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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Dec 26. 2023

"당신 정말 시를 잘 쓰네."

아내가 내 시에 감탄을 했다. ㅎㅎ

“당신 정말 시를 잘 쓰네” 

뜬금없이 아내가 하는 말이다. 요즘 그렇지 않아도 시든 소설이든 못 쓰고 헤매는 판국에 이게 무슨 말인가 해서 아내를 쳐다보았다.  

    

“당신이 소설도 잘 쓰지만, 그것보다는 시를 훨씬 잘 쓴다고.” 아내는 또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한다. 그 말에 나는 공연히 으슥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글을 쓰면 항상 아내와 딸에게 글을 먼저 보여준다. 반응도 보고, 오탈자도 잡고 교정하기도 하고, 또는 글이 어색하지 않은지 윤문도 받기 위해서다. 물론 아내와 딸이 그런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장기는 선수보다 훈수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글을 쓴 사람은 잡아내지 못하는 오류도 다른 사람은 기가 막히게 잡아내니까, 어떻게 보면 아내와 딸은 내 글을 점검하는 데 특화된 자질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글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내가 내 시들을 읽다가 갑자기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요즘 내가 짧은 소설 모음집을 출간하고 나서, 이어서 단편소설집과 시집 원고를 다듬고 있었다. 물론 그 작업은 당연히 아내와 딸의 몫이다. 내 눈에는 잘 포착되지 않는 오류나 오자와 탈자도 아내와 딸의 눈에는 기가 막히게 포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는 먼저 단편소설집 원고를 점검하고 난 후, 시집 원고를 점검하고 있었는데, 오늘 마무리를 할 단계였다. 내가 방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밖에서 아내의 움직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살며시 나가 보니 딸 방에서 내 원고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침 딸을 데리러 갈 시간이 되었길래 함께 집을 나서서 차를 운전하고 가는 도중에 아내가 그 말을 했다. 


“당신이 시를 정말 잘 쓰네.”

“그래?”

“응, 소설도 잘 쓰긴 하는데, 당신은 시가 더 좋아.”

“그러게나 말이야. 당신이 공모전 심사위원들보다 훨씬 시를 보는 안목이 높은 것 같더니만, 정말 그렇네. 그렇게 잘 쓴 시를 그 양반들은 왜 몰라보는 거지? ㅋㅋㅋ...”

“공모전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당신 스타일대로 그냥 시를 계속 쓰는 것이 좋겠어.”   

  

솔직히 기분이 좋았다.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람이 내 글을 인정해 준 것이 아닌가? 그러면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공모전 수상작들은 대부분 난해한 시가 많다. 그에 정비례해서 일반 독자의 찬사를 받는 시는 많지 않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다.     

 

아내의 한마디가 나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새롭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시를 짓는다고 열심히 지어도, 그놈의 심사위원들은 눈이 삐었는지 당선작으로 선발해 준 적이 없었다. 뭔가 그들이 보기에는 내공도 부족하고 시 같지도 않다고 생각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나 브런치에서 내 글을 읽어주시는 작가님들께서는 그래도 나름 내 글을 좋아해 주기도 하는데, 도무지 어떤 시를 지어야 하는지 헷갈리면서 갈등을 겪던 시기가 있었던지라, 오늘 아내의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커다란 위로와 격려와 응원이 되었다.  

    

솔직히 글을 쓰면서 슬럼프를 겪지 않을 수는 없다. 나도 그랬고. 하지만 얼마 전부터 나는 내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정한 후로는 일고의 망설임 없이 내 길을 가고 있다. 내가 쓰고 싶고, 읽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을 쓰는 것이 시인으로 살아갈 나의 책임이라는 생각이다. 실력이 되지도 않는 공모전을 기웃거리면서, 그럴듯해 보이는 난해한 시를 분석하고 흉내 내는 인생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그렇게 난해한 시를 썼던 사람들도 신춘문예에 한 번 당선된 후에는 더 이상 그런 시풍을 고수하지 않는 시인을 많이 본다. 결국 그런 공모전은 자신이 쓰고 싶은 시를 쓰는 과정에서 시인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그런 수단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나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하려면, 그런 시인보다는 몇 배의 노력으로 창작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를 쓰기 시작한 지 이제 일 년 반을 조금 넘겼다. 앞으로도 평생을 쓸 시라면, 지금부터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진정 독자가 읽기를 원하는 시를 써야 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아내가 잘 썼다고 한 시들은 내년 1월 중에 시집으로 엮어서 출간할 계획이다.     

 

오늘은 이래저래 기분이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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