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는 남의 잉크병의 잉크를 찍어쓰는 사람이 아니다.
내 몸속의 피를 찍어 내 목소리를 낭자하게 남겨두려는 몸부림으로 내 자신을 학대하며 살아왔다.
나는 작가적 양심을 결코 포기할 생각이 없다.”
김홍신 문학관에 들어서면 첫눈에 보이는 글귀다. 이 앞에서 한참을 쳐다보고 생각에 잠겼다. 1층 전시실을 한 바퀴 돌아서 김홍신 작가 집필관 건물로 나가는 문 옆에도 똑같은 글귀가 벽에 새겨져 있었다.
“장총찬” 거의 신드롬 급이었던 기억이 난다. 장총찬이 등장한 김홍신의 첫 장편소설 <인간시장>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밀리언셀러로 기록된 작품이다. 김홍신은 가진 것 없이 절박했던 젊은 시절, 무명작가의 고뇌를 끌어안고 살면서도 한결같이 넓은 책꽂이에 책을 가득 채운 책방을 그리고 살았다. 그런데 <인간시장>의 성공이 작가에게 그런 책방을 선사했다. 지금은 문학관 바로 옆 집필관 건물의 장서고에 모두 가지런히 보관되어 있다.
작가는 <인간시장>의 성공 이후 발해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그 사이사이에 소설과 시, 수필 콩트부터 시작하여 의정활동집(국회의원을 지낸 적도 있음)까지 수많은 글을 남겼다. 작품은 주로 사회현실을 다룬 것이 많았는데 <인간시장>이 대표작이며, 이 작품에서 작가는 당시로는 과감하리만치 조직폭력배와 정경유착, 부패한 정치인들과 같이 일반 서민의 삶에 개입하는 온갖 사회악과 모순을 폭로하고 있다.
장편 <대발해>의 집필 동기는 단순했다. 중국 땅에 거주하고 있던 역사학자로부터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자기들 것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작업, 이른바 동북공정을 머지않아 진행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마침 그 시기에 법륜스님께서 하신, 국회의원 몇 번 더 하는 것보다 잃어버린 발해의 역사를 찾아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일이 몇 곱절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냐는 말이 작가의 귓불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작가는 2005년부터 3년간 <대발해> 집필을 시작한다. 집필을 위하여 중국과 한국 일본의 역사서와 기타 참고 도서 500여 권을 탐독하고, 실존 인물로 추정되는 오십여 명과 가상 인물 오백여 명을 출연시켜 10권의 대하역사소설 <대발해>를 완성했다니 그 열정은 감히 이루어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자료의 수집 기간에 기증받은 수많은 발해 유물과 서적을 김홍신은 자신의 영혼을 지켜주는 보물이라고 말한다.
문학관과 집필실은 모두 지역 독지가의 도움으로 설립되었다. 작가의 이름과 독지가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홍상문화재단>이라 명명하고 문학관과 집필관을 관리하고 있다. 마침 집필관으로 건너가니 그곳을 건축할 때부터 계속 관리하고 계신 분께서 맞아주면서 자상하게 설명해 주셨는데, 그곳에는 김홍신 작가가 들릴 때 거주하는 숙소와 사무실 공간, 집필실, 서고, 그리고 성우 서혜정 님의 낭독연구소가 있었고, 2층에 작가 창작공간(입주자는 없었음)이 있었다.
김홍신 작가의 문학관을 돌아보실 계획이 있는 분은 꼭 2층의 <대발해> 영상실 영상자료를 관람할 것을 권한다. 전시 자료만 보아도 좋겠지만, 영상자료를 보는 것은 작가의 작품 세계를 좀 더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길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