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소치의 숨은 매력
아들레르 구역에서 차로 30분 남짓을 가면 크라스나야 폴라냐에 닿을 수 있다. 크라스나야 폴라냐는 일종의 산악 지역으로 해발 2,000미터 정도 되는 봉우리들이 일군을 이루고 있어 매력적인 풍광을 만들어 낸다.
가장 인기있는 구간은 로자 후토르쪽에서 로자 피크까지 이어지는 곳으로 케이블카를 두번 정도 갈아타는 코스이다. 생각 보다 케이블카로 오르는 구간이 길고 또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에 긴장이 많이 되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손의 땀이 많이 나는 순간들이었는데 아내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같은 케이블카에 탄 러시아 아주머니와 다른 러사아 동승객들이 하라쇼!(괜찮다)라는 말을 해주며 우리를 달랜다. 겁쟁이인 우리 덕분에 다른 동승객끼리도 동질감이란 것이 생겨버렸다. 그리고 그 덕에 우리는 공포감을 덜 수 있었다.
중간 기착지인 산중턱에서 잠시 경관을 즐겨보기로 했다. 그래도 케이블카를 타고와서 그런지 꽤나 시원한 풍경이 펼쳐졌다. 어린 시절 알프스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알프스 못지 않은 멋진 장관이다. 러시아인들에게도 보기 드문 풍경인지 다들 연신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우리들도 그들 중 하나였고.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산 꼭대기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전날 비가 오기도 하고 산 꼭대기에 운무가 펼쳐져 있어 사실 탁트인 시야는 포기했다. 그래도 기왕 여기까지 온 것이니 정상은 찍고 내려오자라는 마음으로 일정을 진행했다. 역시나 정상은 안개가 껴있어 시야를 답답하게 가렸다. 러시아의 대자연은 자신의 매력을 쉽게 허락하지 않을 모양이다. 가끔씩 안개가 걷히는 짧은 순간에만 이곳의 신비로움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마치 북유럽신화의 트롤이 나올 것 같은 배경이었다. 물론 날씨가 좋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 이 분위기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이 넘쳤다.
산 정상을 산책하듯 걸으니 야생동물을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무시무시한 곰이 그려져있어서 모골이 송연했다. 걷다가 곰을 만나면 죽은 척을 해야하나? 아 그러다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등등 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익숙한 동물의 울음 소리를 들었다. 소의 울음소리다. 안개로 인해 처음에는 인식하기 어려웠지만 안개가 조금 걷히고 보고 소 떼들이 산 정상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대관령 목장이 생각난다. 표지판에서의 야생동물이란 이 친구들을 말한 것이었나라는, 시덥지 않은 생각도 들었다. 사실 크라스나야 폴라냐에도 곰이 살기는 한단다. 명불허전 곰의 나라인 러시아다. 하지만 곰이 관광객들이 많은 이곳까지 출몰할 일은 거의 없겠지.
산 정상이라 계속 추위에 떨 수는 없어 정상에 위치한 식당에 들어갔다. 산 아래는 여름이지만 산정상은 고도 때문인지 늦가을 날씨다. 식당에 들어가 메뉴판을 보니 역시나 비싸다. 식재료 운송비 탓이겠지. 그래도 점심 때고 간만에 기분 좀 내자 싶어서 이것 저것 요리를 시켰다. 이곳의 달팽이로 만든 에스카르고와 흑해에서 잡은 생선 구이를 주문했다. 산과 바다의 조합이다. 산과 바다가 멋지게 어우러진 소치를 식탁에 재현하리라! 물론 몸을 데워 줄 따뜻한 차도 함께다.
한 차례 식사를 마치고 난 다음에도 안개가 걷히지 않아 미련을 접고 산 아래로 내려간다. 20대였다면 적잖이 짜증이 났을 상황이지만 그래도 나이가 조금 먹었다고 담담하다. 내 뜻대로 안되는 일이 어디 한두가지일까. 안되는 일에 성을 내면 나만 힘들다. 포기에 담담해져야 인생이 편해진다는 것을 매일 실감한다. 아둥바둥 사는 것은 20대때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