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눈 같은 걸까?
꿈을 꾸었다. 흰 눈이 내린 길을 끝없이 걸었다. 꿈에서. 등이 시리고 가슴이 시렸다. 가로등 불빛에 슬로 모션처럼 떨어지는 눈을 보며 걸었다. 낯선 타국의 길, 체코의 어느 거리 같기도, 어렸을 때 살던 조치원 침산동 길 같기도 한 길이었다. 가로등 불빛이 듬성듬성 유럽 건물을 비추는 것 같다가도 조금만 더 가면 엄마가 기다리는 집에 다 다를 것 같은 길이었다.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밟으며 비단실 같은 괴적을 남기고 떨어지는 눈송이를 보며 걸었다. 허리가 시리고 가슴이 아팠다. 꿈속에서 사랑을 잃었다. <눈은 평생 한 번 우리의 꿈속에서도 내린다고. p15> 하듯 내 꿈속에 눈이 내렸다.
한 달 넘게 깁스를 하며 게(crab)가 생각났다. 한쪽 집게 다리만 크게 성장한 비대칭 농게가(fiddler crab). 잠을 잘 때마다, 침대에 누워, 나는 깁스한 다리로 내가 '비정상적으로 큰 농게 같다.' 느꼈다. 어찌 잠을 자는지 몰라도 깁스한 다리를 중심으로 버둥일 듯하다. 아침, 잠에서 깨니 이불이 등 뒤에 눈덩이 마냥 몰려 있었다. 등이 시리고 허리가 시린 이유는 이불 탓이었다. 있을 곳에서 도망간, 눈덩이처럼 뭉쳐진 이불 때문이었다. '잘도 걸었네 꿈에선.' 했다. 농게 집게 같은 깁스도 없이 자박자박 눈 속을. 나이가 더 들어도 꿈속의 난 항상 젊을 것이란 생각이 불쑥 들었다. 팔십이 넘어도 소녀처럼 눈을 뽀드득뽀드득 밟으며 어딘지 모를 곳을 향해 잘도 걸을 것 같았다. 오십 넘어 '꿈속에 눈길을 돌며 사랑을 잃었다.' 하여 슬픔에 빠졌다니.
작년부터 올까지(2019년 12월 2020년 3월) 눈 다운 눈은 군산에 한 번 내렸다. 54번 겨울을 보내며 언제나 백설기 같은 눈을 기다리고 탐내 왔다. 어려서부터 눈이 소복이 쌓이면 작은 발로 눈밭에 꽃 모양을 만들었다. 올해 처음으로 첫눈을 한 발로 밟아 동그란 꽃을 만들었다. 목발을 짚고 정원에 나가 잔디에 소복이 쌓인 눈을 말이다. 눈꽃을 동그랗게 만들고 웃었다. 좋았다. 눈 자국이, 눈이. 밟으면 밟히는 데로 그 자국을 온전히 보여주는 눈은, 눈이 부시게 희어 좋고, 있음과 없음이 분명해서 좋았다.
오지 않는 눈이어서 꿈속에 내렸을까? 눈 내리는 길을 하염없이 걸으며 추운 몸으로 사랑을 잃어서 슬펐다니. 소녀적이다. 현실은 멀쩡한 다리로 이불을 걷어찼고, 나이 들어 이불 안팎의 온도차를 쉽게 감당치 못하여 허리와 등이 시린 게였고, 깁스로 인해 목발 없인 4미터 떨어진 화장실도 못 가는, 사랑은 고사하고 인생에서 무얼 잃었는지 얻었는지 모르고 지내는 중인데 말이다. 그러니 참 소중한 꿈이다. 너무 귀한 슬픔이다. 꿈속의 나는 젊고 사랑에 목말랐으니 말이다.
사랑을 잃고 눈길을 걷는 꿈을 꾼 아침, 눈처럼 빛나고 눈처럼 차갑던 오르한 파묵의 <눈>이 생각났다. 햇빛을 받으면 찬란하게 빛나는 눈처럼, 뜨거운 열기를 만나면 투명해지는 눈처럼, 뜨겁고도 춥게 다가왔다. 십여 년 전 눈같이 순결한 사랑을 하는 주인공을 따라가며 이슬람의 문화를, 그들의 사랑에 대한 뜨거움과 목마름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궁금했다. 나의 눈 같은 사랑은 어떤 6개의 축으로 채워진 걸까? 하고 말이다. 주인공 카의 사랑은 눈이 녹아 손에 잡을 수도 잡히지도 않는 서늘한 그 무엇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걸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지, 과연 6개의 축을 채우기는 한 건지 궁금했다. 책을 읽으며 궁금했고, 책을 덮고 나서 궁금했고, 책을 읽은 후 눈이 올 때마다 궁금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눈길을 걸으며 사랑을 잃었다 여기는 슬픈 꿈을 꾸고 나니 궁금함이 달려왔다. 사실 눈이 올 때마다 궁금함이 얼굴을 디밀었으니, 이 궁금함은 오르한 파묵이 <눈>과 함께 내게 온 후 내 겨울 자락을 잡고 있는 샘이다. 그러니 한국이 열대가 되지 않는 한 이어질 듯하다.
<모든 사람에게는 눈송이가 있다(p227). 카는 그가 이후에 읽었던 책들에서 6개의 축이 있는 눈송이가 하늘에서 결정을 이룬 후 땅에 내려 그 형태를 잃고 사라지기까지는 8분 내지 10분이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략-- 모든 인간에게는 자신의 인생에 내적인 지도인 이러한 눈송이가 있어야 한다(p228). --중략-- 카에 의하면 모든 사람의 인생 뒤에는 이러한 지도와 눈송이가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 서로 닮은 사람들이 사실은 얼마나 다르고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지는, 자신의 눈 결정체를 해독하면 모두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p229).>
십여 년 전, 책을 읽고 나는 남편에게 물었었다. "사람마다 눈송이가 있데, 우린 어떤 축을 가진 눈송일까?" 하니 남편은 책을 읽곤 "좋네!" 하고는, 나를 보고 "나의 눈송인 당신 그 자체지!" 했다. 그리고 한두 번의 겨울, 눈이 내리면 카의 슬픈 사랑이 떠올라 불쌍했다. '카의 눈은 행복이라기보다 외로움과 슬픔에 가까웠구나!' 싶었다. 2017년 2월 학교에서 펑펑 쏟아지는 눈을 보며 '카의 사랑은 집착이지 않을까? 짝사랑의 우아한 변명일까?' 했다. 오늘 아침, 꿈을 꾸고 나선, 그냥 주인공 카의 손을 잡은 듯했다. 어떤 사랑인지, 어떤 눈송이 모양인지, 어떤 축의 내용물인지가 아닌, 사랑 그 자체로 족하단 생각이 들었다. 짝사랑이던,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이던, 비극적인 사랑이던 말이다. 사랑을 잃는 것보다, 사랑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텅 빈 가슴보단 낫다는! 꿈이 알려준 듯하다. 농게 같은 깁스를 한 지금 말이다.
십여 년 전 소복이 눈이 오면 우리 가족은 소란스레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했다. 딸과 나, 아들과 남편이 편을 먹고,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고. 동그랗게 뭉쳐진 솜뭉치 같은 눈은 우리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주위를 날아다녔다. 그때 아파트 정원 나무들은 웃음소리에 응답하듯 쌓인 눈덩이를 우리 머리 위로 뿌려줬었다. 추운 겨울, 차가운 눈은 따스한 설탕가루처럼 사랑스럽게 떨어졌다.
6, 7년 전, 대전에 함박눈이 며칠 동안 온 어느 날, 남편과 눈 구경을 갔다. 눈꽃을 만들고, 사진을 찍고, 참 예쁘다는 나의 탄성에 남편은 "춥다." 했다. 흰 눈처럼 빛나던 사랑이 차가운 눈이 된 것 같아 슬펐다.
거실에 앉아 남편이 틀어준 음악을 들으며 "사랑을 잃은 꿈을 꿨다." 하니 남편이 웃는다. 따스한 커피를 내려 예쁜 커피잔에 갖다 주며 "그럼 오늘부터 다시 사랑을 찾으면 돼지." 한다. 사랑은 눈 같은 걸까? 순백의 빛나는 알갱이가 손에 잡히면 차갑게 녹아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잠자기 전 남편과 침대에 누어 불을 끄고 물었다. "내가 <눈>을 잊지 못한 건 그 눈송이 같다는, 6개의 축이 있다는 그 구절에 걸려있었던 듯해. 당신은 나와의 사랑을 6개의 단어로 말하면 뭐라 할래?" 하고 물었다. 남편은 "졸려, 6개의 단어는 무슨." 했다. "아니, 단어로 6개만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해봐, 얼른, 졸리다며." 했다. 남편은 졸음이 가득 들어간 목소리로 깜짝 놀랄 단어들을 말하고 곯아떨어졌다. "음, 섹스, 목욕, 등긁이, 여행, 사진, 대화." 란다. 나는 불 꺼진 방에서 나의 6개 단어를 읊조렸다. '딸, 아들, 대화, 목욕, 여행, 추억.'이라고 말이다. 참 다르다. 모든 사람에게는 눈송이가 있고(p227), 서로 닮은 사람들이 사실은 얼마나 다르고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지 말이다. 자신의 눈 결정체를 해독하면 모두 증명한다는데(p229), 이게 진정 남편의 눈송이인지 아리송하다.
올해 눈은 12월에나 오지 싶다. 12월에 다시 나와 남편의 눈 결정체를 정밀하게 해독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