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섬타로} 당신을 위한 여덟 번째 편지
최근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12회 전편을 재미있게 보았다. 상상 속에나 있을법한 대대로 초능력을 물려받은 가족의 이야기인데, 그들의 모습만큼은 낯설지 않고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현대인의 고질병인 우울, 불면, 비만, 불안 등으로 인해 타고난 능력마저 잃어버린 사람들. 그렇게 색깔이 사라지고 잠이 사라지고 즐거움이 사라진 그들의 모습이 안타깝고도 코믹하게 느껴졌다.
OST :이소라 {바라 봄} https://youtu.be/4AtuLmwujfc?si=xW4tNKsBER507Qb6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장기용 배우가 전역 후 처음 선택한 드라마라고 한다. 너무나 달라진 부드러운 이미지에 놀랐지만 곧 자연스럽고 순수한 연기에 빠져들었다. 연기력에 대해선 더는 말이 필요 없는 배우 천우희가 상대역인 도다해 역을 맡아 열연하였다. 특히 장기용이 연기한 남주인공 복귀주는 행복했던 과거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특별한 재능은 '나는 행복하지만, 타인은 불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순간 저주가 되어버린다. 그는 과거를 바꾸기 위해 수천수만 번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과거로만 돌아간다. 그러는 동안 그의 현재는 완전한 잿빛 지옥으로 바뀌어 버린다. (아래 스포일러 주의*)
(내가 이전에 이 드라마를 보았다면 작가가 소개해주는 순서대로 열심히 보기만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언제나 타로 읽는 사람이고 싶은 지금의 나 역시 부지런히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현재의 장면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어? 내 예상이 맞았네? 이래서 그런 거 아냐?라고 토를 달며, 함께 보는 이를 김 빠지게 하긴 했지만, 내가 많이 달라졌음을 드라마를 보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무척 기쁜 변화이다. :-)
노란 스웨터를 입고 등장한 도다해는 어둡고 절망스럽던 복귀주에게 햇살 같은 희망을 선물한다. 그 따뜻함과 밝음은 시청자들을 저절로 웃게 하고 밝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었다. 복귀주의 딸 복인아 역시 도다해로 인해 서서히 변화한다. 도다해도 학교에서 투명인간 취급받으며 존재감 없던 복인아를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되고 그들은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함께 트라우마를 극복해 낸다. 이 드라마의 키워드를 정리하자면 '현재' 그리고 '성장' 한 가지를 더 덧붙이자면 '구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구원이라, 무척 대단하고 위대한 인물들만이 누군갈 구원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대단한 초능력자들은 그들이 지닌 초능력을 지키기 위해, 숨기기 위해, 거부하고,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느라 일상의 평범한 행복이나 가족의 소중함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이게 무슨 불행이람. 결국 평범한 인간인 도다해가 그들 가족에게(더불어 자기 자신에게도) 가족의 소중함을 일러주고 현재를 살아가는 일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히어로'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 보았다. 제목은 많은 것을 함축하는 듯한데, 도다해의 등장이 복귀주와 가족들을 구원하고, 그런 작은 변화는 도다해 자신의 과거까지 조금씩 변화시킨다. 결국 이 사랑으로 인해 복귀주는 자신의 생명까지 던져가며 과거의 도다해를 구해내는 선택을 하게 된다. 보는 내내 톡톡 튀는 반전도, 진부하지 않은 대사와 아름다운 OST, 화면 구성과 연기력 모든 것에 감탄하며 보게 된 작품이었다. 시청률이 이리 낮다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삶을 잘 살아가는 방법이 뭘까 묻는다면 그 대답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며 늘 현재를 살고 눈앞의 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이라 하겠다. 우리 모두는 그 답을 알지만 알면서 그리 살지 못한다. 현대인의 고질병들: 불안, 의심, 초초, 불신, 불면, 비만, 우울, 나쁜 습관과 환경 등으로 인해 우리는 습관적으로 과거를 돌이켜보거나 오직 미래만을 위해 살기도 한다. 타로를 보는 많은 사람들 역시 지금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좀 더 손해보지 않기 위해, 더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미래를 점쳐본다. 그러나 사실 타로는 늘 현재만을 말해줄 뿐이다. 타로뿐 아니라 내 앞에 존재하는 많은 현실들은 내 상태와 나의 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 표지들을 가만히 살펴보기만 해도 앞으로 내게 벌어질 일은 명확하다. 다만 내 시야가 좁아져 있고, 마음이 답답해 모든 것을 볼 수 없을 뿐이다.
좋은 에너지는 시간의 구분이 없다. 너와 나의 구분도 없다. 사랑은 그저 사랑일 뿐이다. 힘든 당신을 당장 구원해 줄 유일한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이며 다른 누군가가 있다면, 지금 당신의 눈앞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 서로가 서로를 구원할 수 있다면 우린 우리 모두를 구원하고 우리 주변까지 환하게 물들일 수 있으며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드라마와 영화가 속출하는 요즘 잔잔하지만 삶의 정곡을 찔러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좋은 드라마를 만나 기뻤다.
타로를 배우며 이런 이야기를 새겨두었다. "자기 객관화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드시 자기 자신이 먼저 행복해져야 한다"라고. "펼쳐진 한 장 한 장의 타로카드들이 입체적인 하나의 영상으로 스르르 이해되는 날이 결국 올 것이다"라고 말이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의 가족들은 결국 초능력 없이도 온전히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타로를 보는 사람들도 타로 없이 행복한 날이 올 것이다. 내겐 거꾸로 모든 것들이 타로와 맞물려 이해되는 날이 다가오는 것 같고, 이 또한 성장의 과정이자 큰 기쁨이 되겠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타로 생각을 많이 했다. 언제 드라마 전체를 몇 장의 타로로 압축해보고 싶단 생각을 해본다.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드라마다.
* 숲섬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