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내 대뇌 속 중앙 처리 장치의 각종 회로에 이상이 생겼음이 틀림없다. 어쩌면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라는 수학적 사고를 관장하는 산술 논리장치의 연산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처럼 아무 이유도 없이 불안할 리 없다. 간혹 불안할 때마다 먹는 행위로 불안함을 달래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다면 불안도 먹는 행위로 해소하는 사람은 그들의 사고나 감각 회로에 이상이 생긴 것일까? 하긴 남의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다. 불안함을 느끼는 주체는 바로 나이니까 말이다. 보통은 차분히 생각해 보면 불안의 원인을 대략적으로나마 찾아낼 수 있었는데, 이번 불안함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던 내가 마지막 직장에서 쫓겨난 것은 사 개월 전의 일이다. 물론 말이 쫓겨난 것이지 사실 내가 자발적으로 그만둔 것이긴 하지만, 아무튼 이러나저러나 실직자 신세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사 개월을 집 안에서 쥐 죽은 듯 지냈다. 뭐 이 정도 상황이라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거창하게 논리적 사고 회로니 뭐니를 언급했는지 눈치가 빠른 사람은 대충 알아챌 것이다. 그렇다. 실업자가 되었으면 양심상 조금은 초조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든지, 아니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기라도 한다든지 아무튼 그런 모습이 보여야 하는데, 나는 뻔뻔하게도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려 하지도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무기력함을 실토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업은 노력으로 극복할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리한 노력은 취업 사기라는 부작용을 낳는다. 혹자는 이런 나의 주장에 대해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냐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는 옛말도 모르냐고 말이다. 물론 그런 반론도 근거 있는 제안이긴 하다. 취업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주도면밀하게 구직활동을 하면 되는 것을 가지고, 취업 사기가 두려워서 구직활동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말이 정상인 사람이 할 소리냐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구직활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람 본인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일인데, 자기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왈가불가할 문제는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당연히 있을 것이다. 물론 나 자신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의 마음을 잘 알 수 있다. 사정은 무슨 사정이란 말인가? 그저 아직 배가 덜 고파서 그러는 거다.라고 취준생의 신중함을 사정없이 깔아뭉개는 사람에게 내가 왜 구직활동을 못 하는지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집에서 뭐 하고 있냐? 나와라. 술이나 한잔하자. 그래도 친구는 친구군. 그래, 네가 사는 거지? 순간 영민한 계산력은 자기의 본분을 다한다. 물론 이 녀석이 불러냈으니, 술값도 계산할 것이라는 합리적 판단에 의하면 내가 술값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번 재확인은 필요하다. 오, 술은 네가 사는 거지? 이 자식은 매번 그러네? 네가 언제 술값 낸 적 있어? 잔소리하지 말고 나와. 이 정도는 되어야 안심하고 외출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확답을 받아 놔야 마음 놓고 술도 마실 수 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쪼잔하고 피곤한 인생이지만, 실업자의 지위를 확실하게 누릴 때는 친구가 사는 술을 마실 때뿐이라는 사실은 긴 백수 생활로 터득한 첫 번째 진리이다. 이런 것을 보면 나의 논리적 사고 회로도 아직은 제법 작동하는 셈인 것 같다. 친구가 술을 사겠다는 제안이 입력되면, 나는 술값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냐는 조건을 더하고, 최종적으로는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고 나오라는 친구의 확답이 출력되는 회로상 프로세스는 항상 일정하게 작동하고 있지 않은가?
잇단 구직 실패에 다시금 내 대뇌의 논리적 사고 회로는 색다른 변명을 준비 중이다. 나의 일상을 세세하게 분석한 결과, 내가 아홉 시 출근, 여섯 시 퇴근 직장을 지킬 수 없는 수만 가지 명분을 탐색한다. 그리고 그중에서 객관적으로 가장 타당성을 지닌 변명을 선택하여 출력한다. 비록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가족을 위해서 투입하는 노력을 기회비용 차원에서 환산한다면 이미 상당한 돈벌이를 하는 셈이라든지, 그럼에도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출근하게 되면, 그 대가로 가족이 감수해야 하는 일상의 불편함은 금전적으로 환산할 수 없을 것이라든지 하는 식의 변명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확실히 나는 논리적인 사람이 맞는 것 같다. 확신하건대 누구도 나의 논리를 깨트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확신에도 불구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직 확실히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무래도 나의 대뇌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논리적 사고 회로에 이상이 발생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처럼 내가 처한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정보 처리 결과를 내놓지 않을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번에는 나의 논리적 사고 회로의 불완전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아, 별 쓸데없는 생각에 집중하느라 정작 필요한 고민은 저만치 던져버렸다. 그나저나 언제쯤 되어야 이런 고민에서 벗어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