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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치명 Mar 11. 2021

성스럽지 못한

브래지어

 초등학교 6학년, 가슴이 봉긋 솟기 시작했다. 2차 성징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나는 서서히 달라지는 내 모습이 신기했다. 약간의 통증, 신경 써야 하는 옷차림 등등 불편한 점은 있었지만 이 또한 성장하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뭐, 그렇다고 예측할 수 없는 내가 마냥 기특하지는 않았다.     


 중학생이 되고 교복을 입었다. 상의는 남방, 조끼, 재킷 하의는 치마. 나는 브래지어를 지 않고 학교에 갔다. 유두 표시가 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등을 만진 친구가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너 브라자 안 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주변에 있던 친구들이 깔깔댔다. “야! 브라자를 고 다녀야지. 여자인데.” 사실 나는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나와는 멀게 느꼈던 엄마랑 언니를 닮아간다는 것이, 어른으로서의 몸을 갖추어 간다는 것이 어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브래지어를 꼬박꼬박 고 학교에 갈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이 한동안 나를 브라자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썩을 X들)     


 초등학교 3학년인 조카가 브래지어를 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내가 볼 때 아직 조카의 가슴은 브래지어를  만큼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케의 강요였다. 또 조카의 선택이기도 했는데 같이 다니는 친구들은 벌써 브래지어를 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나는 브래지어에 줄곧 생각을 하다가 ‘브래지어 안 할 권리’라는 단편 동화를 썼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브래지어가 영 불편한 아이는 브래지어를 지 않고 다녔다. 하지만 엄마는 브래지어 기를 강요했다. 아이가 티셔츠 밖에 브래지어를 고 친구를 만나러 가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결국 아이한테 항복한다. 조금 늦더라도 아이를 기다려주기로 한 것, 성장을 재촉하지 않기로 한 것. 물론 나는 동화 합평회에서 만신창이가 됐다. 교수가 나한테 브래지어를 안 고 당당하게 돌아다닐 수 있냐고 물었다.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라면서.      


 나는 봄, 가을, 겨울 틈만 나면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다닌다. 이유는 단 하나이다. 땀도 차지 않고 편하다는 것. 하지만 남들의 시선이 가슴으로 향하면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고 가슴을 팔로 가린다. 딱히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회사를 같이 다녔던 O가 점심을 먹으면서 브래지어 이야기를 했다. “아침에 집을 나오는데 깜빡하고 브래지어를 안 한 거야. 집에 다시 갔다 오는 바람에 지각할 뻔했어!” 만약 나였다면 회사에 그냥 출근했을 것이다. 정 신경이 쓰였다면 유두에 밴드를 붙였겠지.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것이 큰일은 아니니까.      


 브래지어는 비싸다. 그리고 브래지어는 세탁하기도 힘들다. 귀찮아서 세탁기에 돌리다 보면 어느새 와이어가 삐져나와 가슴을 찌른다. 사이즈를 잘못 선택하면 브래지어 끈이 자꾸 어깨로 흘러내린다.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다.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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