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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은 Jun 09. 2020

나는 착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랐습니다.

글 쓰는 딸과 시 쓰는 아빠 - 2. 가족

80년대생으로는 매우 드물게도 나는 4남매의 둘째이자, 첫째 딸로 태어났다. 엄마와 아빠는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시대에 아들 둘, 딸 둘을 낳아서 잘 기르셨다. 어릴 때 나를 예뻐해 주신 어른들은 모두 착한 분들이었다. 그때 나에게 착한 사람의 기준은 배려와 희생이었다. 아빠는 대학을 나와 큰 회사에서 일을 하셨다. 아빠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일하던 큰 고모와 고등학교만 졸업한 작은 고모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자녀들을 더 잘살게 해주고 싶어서 열심히 돈을 벌어 오셨고, 아빠는 누나와 여동생, 그리고 부모님을 매우 살뜰하게 잘 챙기는 멋진 가장이었다.


엄마는 내가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다. 부잣집 막내딸로 미대를 졸업한 엄마는 결혼 후에 경북 김천에 있는 시골에서 아픈 할머니 병시중도 들고 고된 시집살이를 하면서 4명의 자식을 키우셨다. 엄마는 항상 나에게 너도 너네 아빠 같은 사람만 만나면 인생 성공이라고 말씀하셨다. 착한 엄마는 셋째인 여동생이 태어났을 때, 아빠가 구미로 발령이 나 분가를 하게 되었다. 그때 미혼이셨던 큰 고모는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하셨고, 둘째를 달라고 하셨다. 깨물어서 안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자식이 많아도 하나를 포기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엄마는 둘째를 줄 순 없다고 했다. 대신에 학교 들어갈 때까지 잘 부탁한다고 눈물로 나를 맡기고 주말마다 보러 오셨다. 그렇게 나는 형제들과 따로 자라게 되었다.


나는 김천에서 할아버지, 큰고모와 작은 고모, 작은 고모의 남편인 고모부와 함께 살았다. 할머니께서는 병원에 계셔서 자주 뵙지는 못했다. 할아버지는 주유소를 하셨고, 큰고모는 주유소 옆에서 작은 미용실을 하시고, 작은 고모와 고모부는 근처에서 정미소를 하셨다. 나는 주유소와 미용실, 정미소를 놀이터 삼아서 뛰어다녔다. 동네의 가장 큰길은 포장된 2차선 도로였고, 그 길은 논과 산이 만나는 사이에 나 있었다. 할아버지의 주유소는 논 쪽에 작은 고모의 정미소는 산 중턱에 있었다. 시골마을에는 아기가 없어서 나는 우리 집 모든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랐다.


아기 때부터 운동신경이 없지만 성격이 활발한 나는 매번 뛰고 넘어지고 뛰고 넘어지고 반복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아까징끼(빨간약)을 들고 나를 쫓아다니셨다. 안방의 아랫목에는 큰 이불속에 메주들을 묻어두었다. 할머니는 집에 오시면, 메주가 없는 쪽에 누워 계셨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메주 냄새가 나는 쪽을 좋아했었다. 안방의 한쪽 벽면에는 흑백으로 된 증조부 증조모 님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벽장에는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젤리가 든 장식장이 있었다. 낱개로 포장된 긴 직사각형 모양의 여러 가지 젤리가 있었는데, 그 장식장에 손이 닿기 시작하자 몇 개씩 몰래 빼먹었던 것 같다.


논두렁 옆에 자리 잡은 우리는 옆으로는 염소 같은 동물을 키우는 우리가 있었고, 다른 옆으로는 큰고모의 미용실이 있었다. 산 중턱으로 자리 잡은 작은 고모집은 정미소와 붙어있었는데, 그 위쪽으로는 자두밭이 있었고, 건너편 집은 누에를 먹였다. 작은 고모집 근처에는 조그마한 텃밭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식탁에 자주 오르는 내가 잘 모르는 식물들이 자랐다.

누에고치는 너무나 예쁜데, 애벌레와 나방은 너무나 무서워서 가까이 지낼 수 없었다.


모든 아기들이 다 똑같듯이 시골에 사는 아기인 나도 아침부터 매우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아침에 일어나 큰고모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고, 큰고모가 없으면 작은 고모집으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상당히 먼 길이어서 나에게는 엄청난 대모험이었다. 고모가 밭을 매고 있으면 나는 옆에서 지렁이를 주워서 조금 축축한 밭에 집을 만들어 눕혀주었다. 그리고, 옆집에 누에들이 잘 자라는지 확인도 해봐야 했다. 그곳은 아주 큰 테이블만 덩그런히 놓여 있는 집이었는데, 테이블 위에는 뽕잎 위에서 누에들이 기어 다니다가 어느새 새하얀 누에고치가 되어 누워있었다. 누에 애벌레는 무섭게 생겼지만, 누에고치는 너무 예쁘게 생겨서 한 두 개 정도 가지고 놀기도 했다. 큰고모가 밭일을 끝내고 집으로 같이 돌아갈 때는 같이 뽕나무에 달려있는 잘 익은 까만색 오디를 따먹었다. 누에가 먹을 뽕잎을 따고 건드려진 남은 오디는 가끔 길 위로 떨어져서 까만색 발자국을 만들었다.


큰고모가 미용실에서 손님들에게 파마를 할 때는 옆에 앉아서 들려오는 현철의 노래를 들었다. 아주머니들이 말을 걸어 주실 때도 있었고, 그림을 그리거나 색종이를 접거나 종이인형 놀이를 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큰고모가 머리에 파마를 할 때 마는 분홍색 플라스틱 기구들을 깨끗하게 씻는 것을 보고 나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용실에 있는 모든 현철 테이프를 큰 빨간 대야에 담가서 깨끗하게 씻고 있었다. 큰고모는 내가 너무 조용해서 이상했는지 한번 와서 보고는 지금 무엇을 하는 거냐고 물어봤다. 내가 큰고모를 위해 테이프를 씻는다고 하니, “아이고야, 고마운데 이거는 씻는 거 아이다. 자, 나온나! 애기가 비눗물에 손 오래 담그고 있으면 손 다 상한다.”하시면서, 내 손을 깨끗하게 씻겨서 데리고 나오셨다. 그때는 큰고모가 소중히 모아 온 테이프들을 내가 다 망쳐 버렸는지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너무 대단한 일이다. 소중한 물건보다 내 손이 비눗물에 오래 담겨 있던 것을 걱정하셨다니!

손대면 톡하고 터질것만 같은 그대, 카세트 테이프


우리 집 건너편에는 키 큰 해바라기가 담장에 많이 서있는 집이 있었다. 해바라기 꽃잎이 떨어지고, 파랗던 꽃대가 갈색으로 익어가면 고모들은 해바라기를 얻어와 누렇게 익은 호박을 한 덩이 사냥해 그 속을 꺼내고 잘 골라낸 호박씨와 함께 거실에 널어 말렸다. 고모부는 호박씨 까는 선수였는데, 열심히 일해서 뭉툭한 손끝으로 호박씨를 정말 예쁘게 잘 까서 나에게 주었다. 고모부는 나에게 호박씨를 잘 까는 법을 가르쳐 주셨는데, 나는 씨앗 까기에 재능이 없었던 것 같다. 우선은 잘 마른 씨앗을 고르는 것도 어려웠고, 씨앗을 예쁘게 까는 것도 무척 어려워서 작은 고모나 고모부가 깐 씨앗을 골라 먹는 역할을 주로 했다.


겨울이 오고, 해가 짧아지고 밭으로 놀러 갈 수가 없으면 많이 심심하다. 그나마 가장 재미있는 일은 고모들이 아궁이에 불을 땔 때 따라가는 것이었다. 작은 고모나 큰 고모가 불에 나무 장작을 넣으면 빨간 불이 확 피어오르는데, 그것이 무섭지만 재미있었다. 그리고 불을 피해서 고모들의 등 뒤에 숨어서 고모들의 스웨터에 스며든 장작의 냄새를 맡는 것을 참 좋아했다. 장작 타는 냄새는 마음속 깊은 곳까지 따뜻하게 해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구정물

          - 이영배

상상속의 어린 아빠를 재구성해 보았다.



깡패가 나타났다


만화책 읽다 들켜 꾸중 듣고

벌로 돼지우리 청소하던 날


판자문 밀고 들어서며 돼지주둥이 후려친다

보리등겨 먹다 말고 죽겠다고 비명 지르고


비키라고 발길질 하자

알곡 말리는 앞마당으로 뛰어나가는 그들


낭패라고 쫓아가다 거름더미 위에 넘어진다


-야 이놈아 머리를 써야지

처마 밑에서 바라보던 아버지

구정물 한 바가지 들고 앞장서 걷는다


그 구정물 따라

쨍쨍거리는 햇볕 속 함께 가는 돼지


두근두근 따라가는

어린 날의 폭력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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