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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욱 Oct 20. 2020

파스타나 리조또를 코팅팬으로 만들면 맛없는 이유

마찰력이 필요한 요리들


 리조또는 ‘아르보리오’라는 이태리 쌀을 이용하는 요리이다. 쌀을 팬에 볶다가 화이트 와인과 육수를 넣고 끓이면서 주걱으로 20~30분 열심히 저어준 후 마지막에 버터와 파마산 치즈가루를 넣고 '미친듯이' 휘져어서 마무리한다. 이렇게 만든 이 요리는 쌀알의 속이 ‘오도독’ 살짝 씹히면서(알단테) 약간은 쫀득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크림 같은 식감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리조또에서 크림과 같은 부드러운 식감은 매우 중요하다. 이 식감은 크림이 아닌 쌀에 붙어있던 전분에서 나온다.



리조또와 파스타는 코팅팬으로 만드는 음식이 아니다


 처음에 업장에서 리조또를 배울 때 의아한 점이 있었다. 알루미늄팬이나 스테인레스 팬으로 리조또를 만들면 리조또가 바닥에 다 달라붙어 설거지가 너무 힘든데 굳이 그 팬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죽을 만든 후 바닥에 남는 두꺼운 잔여물을 생각하면 된다) 중간중간 주걱으로 저어주면서 바닥에 달라붙은 쌀을 때 내면 되긴 하는데, 잠시 한눈판 사이에 달라 붙어버리는 정도가 상상 이상으로 엄청났었다. 저럴거면 달라붙지 않는 코팅팬으로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혼자 연습을 할 때는 코팅팬으로 만들어 보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미묘하게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들게 나왔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마지막에 버터와 파마산 치즈가루를 넣고 휘져으면 쌀과 소스가 하나가 된 듯한 크림 같은 농도가 나와야 하는데 무엇인가 분리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차피 연습하는 단계였어서 '내가 만드는 기술이 부족하니 그렇겠지' 하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어느 날 기회가 되어 손님 리조또를 알루미늄 팬으로 만들게 되었는데 농도며 쌀의 질감이며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형태의 리조또가 나왔었다. 그 이후부터는 정확한 이유는 몰랐지만 무조건 알루미늄 혹은 스테인레스 팬으로 요리를 만들었다. 결과물이 확연히 차이가 나니 고집부릴 이유가 없어서이다.  

리조또는 잘 저어주지 않으면 쌀알이 바닥에 붙어버린다. 하지만 이 붙음 현상이 리조또를 더 맛나게 만든다.


 파스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코팅팬으로 만들면 미묘하게 잘 안 나오던 농도가 알루미늄 팬으로 하니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와 신기하게 생각했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내 주위에 어떤 요리사들도 이 이유에 대해 속시원히 이야기해주지를 못했다.



마찰력은 리조또와 파스타에 어떠한 맛 차이를 주는가?


 내가 직접 경험하고 나름의 이론을 찾아보고 내린 가장 큰 차이는 ‘마찰력'이다.

파스타와 리조또는 ‘마찰력’이 매우 중요한 요리이다. 특히 리조또는 그 중요성이 더욱 크다. 리조또와 파스타는 각각의 쌀과 면에 붙어있는 전분을 활용하여 소스의 농도를 맞춘다.  이 전분기를 소스로 활용하려면 면이나 쌀에 충격을 주어서 각각의 재료에 달라붙은 전분을 떨어뜨려서 소스와 융화시켜야 한다.  


코팅팬으로 리조또를 만들기는 편하다. 하지만 마찰력 부족으로 전분 용출이 잘 안되어 리조또 맛에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친다


 리조또에 사용되는 쌀은 절때로 물에 씻지 않는다. 그 전분을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리조또는 바닥에 살짝 달라붙는 쌀을 강제로 때어 내면서 그 충격으로 전분을 뽑아내고 바닥에 남은 쌀의 조각들이 수분에 흡수돼 크림 같은 농도가 나온다. 여기에서 죽과 리조또의 결정적인 차이가 생긴다. 죽은 리조또 정도로 휘졌지 않기 때문에 전분의 용출이 비교적 덜 된다. 그래서 원하는 농도가 나올때 쯤은 쌀알이 물을 흠뻑 흡수하여 씹히는 맛이 사라진 후이다. 쌀알의 씹힘이 있는 상태에서 농도가 나와야 하는 리조또와의 차이가 이 지점에서 나온다. 하지만 코팅팬 특유의 특징 때문에 쌀이 바닥에 달라붙지 않는다. 마찰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적당한 전분이 용출되지 않으며 소스의 적절한 농도가 나오지 않는다.


 파스타는 팬을 흔들면서 팬 바닥과 면이 스쳐 지나가면서 전분이 나오게 만든다. 고급 파스타 면 메이커는 마찰력을 올리기 위해 면에 미세한 상처를 내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광고를 한다. 미세한 상처가 있으면 바닥과의 마찰력이 조금이나마 증가하고 전분이 잘 나와서 소스의 농도가 만족스럽게 나오고 이멀젼도 잘 된다. 거기에다가 면의 미세한 상처 때문에 마찰력이 증가해 소스가 면에 흡착이 잘된다.  

 하지만 코팅팬의 경우 마찰력이 적어져 면에서의 전분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파스타를 만들 때 가장 답답해 하는 경우가 비싼 고급 면과 코팅팬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다. 둘의 존재 자체가 마찰력에 있어서는 서로 반대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소라 껍데기와 비슷하게 보이는 꼰낄리에 파스타. 자세히 보면 노란색 건면 표면에 흰색의 미세한 상처들이 보인다.
(출처: 데체코 홈페이지) 표면이 거침을 자랑스럽게 광고한다. 이 점은 건면 파스타의 품질이 좋고 나쁨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다.




최고의 리조또, 혹은 파스타를 만들고 싶다면


 실제로 비교해서 만들어보면 꽤나 미묘한 수준이라 아마 큰 차이점이 느껴지지 않을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일 만드는 요리사 입장에서는 체감이 상당히 크다. 어느 정도 이 음식을 만들어 본 사람들은 인정할 만한 퀄리티의 차이가 나온다. 분명 코팅팬으로도 맛난 파스타나 리조또를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요리에는 여러 가지 테크닉이 있고 마찰력의 부족으로 나오는 농도의 모자람을 매울 방법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코팅팬이 알루미늄팬과 비슷한 퀄리티의 리조또는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더 맛있는 리조또나 파스타의 결과물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코팅팬이 아닌 알루미늄 팬이 파스타 전용팬이 된 것이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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