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은 산 너머 뮬하우젠 도시에 있고, 그래서 산을 넘지 못하면 집에 가지 못한다. 가다가 해가 지면 답이 없기에 작정하고 자전거를 타야하는 상황이다. 날씨는 흐렸다 맑았다 하더니, 점심 시간이 되자 눈이 부실만큼 화창해졌다. 잔잔한 오르막들을 여러 개 넘는 동안 30도가 웃도는 날씨에 땀으로 다 젖고, 땡볕에 얼굴이 더 까매졌다. 아이는 까만콩 별명처럼 더 동글동글한 모습이 되었다.
우리는 이렇게 출발해서, 저렇게 갔다가 여기에 온거야.
아이는 오늘도 지도를 보면서 길을 안내한다. 설명 끝에는 반드시 "잘 알겠지?"라는 말을 덧붙이고, 엄마가 다른 곳을 보느라 대답을 안하면 대답할 때까지"알았지? 알았냐고요?"를 확인한다. 아이는여행 베터랑 선생님이 되었다. 지금이 40개월인데, 이제 한 두살 더 먹으면 여행 가기 전에 자기 가방은 스스로 꾸리지 않겠냐고, 남편이 이야기한다. 힘든 여행 동안 나만 달라진 줄 알았더니, 아이도 자랐다.
얼굴에 땀을 가지런히 손수건으로 닦던 나는 자전거 여행 막바지에 이르니, 시냇물이 보이면 풍덩 들어간다. 이어 남편도 아이도 풍덩, 풍덩. 우리 모두 시원하게 논다. 물 깊숙이 머리를 잠구었다가나오니 갈 길은 멀지만 피로가 한시름 풀리는 것 같다.홀딱젖은 옷은? 자전거로 달리다보면 알아서 마른다.
"근데 아이스크림 두 개 먹으면 배 아프지 않을까?"
"아잉, 이건 괜찮아요. 엄마."
"이런 노래도 있잖아. 어, 어, 얼음과자 맛이 있다고 한 개 두 개 먹으면 배가 아파요~"
"그런 노래 없어요, 없어요, 없어요."
산을 넘기 전에 에데카 마트가 있다. 딸기콘 세 개에 1.99유로. 아이는 두 개를 들고 양쪽을 번갈아가며 먹는다. 여행 마지막 날에는 주머니에 남은 돈을 다 쓰고 가는 거라며 남편은 딸기콘+초코콘으로 아이스크림을 여섯 개나 샀다. 한 사람 당 두 개씩 아이스크림 콘을 할당받아 먹고 나니, 배가 부를 정도. 당을 충분히 보충했으니 이제 슬슬 달려볼까.
산 꼭대기 바로 아래 멋지게 지어진 집들이 가득하다. 길은 힘들지만, 독일 집들을 구경하면서 올라가니 조금은 할 만도 하다. 자전거 옆으로는 고가의 멋진 차들이 씽 하고 지나간다. 독일의 부유한 동네인가보다. 걷는 사람도 없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없다.
한 시간 정도 올랐을까. 튜링겐 주의 국립공원 하이니히 산의 꼭대기쯤 되나보다.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시원시원하게 내리뻗은 길을 달린다.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할만큼 달콤한 산 공기가 퍼지고아이가 좋아하는 양도 만나고, 말도 만난다.
여행을 하는 일주일 동안 힘들었지만 한번도 아프지는 않았다. 오히려 무거운 짐 가방을 들고 장시간동안 잘도 달렸다. 남편은 생각보다 내가 너무 체력이 좋다며 더 가 볼껄 그랬다며 웃는다. 그리고 여행 전자주 체했다. 머리가 아파 며칠을 굶은 채 누워만 있었다. 너무 좋을 것만 골라 잘 먹어서, 많이 먹어서, 그리고 움직이지 않아서 생긴 병이라는 게 판명이 났다. 내시경을 해도 알 수 없었던 병의 이름과 원인이 밝혀졌다. 과한 식욕을 겸한 나태와 게으름이라는 병명. 원인은 나약한 정신력과 저질 체력 탓이었던 걸.
뮬하우젠으로 가는 자전거 두 대가 밀밭 옆을 지난다. 노을이 지기 전에 산을 넘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밀밭앞에 앉았다. 나는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하이니히 곁에 기대고, 지친 자전거를 바라봤다. 빌려온 S의 자전거, 너도 참 고생이 많았다. 아직도 기운이 넘치는 아이는 아빠와 사다리를 타고 겁도 없이 나무 위로 올라간다. 다시 태어나면 당신의 딸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 같지도 않은 생각이 스친다.
이제 기차역으로 가게 된다. 여행은 막바지에 이르고, 생소하게 찾아온 평온한 마음. 자전거 하이킹이 끝나는 날은 이럴 것이라 상상했던 감개무량함이나 성취감이 밀려오지는 않았다.
그냥 초록과 노랑이 섞인 밀밭을 흔드는 바람이 좋았다. 그리고 사다리 위에서 들려오는 남편과 아이의 웃음소리와 어느새어둑해지는 공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