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조리도구 리뷰
행켈 프렌치 나이프
길이:210mm
나머지 상세 정보 모름 (기억 안 남)
내가 돈 주고 구매한 첫 번째 나이프
나의 조리과 대학생 시절은 지금과 다르게 한국에서 쉐프나이프에 대한 정보나 구매처가 전무하던 시점이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기도 아니어서 검색을 해도 나오는 자료는 없었고 전반적인 양식 조리 도구 자체를 구하기가 힘든 현실이었다.
학교에서 신입생 때 받은 피카소 나이프의 칼과 손잡이 연결 부분이 두 동강 난 후 '나도 내 칼이 필요해!'라고 생각을 하고 백화점 가서 고민 고민하다 고른 제품이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지금은 내가 싫어하는 칼의 요소가 거의 다 들어가 있다. 이게 첫 칼이라서 그 반발심으로 생긴 건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경험에 의해서 그렇게 된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행켈의 나이프는 우선 디자인상 프렌치 나이프이다. 쉐프나이프(규토)와의 가장 큰 차이는 칼코(칼끝) 부분의 라인이 높게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부분은 밀어썰기를 할 때는 특유의 라인으로 인해 편하게 작용하지만 칼코의 끝을 활용해서 섬세하게 칼집을 주는(ex: 양파 다이스시) 상황에서는 일반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칼의 두께가 무지하게 두껍다. 직접 정확히 두께를 재보지는 않았지만 칼등이 3mm 정도 되는듯하다. 그 당시 그 두꺼움에 스트레스를 받아 어떻게든 얇게 만들려고 면 전체로 밀었던 숫돌 연마흔이 아직도 보인다. 속칭 thining 작업을 한 것이다. 이 당시 칼 연마를 시작하면 평균 2시간 정도의 시간을 사용하였다.(참고로 지금은 칼과 숫돌이 닫는 면에 각도를 주어서 5분이면 끝낸다) 그런데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칼 두께가 저러하다. 정말로 허무할 정도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시미(횟칼) 보다 넓은 면적을 평도 안 잡힌 1000방짜리 물숫돌로 난리를 쳤으니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왔을리가 없다.
참고로 말하자면 두꺼운 칼을 얇게 하려는 이유로 면을 전체로 연마할 바에는 그냥 얇은 칼 사면된다. 숫돌값+칼 강재값등 돈 낭비, 시간낭비, 노력 낭비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연마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이 없었으며 다른 브랜드의 얇은 칼을 구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칼의 무게 밸런스가 극단적으로 손잡이에 쏠려있다. 이는 실제 무게에 비해 더욱 무거움을 느끼게 하는 원인이며 손목의 피로도는 올라가지만 절삭력은 비례하여 올라가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손잡이 볼스터(손잡이와 칼날의 접합 부위 쪽) 부분이 튀어나와있다. 이것이 대부분의 요리사가 프렌치 나이프를 기피하는 1순위 원인이다. 연마 시 볼스터의 부분이 걸려서 날의 끝부분이 과도하게 움푹 파이게 된다. 그 당시 엄청 조심하면서 갈았지만 결국 저런 파임 현상을 피할 수 없었다. 볼스터가 있는 칼 전용 연마법이 있긴 한데 그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반 칼 가는 식으로 갈다가는 볼스터 주변의 날이 패이는 현상은 계속되고 결국 칼 수리의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프로에게 크게 필요 없거나 불편하다고 느끼는 점들이 가정에서 일반인들이 쓰기에 매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써는 방식은 밀어썰기이며 칼코 등을 활용하는 섬세한 요리는 많이 안 한다. 칼의 두께가 두껍고 칼 재질 자체가 질긴 편이라서 냉동육 등을 아무리 잘라도 날이 멀쩡하다. 집에서 다용도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소리이다. 극단적으로 손잡이 쪽으로 쏠린 무게 밸런스는 칼을 바닥에 놓쳤을 시 칼날이 아닌 손잡이부터 바닥에 떨어지므로 혹시 모를 사고를 안전하게 예방해 준다. 튀어나온 볼스터 부위 덕분에 손을 잡을 때 안전하고 날카로운 끝쪽 부분에 손을 베일 염려가 없어진다. 어차피 집에서 칼은 숫돌이 아닌 동전 칼갈이로 하면 된다. 이 칼은 프로가 대상이 아니라 가정에서 요리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나온 칼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집에서 편하게 쓸 첫 번째 칼이 필요하다면 행켈을 추천한다. 어떠한 단단한 재료도 커버하는 칼날, 안전한 디자인 등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현재 나도 집에서 막칼로 매우 잘 쓰고 있다.
오해를 하면 안되는 점은 프로 요리사중에서도 프렌치 나이프를 사용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는 점이다. 그런분들은 기계등을 이용해서 볼스터 부분을 최대한 밀어버린다던가 아니면 볼스터를 피해가면서 연마하는 방법을 익힌다. 혹은 나이프 리페어 전문가에게 부탁하여 칼을 수리하여 사용한다. 본인의 마음에만 들면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디자인이라도 좋은법이다.
*이 글은 제가 구매한 제품을 제가 가지고 있는 기준에 따라 리뷰하는 글입니다. 제 칼. 제 기물이 아니면 아니라고 분명히 명시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