥미로웠다. 4) 인지기능 저하인 치매 환자들이 높은 인지능력을 요구하는 추상화를 감상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미술치료 실제에서도 치매 환자들이 추상화를 직접 그리기도 하고 물론 구상/조형화를 그린 것도 보았다. 그러나 추상화를 그리는 것이 신체능력(시각 혹은 손 운동/소근육)의 상실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c) June


마지막으로 5) 미술 이외에 문학 등 다른 예술분야에서도 환원주의가 일어날까?라는 질문도 흥미로웠고, 말더듬이 환자가 노래를 부를 때 유창하게 하는데 뮤지컬처럼 말하는 것은 가능할는지(예전에 TED에서 짧은 연설을 본 기억이 있는데... 못 찾겠음), 공감각적(synnesthesia) 감각에 대해서도 질문이 오고 갔다. 다음날 지인과의 대화에서 그가 음악치료 회기 때 쓰는 짧은 테마를 작곡하여 들려주었는데 그것이 마치 드뷔시(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의 창시자) 풍이어서 우리는 토론을 이어나갔다. 미술(회화) 사조에서 음악에 도입된 양식이 많은데, 칸딘스키 등으로 대표되어 회화분야에서 일어난 표현주의 운동 역시 음악분야에 파급되어 쇤베르크 등의 표현주의 음악이 전개되었다. 이후 가구 음악, 무조음악, 앰비언트 등으로 볼 때 이러한 환원주의가 음악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실로 보인다.


 

(c) June






+ 쿠퍼 유니온 내부에는 처음 들어가 보았는데, 화장실이 남녀 구분이 아니라 심지어 보통 뉴욕에서 발견할 수 있는 남녀공용(우리 학교도 for all gender)도 아니라 소변기, 세면대 있음  VS 좌변기, 세면대 있음이라고 되어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제 3의 성들을 위한 민감하고도 사려깊은 배려.



참, 칸델 박사는 또 현재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하는 막스 베크만 개인전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https://brunch.co.kr/@junearttherapy/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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