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42.195km라고?
2024년 11월 1일 금요일
세계 6대(지금은 시드니마라톤이 포함되어 7대지만) 메이저 마라톤 중 하나인
뉴욕마라톤이 열리기 이틀 전에 JFK공항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뉴욕까지는 직선거리로 11,000km.
14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으로 몸은 지쳤고 시차 때문에 비몽사몽 정신도 몽롱했다.
뉴욕은 일 때문에 왔거나 여행으로 온 적이 있었지만
마라톤을 하기 위해 올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삶은 정말 예측불허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배번과 기념품을 찾기 위해 일행들과 맨해튼에 위치한 엑스포장으로 향했다.
엑스포장은 맨해튼 중앙 서쪽 허드슨 야드 근처였고 버스에서 내렸을 땐 이 일대는 이미 러너들로 가득했다.
버스에서 내려 엑스포장 입구로 향하던 찰나,
직업병이었는지 길 건너 옥외광고가 눈에 딱 들어온다.
'앗, 나이키 광고다!'
카피만 강렬하게 넣은 광고이면서 카피가 비주얼을 대신하는 광고.
"여기까지 오느라 수백 마일을 달려왔다. 이제 단 26.2(42.195km) 마일만 남았다."
가깝게는 미대륙 곳곳에서부터, 멀게는 전 세계에서 날아온 수 만 명의 러너들에게
스타트 라인에 서기 전 마지막 응원 같은 메시지였다.
'그래. 여기까지 오는 것도 쉽지 않았지.'
단순히 뉴욕까지의 거리가 아니라, 이 대회를 준비한 시간과 노력이 떠오르는 듯했다.
나이키는 한 줄의 카피로 마라토너들의 여정을 그대로 압축해 냈다. 몇 달, 아니 몇 년 동안 훈련한 그 과정을 인정해 주면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현실을 리마인드 시켜주는 카피였다. 그리고 마지막 26.2마일이 남았다고, 이제 마지막을 달려보자고 격려한다.
광고를 보는 순간, 나는 이 카피가 뉴욕 마라톤 참가자들의 마음을 얼마나 강하게 건드리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카피라이터로서, 광고인으로서 수많은 나이키 광고 캠페인을 보고 듣고 감탄하고 벤치마크해 왔다.
러너로서 바라본 이 문장은 단순한 거리 안내가 아니었다.
사실 마라톤 참가자라면 누구나 26.2마일(42.195km)이 결승점이라는 걸 안다. 그런데 이 문장은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 그 거리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수백 마일을 훈련해 온 과정 + 이제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 감동
이것이 나이키가 만드는 브랜드 메시지의 힘이다.
나이키는 늘 운동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어 본다.
"Just Do It."
"There is no finish line."
"Find Your Greatness."
엑스포장에서 만난 나이키 광고도 다르지 않다. 마라토너들의 심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가장 필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냥 ‘파이팅!’이 아니다. 그냥 ‘마지막까지 힘내라’가 아니다.
이미 힘들다는 걸 알고, 그럼에도 여기까지 왔다는 걸 인정하고, 이제 단 26.2마일만 남았다고 다독인다.
아무리 마라토너일지라도 26.2마일(42.195km)은 거대한 벽이기 때문이다.
마케팅이란 결국 사람의 감정을 읽고, 가장 공감되는 한 마디를 던지는 것이다.
좋은 카피는 ‘단어의 조합’에 머물지 않고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내 이야기 같다’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카피라이터로서가 아닌 러너로서 공감한 나이키의 메시지는 급수대의 청량한 물 한 컵 같았고
바닥난 에너지를 채워주는 파워젤이었다.
#2024 뉴욕마라톤 #나이키광고 #26. 2마일 #42. 195km #마라톤 #러너 #러닝 #탱고크리에이티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