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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넙죽 Jun 16. 2018

앵글로색슨 이전의 역사

스톤헨지와 바스

켈트인이 남긴 거석, 스톤헨지


  영국에 오면서 너무나 오고 싶었던 곳이 스톤 헨지였다. 우리나라 강화도에 있는 고인돌과 비슷한 모양의 거석들. 그러나 유력자의 무덤이라고 확실히 알려진 고인돌과는 달리 이 스톤헨지는 어떤 목적으로 세워졌는지 아직까지 미스터리이다. 혹자는 스톤헨지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세워졌다며 스톤헨지가 일종의 천문대 같은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고인돌과 마찬가지로 유력자의 무덤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스톤헨지가 켈트인에 의하여 세워졌다는 것이다. 켈트인들은 아주 먼 옛 지금의 잉글랜드 땅에 거주했었던 민족이다. 이들은 몸에 문신을 하는 풍습이 있었고 전차를 사용할 줄 알았으며 자연을 존중하는 드루이드교를 믿었다. 사실 이들은 프랑스에 거주했던 골 족과 같은 핏줄이다. 그리고 로마인들에게 정복당했던 골족처럼 이들도 로마인들과 처절하게 싸우다 잉글랜드 땅에서 밀려났다. 잉글랜드 땅에서 밀려난 이들은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 쪽으로 이주했고 지금의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인의 조상이 되었다.  비록 잉글랜드에서 밀려나긴 했지만 켈트 족은 잉글랜드에  스톤헨지라는 엄청난 유산을 남겼다. 비록 힘에 의해 밀려나긴 했지만 그들 역시 잉글랜드의 주인이었다는 것을, 문명을 꽃피웠다는 것을 잊지 말아 달라는 듯이.


스톤헨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순례의 길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웅장한 느낌의 거석, 스톤헨지


로마인의 목욕탕, 바스


 런던에서 동쪽에 위치한 곳에 바스라는 도시가 있다. 영어의 뜻 그대로 목욕탕이라는 뜻을 가진 이 도시에는 로마인이 남긴 목욕탕인 로만 바스가 있다.

 

  로마인들이 잉글랜드에 온 것은 갈리아 원정을 마친 카이사르가 바다 건너 영국  땅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 이후 점차 잉글랜드 땅에 세력을 확장하며 잉글랜드의 주인이 되었다. 잉글랜드에 남았던 켈트족들도 점차 로마 문명에 동화되어 로마화 되었다. 잉글랜드는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로마화 되지 않은 스코틀랜드와의 경계에 하드리아누스 장벽을 세웠다. 이 때문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차이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로마화 된 잉글랜드 지역엔 로마의 목욕탕이 지어졌다. 로마인들에게 목욕탕이란 단순히 몸을 씻는 장소만은 아니었다. 그곳은 일종의 복합시설로 목욕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운동도 하는 사교의 장이었다. 심지어 신전과 같은 종교시설도 구비했다. 때문에 로마화 된 지역엔 그들의 목욕탕이 들어섰다. 그곳에 이주한 로마인과 로마화 된 선주민들을 위해. 로마식 목욕탕이란 다시 말해 로마화 그 자체였다.

 

바스의 정면
로만 바스의 내부


사람은 사라져도 문명은 남는다


 로마인들이 물러간 자리에 게르만 족의 일파인 앵글로색슨 족이 자리 잡는다. 그리고 그들은 이후 이곳 영국 땅의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잉글랜드라는 지명도 그들이 사는 땅이라는 뜻이다. 물론 그들 이후 이 땅의 지배자가 바뀌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바이킹 일파인 데인족이 주인이 되기도 하고 노르만 족이 주인이 되기도 했다. 수많은 민족들이 영국을 거쳐갔지만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것은 나름의 문명을 발전시켜 그 흔적을 남긴 민족들이었다. 사람은 사라져도 그 사람이 남긴 것은 사라지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된다. 나도 언젠가 이 땅을 떠날 때 누군가에게 기억될 무엇인가를 남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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