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부지런한 침묵 앞에 무릎 꿇어도 되겠는가

『시로 읽는 니체』의 무등에 올라타서

by 동사로 살어리랏다

그런데 나는 그런 멋진 나를 어떻게 잊어버리기 시작했을까?

오철수, 『시로 읽는 니체』




의사 중 의사, 명의(名醫)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아팠던 나를 진단하고 병명, 증세와 치료법까지 정곡을 찌르는 침을 놓았다. 잃은 건 낙타, 얻은 건 아이!


그런 명의를 만나게 해주는 비의(秘儀)를 오철수는 『시로 읽는 니체』에서 누설했다. ‘진정한’ 양생술이요, ‘진짜’ 자기계발서다. (사람들아, 제발 자기계발서라는 말을 아무렇게나 갖다 붙이지 말라. 역겨우니 제발!)



불이불일(不二不一)

새벽녘 대문을 활짝 열어젖힌 추어탕 펄펄 끓는 가마솥곁에서 플라스틱 얕은 물을 튀기며 미꾸라지들이 아주 순하게 놀고 있다.


이시영, 「삶」


니체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어느 것이 다른 어느 것보다 좋거나 나쁜 건 없고, 이승이 저승보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삶이 죽음보다 좋은 것도 아니고 죽음이 삶보다 나은 것도 아니다. 삶과 죽음은 ‘곁에서’ 함께 있지만 서로는 서로를 모른다. 그 사실은 태초인 ‘새벽녘’부터 그랬다. 곧 ‘펄펄 끓는 가마솥’에 들어가 죽을 운명인 ‘미꾸라지들이’ 죽음 따위는 생각 않고 ‘아주 순하게 놀고 있다’. 이런 엄연한 사실이 우리네 삶이다. 이것 뿐이다.


‘있는 것은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으며 없어도 좋은 것이란 없다’. 있는 것이란 없는 것보다 좋은 것도 아니고, 없는 것이 있는 것보다 나은 것도 아니다 – 디오니소스적 긍정.


모란시장 풍경이다

시장통 좌판 위에 살코기가 올라온다

다리면 다리 배받이면 배받이

부위별로 막 잡은 개고기들이다

봄볕 부서지는 날


바로 그 밑 혹은 옆

고무다라이에 털 보숭한 강아지들도 나왔다

코를 맞대고 포개어 자는 놈

지들끼리 엉켜붙어 장난질인 놈

한쪽 다리를 들어

옆 놈 머리를 톡톡 치고

봄볕, 장사하는 아줌마들에게도

아- 눈부시고


컹- 컹-

그 옆 쇠창살 안에서

도살될 개들

으르렁거리는데

그 개들도 눈 뜨고

이 세상 다 보고 있는데


세상은 온종일

눈부시고


강수니, 「세상은 온종일 눈부시고」


‘쇠창살 안에서 도살될 개들’처럼 죽음에 포위당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 스스로 죽음의 쇠창살 안으로 걸어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있진 않은가? - 수동적 허무주의


그렇다면 ‘고무다라이에 털 보숭한 강아지들’처럼 ‘코를 맞대고 포개어 자’든지, ‘다리를 들어 옆 놈 머리를 톡톡 치’는 삶으로 응수할 일이다.


삶은 죽음에 기대고 있고 죽음은 삶에 기대고 있다. 그래서 ‘세상은 온종일 눈부시고’.


둘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도 아니다.



천지불인(天地不仁)

어느 날

봉고차 한대 느닷없이

포장마차를 덮쳐

300도 기름 솥이 나뒹굴어지고

아주머니가 119구급차에 실려갔다

그 날 이후

한쪽 귀퉁이에 몸이 묶인 채

포장마차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열리지 않는 포장마차 앞을 지날 때마다

펄펄 끓던 기름에 뻥뻥 뚫린 커다란 구멍만

선명했다

몇 달 전 남편 폐암수술하고

얼마 전 아들 군대 보내고도

샘물 같은 웃음 길어 올리며

하루도 문 닫은 적 없던

여자


한 번도 열심히 살아보지 못한 채

나는 벌써

세상이 무섭다

두려움 속에서 세상은 자라난다


손미정, 「포장마차」


불쌍한 저 여자 어찌할 것인가? ‘한 번도 열심히’ 안 ‘살아보지 못한’ 저 여자에게 하늘은 왜 이리도 무심한 것일까?


그래, 무심(無心). 유심(有心)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단어다.


그래, 자연. 자연은 스스로 그러할 뿐 어떤 특정한 목적이나 진리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인간의 바람과는 무관하게 스스로 그렇게 움직일 뿐이다.


‘자연(自然)하게’에는 인자(仁慈)란 없음이렸다! – 능동적 허무주의



천변만화(千變萬化)

오래된 콘크리트 건물이 폭삭 무너졌다

이유인즉, 그 구조물 속에 들어있는 철근이

시멘트를 뚫고 들어온 습기에 녹이 슬어

제 두께보다 2배정도 불었기 때문이란다

(나는 이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이 없다)

물론 그 진행은 아주 천천히

삼십여 년에 걸쳐 일어난 사건이다

천만년 갈 것 같던 처음의 그 견고함은

마치 내 청춘이 갈구하던

빛나던 사상의 집과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단단함도 땅을 딛고 서야하고

그랬을 것이다, 어느 구석에서부터

매우 작은 균열은 더 많은 습기를 불러

말하자면, 자기를 일으켜 세웠을 것이

스스로 부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치명적이란 늘 그렇듯 한 번도 의심하지 않던

자기에게 가장 가까이 있었던 것의 반란이다

무너진 건물은 벌건 철근 조각을 드러내고

비로소 태평하게 날 보고 있다, 나를


오철수, 「무너진 건물」


‘천만년 갈 것 같던’ 확고함을 버려라.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스스로 부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다. ‘물론 그 진행은 아주 천천히’ 일어나지만 ‘매우 작은 균열은’ ‘어떤 단단함도 땅을 딛고 서야’하는 것처럼 ‘자기를 일으켜 세워’ 필히 ‘오래된 콘크리트 건물’을 ‘폭삭 무너’ 뜨린다.


천 번 만 번 움직인다. 무궁한 변화만 있을 뿐이다. 그 변화의 순간만이 영원히 반복된다 – 영원회기.



전인미답(前人未踏)

밤새 비 내린 아침

옥수수 거친 밑둥마다

애기 손톱만한 싹이 돋아났다

지가 잡초인 줄도 모르고

금세 뽑혀질 지도 모르고

어쩌자고 막무가내로 얼굴 내밀었나

밤새 잠도 안 자고 안간힘을 썻겠지

온몸 푸른 심줄 투성이 저것들

저 징그러운 것들 생각하니 눈물난다


누구 하나 건드리지 않고

무엇 하나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하게 솟아오른 저 작은 생 앞에

내 시끌벅적한 생애는 얼마나 가짜인가 엄살투성인가

내가 인간으로 불리기 전에도 내 잠시 왔다 가는

이승의 시간 그 이후에도 그저 그러하게

솟았다 스러져 갈 뿐인 네 앞에

너의 부지런한 침묵 앞에 이 순간

무릎 꿇어도 되겠는가


김해자, 「스스로 그러하게」


내가 무엇으로 태어나질 않았다.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지가 잡초인 줄’도 모르고, ‘금세 뽑혀질 지도 모르’는 ‘옥수수 거친 밑둥마다’ 돋아난 ‘싹’도 ‘밤새 잠도 안 자고 안간힘을 써’ ‘막무가내로 얼굴을 내’민다 – 생기 존재론.


자연하게는 전인미답과 같은 말이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런데 우리네 이러쿵저러쿵 ‘시끌벅적한 생애는 얼마나 가짜인가 엄살투성인가’, 그러니 ‘스스로 그러하게 솟아오른 저 작은 생 앞에’ 그 ‘부지런한 침묵 앞에’ 어찌 ‘무릎 꿇’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순진무구(純眞無垢)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오르는 미시령 길

털복숭이 검은 벌레가 굼실굼실 숲에서 나와

자동차가 쉴 새 없이 지나는 도로로 기어가고 있다

나비 되는 꿈을 품고 마실가는 애벌레 아닐까

쉬지 않고 굼실굼실 기어간다. 온 몸으로


가는 길이 죽음을 향한 길인지

날개를 펼칠 길인지 벌레는 모르리라

제가 택한 길을 온 몸으로 길 뿐

굼실굼실 굼실굼실, 움직이니 動物이다

굼실거리는 검은 털이 나비 날개 짓 보다 힘차다


정준일, 「길」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건너가는 길 위도 위험하고, 가만있는 것도 위험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건너 가지도 건너오지도 못하는 내 앞에 ‘나비 되는 꿈을 품고 마실가는 애벌레’ ‘굼실굼실 기어간다. 온 몸으로’.


그래, 모른다. ‘가는 길이 죽음을 향한 길인지 날개를 펼칠 길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래서! 나는 간다. ‘더한 무엇이 되고자 하는 힘(코나투스 conatus)’의 운명을 사랑한다 – 아모르파티 amor fati.


팔 차선 왕복도로

복사열로 길이 떠있는 것 같은데

분리대에 핀 목이 긴 노랑꽃

염화시중이다

차가 달릴 때마다 온몸이 부서질 듯 요동치지만

차 없는

아주 짧은 순간

보아라, 그림자도 없이 날아오르는 저 웃음

생은 자기가 세우고 노는 것

다시 요동친다

저 가는 모가지 진노랑꽃

아스팔트를 지배한다


노랑꽃

땡볕에 불붙다.


조문경, 「저 노랑꽃」


이보다 더한 순진무구는 보질 못했다. 꽃은 ‘차가 달’리는 ‘팔 차선 왕복도로’에서도 꽃에게 주어진 ‘아주 짧은 순간’을 이용해 ‘저 가는 모가지’를 순간 ‘날아’ 올린다. 이런 게 꾸밈없고 참되고 아무런 죄 없음이고 ‘염화시중’이다. 아는 것이라고는 제 삶을 긍정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뿐, 그 이상이 되고자 더 강해지고자 – 힘에의 의지.


그것이 생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바라밀다(波羅蜜多)

목련꽃 피는 봄날

어찌하여 내 마음은 흐트러지지 않는가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내가 싫어하는 사람도 없다

일분의 오차도 없이 지하철은 들어오고

아무 일 없이 하루를 시작한다

통장에 잔고가 쌓일수록

내 꿈은 멀어져 가겠지

하늘은 푸르기만 하겠지

바람이 분다는데

마음은 고요해 잠식되고

나는

수치심이 그립다


이미화, 「희망은」


너 있을 곳, 저기가 아니라 여기니 거기 있는 너 여기로 건너오라 – 위버멘쉬 Übermens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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