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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름 Feb 28. 2022

15 엄마, 하룻밤만 더요.

우리들의 자전거 캠핑 마지막 밤

하이니히를 넘고 늦은 오후가 되어서
뮐하우젠에 도착했다.
드디어 기차역이 있는 도시.


바다를 건너 육지에 도착한 것처럼 환희에 찬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산길이어서 저녁 시간 즈음에는 시내로 들어갈 것 같았다. 이제 여행은 종지부를 찍는다. 더 이상 밖에서 잠을 자는 일도, 맨밥만 먹는 일도, 모기에 뜯겨 아이 얼굴이 붓는 일도 없을 것이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린다. 작은 오르막이 은근히 많아 진이 빠진다. 그렇게 숲 옆길을 달리다가, 아이가 좋아하는 예상치 않은 장소를 나타났다. 놀잇감도 많고, 아이들도 많은 놀이터. 아이는 놀고 싶다며 눈물을 뚝뚝 흘린다. 하지만 집에 가고 싶은 엄마는 대답도 않고 자전거만 탄다. 그러자 아이는 요동을 치며 자전거가 휘청일 만큼 띵깡이다. 말릴 수 없다. 이해를 시키려면 한 시간은 설명해야 할지도 모른다.


"엄마, 하룻밤만 더 자고 가면 안돼요?"


아이보다 나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하는 것은 남편의 얼굴이다. 오늘부터는 우리 집에서 편안히 잘 수 있겠구나, 쉬겠구나. 했는데 그의 얼굴은 '하룻밤만 더'라고 말한다. 아직 뮐베르그 도시를 둘러보지 못했는데 부랴부랴 집에 갈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 하루 쉬는 것보다는 나만 괜찮다면, 하루 더 도시를 둘러보고 싶다고 말할 그 사람.


"어쩌지?"

"당신 편한 대로 해."


'덜컥'하는 심장 떨어지는 소리. 세상에 '하룻밤만 더' 라니. 그는 부드럽고 다정한 말을 툭 던진다. 그리고 늘 그랬듯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 바닥에 떨어진 그의 말을 자전거로 밟고 지나간다. 꽃잎처럼 일그러진 말들이 선홍색 피를 흘린다. 나는 혼자 자전거를 타고 앞서 달린다. 뒤는 돌아보지 않는다. 그리고 멈춰서 하늘을 한 번 보고, 숨을 길게 내쉰다. 자전거를 돌린다.


그래. 쉬고 가자.



며칠 동안  맨바닥에서 잤더니, 등이 배기지도 않고 밤에 잠도 잘 온다. 여행 첫 날, 들짐승이 텐트로 오면 어쩌나? 하며 이만저만 잠을 못 이루었는데 이젠 캠핑 베테랑답게 바닥에 눕는다.

다시 놀이터에 도착했다. 아이는 신이 나서 논다. 저렇게 좋을까. 오래간만에 만난 독일 아이들과 함께라서 더 즐거운가보다. 청소년쯤 되어 보이는 독일 형이 고맙게도 아이와 잘 놀아준다.


놀이터 옆에는 물이 흐르는 곳이 없어, 머물만한 장소를 다시 찾는다. 밤이 늦어서야 공원 안 시냇물 옆에 텐트를 치고 잔다. 나는 혼자서 텐트를 후닥닥 친다. 남편이 제법이라며 칭찬해준다. 으쓱한 어깨, 씨익 수줍은 소년 같은 미소를 그에게 던진다. 피곤한 밤이다. 오늘은 내가 먼저 잠들 것 같다. 아이가 "엄마, 기도해야지!"라고 말하지만 정신은 이탈했고 알 수 없는 말들을 나는 중얼중얼 댄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도착한 뮐하우젠은 기대 이상으로 아름답다.


사랑하는 두 남자를 양 쪽에 끼고 또 길바닥에 누워 잔다. 비로소 밀린 사랑에 보답한 기분. 

 

그래, 하룻밤만 더,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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