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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욱 Oct 16. 2020

압력밥솥에 대한 이해

한국인의 밥상을 책임지는 기물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좀 덜하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 식사의 기본은 밥이다. 그런데 그 밥이라는 것은 ‘잘’ 만드는 난이도가 보통이 아니다.  


 전업주부는 매일같이 밥을 한번 정도 만든다. 30년 이상 경력의 주부라면 대충 1년에 300번이라고 계산해도 9000번 이상은 해봤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은 쌀밥이 되고, 어느 날은 쌀밥이 질다. 분명히 물을 같은 높이로 맞추었는데 최종 결과물은 들쭉날쭉하다.  

(출처: cj 마켓) 햇반은 최대 장점은 그 일관성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  밥짓기가 쉬웠다면 이정도 인기를 끌었을 수 있었을까?




제대로 만들기 힘든 음식 '밥'


 사실 밥이라는 게 레시피만 확인해 보면 힘든 음식이 아니다. 밥을 잘 물에 씻은 후 채에 받쳐 물기를 제거한다. 그 다음에 밥과 물을 1:1 비율로 넣고 조리하면 끝난다. 그런데 왜 결과물은 항상 천차만별일까?  


 그 가장 큰 이유는 밥이라는 것이 다른 요리와는 다르게 한번 재료를 설정하면 중간에 수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요리는 같은 레시피로 요리를 해도 결과물이 미세하게 다르게 나온다. 그 이유는 그날 식재료의 컨디션, 가스불 등의 미묘한 화력, 집안의 습도 등등 샐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불고기를 하다가 간이 안 맞으면 간장을 더 넣는다. 농도가 질다면 약간 더 졸인다. 너무 졸여졌으면 살짝 물을 더 넣으면 된다. 즉 미묘한 결과물의 컨트롤이 가능하다. 하지만 밥은 조리가 들어간 순간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어떠한 추가적인 조리가 불가능하다. 이건 쌀밥이라는 조리법 자체가 그렇기도 하고 대부분의 쌀밥이 압력밥솥에서 만들어 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압력'밥'솥이라 불리는 기구


 ‘한국 가정 만의 가장 필수 적인 조리 도구가 무엇일까요’라고 누군가 물어보면 나는 압력밥솥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밥이라는 음식은 쌀의 사용량이 확연히 줄은 요즘도 한국인에게 빼놓을 수 없는 기본 중 기본 음식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집 하나당 하나씩은 있는 기물이다.


 압력''솥은 이름부터 밥과 연관이 있다. 압력솥이 아닌 압력''솥으로 부르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기구 명칭에 '밥'이 들어간다. 적어도 서양에서는 high pressure cooker라고 하지 high pressure 'rice' cooker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이점만 봐도 한국에서의 압력밥솥은 다른 쿡웨어와는 다른 큰 위상을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압력밥솥에서 만든 밥은 일반 냄비에서 만든 밥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결과물을 자랑한다. 그래도 요즘은 전기압력밥솥인 쿠쿠와 맛있는 간편식인 햇반이 나와 필수까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시절만 해도 매일 먹는 쌀밥의 퀄리티가 확연히 바뀌는 데다가 가격도 크게 비싸지 않아서 집집마다 압력밥솥은 기본 중 기본 아이템이었다.  



압력밥솥의 원리와 결과물의 차이


 압력밥솥은 프랑스에서 처음 개발되었다. 그 이름은 cocotte minute이다. 어? 꼬꼬떼? 그 르쿠르제 주물냄비? 맞다. 압력밥솥은 꼬꼬떼에서 더 큰 압력을 견딜 수 있게 개발된 제품으로 ‘꼬꼬떼에서 할 요리를 몇 분이면 끝낸다’라는 의미로 이름이 지어졌었다.  

꼬꼬떼의 기본원리는 압력 밥솥과 동일하다. 단 압력밥솥의 압력이 훨씬 더 커서 끓는점이 더 높은 것이다.



 압력밥솥의 원리조차도 꼬꼬떼와 비슷하지만 조리 능력 자체는 더 강력하다. 압력솥은 냄비에 증기를 가두어 내부 압력을 증가시킨다. 압력이 높아질수록 물은 더 높은 온도에서 끓게 된다. 내부의 압력을 대기압보다 높게 올려 물이 120도 정도로 끓게 한다. 거기에 수증기의 밀도도 높아져서 열이 전달도 잘 된다. 이로 인하여 더 짧은 시간 안에 재료를 익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압력밥솥은 어떻게 보면 자연법칙을 위반할 수 있게 만든 반칙과도 같은 요리기구인 것이다.


 실제로 한국 요리에서는 갈비찜 등을 만들 때는 능력이 탁월하다. 50분 정도를 삶아야 풀리기 시작하는 고기가 20분 정도만 삶으면 과조리를 걱정해야 할 정도의 부들부들한 고기의 결과물이 나온다. 한국식 찜이나 수육 등의 요리 퀄리티에는 감히 따라올 기구가 없다.



압력밥솥의 단점


 그런데 이런 좋은 조리기구의 사용이 밥을 제외한 나머지 음식에는 빈도가 확연히 줄어들까?  

 첫 번째는 사용 방법이 번거로우며 위험하다. 필연적으로 조리를 끝내고 압력을 낮추기 위해 수증기를 배출하는데 시간도 꽤 걸리고 위험하기도 하다. 맹렬하게 나오는 증기 때문에 손을 아주 살짝이라도 디어본 경험은 많이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수증기를 배출시 뜨거운 뚜껑에 손을 디어본 경험은 한번쯤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중간 조리 과정이 확인이 안 되며 수정도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쌀밥의 조리법은 중간에 뚜껑을 열면 안되기 때문에 이러한 조건과 완벽히 부합되어 단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요리들은 그렇지 않다.


 사실 이 포인트는 일반 주부보다는 식재료의 미묘한 수준을 완성해야하는 요리사 입장에서 더 큰 문제이다. 업장에서의 요리는 일반적으로 80-90% 완성시키고 나머지는 잔열 등을 미세하게 컨트롤하여 100%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비슷한 원리의 조리기구인 꼬꼬떼를 예로 들어보자. 꼬꼬떼로 2시간 조리해야 하는 음식이라면 1시간 40분 정도 조리를 한 후에 뚜껑을 한번 열어보고 고기 질감, 소스의 맛, 간 등을 확인한 후 ‘아 소금 조금만 더 넣고 25분만 더 익히자'라는 식으로 일을 한다. 2시간 조리해야 하는 음식이라고 2시간을 냅다 조리해버리면 과조리가 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꼭 본인의 오감을 믿고 직접 확인을 하는 작업을 한다.  


 하지만 압력솥을 이용 시 이러한 것이 불가능하다. 압력솥은 뚜껑을 열어본 후 조리사 입장에서는 복불복에 가까운 결과물을 맞이할 확률이 높다. 특히 음식이 타버리는 경우가 가장 문제이다. 음식을 하면서 최악의 경우를 꼽으라면 대부분의 요리사들은 음식 바닥이 타는 경우를 꼽는다. 음식이 짜건, 싱겁건, 덜 익었건, 되건, 질 건간에 대부분은 음식 테크닉으로 어떻게든 개선이 가능하다. 하지만 타버린 음식의 특유의 향만큼은 어떤 방법으로도 복구가 안된다.

 그래서 소스 등을 끓이다가 바닥이 타면 절때 바닥을 긁지 않고 바닥의 탄맛이 전체에 옮기기 전에 재빨리 다른 냄비로 옮겨 버린다. 그런데 이 압력솥은 바닥이 타버려도 증기를 빼느라 바로 대응이 안되고 압력솥의 특징상 대류가 활발하기에 바닥이 조금이라도 타버린 순간 그 특유의 향에 한솥 분량의 식재료를 망칠 수도 있다.  


 재미있는 점은 바닥이 탈 수 있다는 큰 단점도 밥을지을 때는 오히려 장점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누룽지는 바닥이 타는 현상으로 만들어 진다. 신기하게도 탄맛이 밥 전체로 옮겨가지 않는다. 이쯤되면 압력밥솥은 밥을 조리하기 위한 전용 기구인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정확히 20분 삶았는데 뼈와 살이 분리되어 있을 정도로 조리가 되었다.  내가 원했던 기준보다 과조리 된 상태이다. 일반 냄비라면 그전에 조리를 멈추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별적으로 익는 시간이 다른 재료 컨트롤이 잘 안된다는 점이다. 갈비찜을 만들 때 만일 처음부터 같이 채소와 고기를 넣고 같이 왕창 끓여버리면 고기는 질긴데 감자 같은 채소는 형 채자체가 안 남는 현상이 생길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갈비찜은 갈비 넣고 40분 정도 물에 끓여서 고기만 부드럽게 만든  후  밤, 당근, 양념장 등을 넣고 다시 뚜껑을 덮고 조리하여 부드럽게 씹히는 고기와 채소의 어우러짐이 좋은 요리가 만든다.  압력솥으로 이러한 작업을 한다면 어떨까?  먼저 고기를 삶고 증기를 빼는 작업이 추가된다. 증기를 빼면서 증기에 갈비의 유분이 섞여서 같이 튀어나와서 주변이 엉망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은 덤이다. 물론 고기를 끓이는 시간이 획기적으로 감소하니 더 좋을 수도 있지만, 고기 삶고 - 증기 빼고 - 뚜껑 열고 - 추가 재료 넣고 - 다시 뚜껑 닫고 - 다시 증기 빼는 현기증 나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라면 저 시간에 그냥 한 냄비를 사용해서 편하게 불만 올리고 다른 요리를 동시에 만들면서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쓸 것이다.  

부드러운 고기와 채소의 씹힘이 어우러지려면 각각의 재료의 조리시간을 달리 해야 한다. 하지만 압력밥솥은 이러한 조리법에 좋지 못하다.



압력밥솥을 구매하면 좋은 사람


 그래서 압력밥솥을 구매해야 하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밥이 식사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필수'라고 대답하고 싶다. 전기밥솥인 쿠쿠가 확실히 엄청나고 획기적인 제품이긴 하지만 그래도 압력솥의 참맛 까지는 아직 완벽히 못 잡아 낸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느낌에는 밥도 밥이지만 제대로 된 누룽지의 생성 유무가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쿠쿠가 유명해지기 전 초기 광고는 ‘압력밥솥 만든 느낌' 혹은 '가마솥으로 만든 밥의 느낌’등을  강조하였다.  

 수육 등이나 곰탕 등의 수분이 많아 탈 영향이 없으며 고기를 부들부들하게 만드는 요리를 자주 한다면 매우 좋다. 사실 가격이 그렇게 비싸지도 않고 제품별로 성능차도 크지 않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의 압력밥솥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도 나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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