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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생물 선생님 May 12. 2024

사랑스러운 뽀또 제자들

나 뽀또 안 좋아하거든?

성인이 된 제자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렌다.


개금고 2-7 담임 - 20대 정생물


1. K리그 사건

개금고 아이들은 축구에 미쳐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축구를 많이 하고, 교실 창문틀에는 항상 축구화가 걸려있었던 기억이 있다. 체육대회 말고 또 개금고 리그, 즉 K리그 반 대항 축구 대회가 있었는데 축구 잘하는 학생이 젤 훈훈하게 보였던 나는 항상 남학생 반 담임을 하면 학기 초에 이야기를 했다. 우리 반 올해 목표는 "축구 우승!!!". K리그 전 경기 관람의 업적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나는 우리 반 축구 경기에 진심이라 아이들이 뭘 좋아할지 몰라 포카리스웨트, 게토레이, 파워에이드 등 이온 음료를 사서 운동장에 나가는 게 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과목 특성상 이과반 담임을 하게 되었는데 축구는 뭔가 문과 아이들이 이과 아이들보다 항상 잘하는 느낌이었고, K리그 토너먼트에서 이과반인 우리 반 2-7은 문과반인 2-2에게 또 경기를 지고 말았다.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아 터덜터덜 교무실로 갔는데, 복도에서 만난 2-2 담임 선생님이 나를 보자마자 "정은경샘~ 나는 응원도 안 나갔는데 우리 반이 이겼다고 하네 ㅎㅎㅎ"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너무 열이 받아서 우리 반에 간 다음 너희가 축구 못 해서 내가 방금 이런 말을 듣고 왔다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 고자질을 했다 ㅋㅋㅋ

그 말을 듣고 열받은 아이들은 2-2 담임 선생님 수업 시간에 저런 짓을 해버렸고, 화가 어디까지 났던 영어 선생님은 학생부에 아이들을 넘겨 징계를 받게 하겠다고 했으며 나는 학생부에 가서 우리 반 아이들이 축구에 지는 바람에 제정신이 아니었다며 싹싹 빌며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제가 지도하겠다며 이 사건은 종료되었다. 아이들에게 영어 선생님 수업 시간에 버릇없게 하면 어떻게 하냐고 지도는 했지만 속으로 좀 많이 통쾌했다고나 할까? ㅋㅋㅋ 자기들도 축구 져서 짜증 나는데 자기 반 담임에게 놀리듯 말했던 그 선생님에게 복수를 해주려는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2. 고기 뷔페 가기, 뽀또 선물 받기

나는 그 당시 여름방학 1급 정교사 연수를 위해 대구 경북대에 6주간 갔어야 했고, 내가 없는 동안 잘하고 있으라고 1정을 가기 전 아이들을 고기 뷔페에 데려가는 당근을 제공했다. 1정 연수를 마치고 와서 우리 반 여름방학 보충수업 출석부를 보는데 개판 ㅠㅠ 내가 그렇게 담임이 없을 때 더 잘해야 한다고 그랬는데 담임 없을 때 하고 싶은 걸 다 실행한 출석부였다. 배신감도 느끼고, 1정 연수 점수도 낮아서 그랬던 것일까? 나는 2학기를 지나면서 점점 우울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교사가 되어가고 있었고, 주변 동료 교사들이 나의 계속되는 우울감을 느끼면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 반 놈들도 나의 2학기 모습이 1학기 때 텐션과는 너무도 달라서 걱정을 했는지 어느 한 날은 우리 반 아이들 모두가 쓴 편지와 과자 뽀또를 많이 사서 가져왔다. 나는 뽀또 안 좋아하는데 뭐지? 싶었는데 내가 그 당시 자리 뽑기 등을 할 때 활용했던 뽀또 통을 보고 이 단순한 남학생들이 내 최애 과자가 뽀또인 줄 알았던 것이다. ㅋㅋㅋㅋㅋ

편지를 읽는데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ㅋㅋㅋ 하지만 한 편으로는 미안했다. 왜냐면 여러 번의 경험으로 인해 외부 요인으로는 나의 컨디션이 잘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고, 아마도 이 아이들에게 1학기에 보여줬던 활기찬 모습을 2학기에는 거의 보여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뽀또 통만 가지고 있으면 다 뽀또 좋아하는 거냐고, “나 뽀또 안 좋아하거든?”이러면서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표현을 하지 못한 게 지금 생각하면 참 아쉽다. 2012년 이 아이들은 고3이 되었고, 나는 교무기획 1 업무를 하게 되면서 담임을 하지 않았다. 애들이 나를 볼 때마다 우리가 힘들게 해서 올해 담임 안 하냐는 이야기를 진짜 많이 들었고, 그때마다 큰 업무를 맡으면서 담임을 안 하기로 했다고 말하면 믿지 않는 눈치였다.



2013년 5월 15일 - 뽀또 제자들과 고기 뷔페에 또 가다

2013년 아이들이 졸업하고, 스승의 날에 다 모일테니 또 고기 뷔페에 가자고 ㅋㅋㅋㅋㅋ 냉정에 있는 고기 뷔페였나 ㅋㅋㅋㅋㅋ 졸업을 한 후에 제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찾아오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고기 뷔페를 갈 정도의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2017년 - 뽀또 제자들과의 재회

5월 아빠의 사고로 인해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해다. 부산대 병원에서 부산의료원으로 전원을 하게 되었는데 정수가 그 병원에서 실습하는 걸 알았다. 저녁을 사주려고 만나자고 했더니 알겠다고 했는데 만나자고 한 장소로 갔더니 두유 한 박스를 들고 있는 게 아닌가? ㅠㅠ 선생님 아버지 아프시다고 들어서 샀다며 ㅠㅠ 남자 대학생이 은사님 아버지가 아프다고 두유를 사서 들고 오는 일이 가능한 일인지 너무 고마워서 울컥했지만 내가 제자들에게 이런 사랑을 받고 있는 걸 부모님께도 보여드리고 싶어서 정수에게 "네가 그럼 우리 아빠 만나서 직접 전해줄래?" 했더니 병실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우리 부모님과의 훈훈한 시간을 잠시 가지고 고기를 먹었는데 그날 밤 지원이와 창기도 연락이 되어 투썸에서 만나 시간을 보냈다. 그때 센텀고 아이들 추천서를 쓰던 시즌이라 내가 바쁘니까 카드 주면서 커피 사 오라고 했는데 아이들이 내 카드를 다시 나에게 던지며 "코 묻은 돈 안 써요." 하면서 자기 돈으로 산다고 쿨하게 주문하러 가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ㅋㅋㅋㅋㅋ

연락을 하다 보니 다른 아이들도 같이 보자고 해서 그 해 추석 근처쯤 또 대규모 모임이 있었다 ㅋㅋㅋ 정수가 아이들에게 우리 아빠가 아프고 그래서 선생님이 요즘 힘들다는 걸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날 만난 아이들은 하나 같이 나를 챙기고 위로해 주었다.



2024년 - 다시 한번 모인 뽀또 제자들

5월 내 수술을 앞두고 정수와 다승이랑 연락하다가 내가 아프다고 징징거렸고, 뽀또 제자들과의 만남이 또 줄줄이 진행되었다. 이제 30살이 넘은 뽀또 제자들은 직장을 가지고, 운전하는 아이들도 많은데 정수랑 만나기로 한 날 자기 차로 데리러 온다 해서 어찌나 설렜는지 ㅋㅋㅋ 제자가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타는 첫 경험이었다 ㅋㅋㅋ 저녁을 먹고 또 우리 집에 데려다주고, 내려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너무 훈훈하게 자라 고맙고 뿌듯한 마음에 한 번 안아보고 싶었지만 부끄러워 말도 못 하고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그 후 포항에서 근무하는 창기와 서울에서 근무하는 종록이가 부산에 올 일이 있다며 또 주례에 있는 고깃집에서 정수까지 불러서 또 만났다. 화이트 데이 다음날인 3월 15일 금요일에 만났는데 훈훈한 정수는 화이트 데이 선물이라며 초콜릿과 사탕 등을 챙겨 와서 나에게 주었는데, 종록이랑 창기는 빈 손으로 온 것이 아닌가? ㅋㅋㅋ 이것들아~ 이제 30세 넘었으면 은사님 만나러 갈 때 작은 선물 하나 정도는 사 와야 되는 거 아니냐고 계속 내가 징징 거렸더니 종록이는 그 자리에서 뽀또 30박스 주례여고로 배달시킨다면서 쿠팡에 접속했고, 창기는 고깃값을 계산했다. 그날 남훈이, 동호, 정현이, 재현이 등등 내가 보고 싶은 뽀또 제자들과 통화도 하고, 2차로 호맥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뒷날 토요일 아침 오전 07:05 문자가 한 통 도착했다. 이종록 님께서 보낸 뽀또가 토요일이라 학교 문이 열려 있지 않아 중앙현관에 배달되었다는 문자 ㅋㅋㅋㅋㅋ 진짜 쿠팡에서 주문을 해서 보낸 것이다. 하... 출근 안 하는 토요일 아침에 학교로 도착하게...



내 뽀또 30박스가 혹시나 비를 맞지는 않을까, 중앙현관이 아닌 학교 정문에 던지고 가신 건 아닐까 걱정이 된 나는 욕을 하면서 차를 몰고 토요일 아침 출근을 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뽀또가 보이지 않았는데 야간 경비를 하시는 주사님께서 행정실 앞으로 옮겨놓아서 뽀또는 안전하게 잘 보관되어 있었다. 아... 괜히 왔네 하면서 박스를 들고 교무실로 가서 뽀또 과자 상자 30박스를 마주하였다. 토요일에도 플러스 교육과정 수업 때문에 출근하신 선생님들께 나눠드리고, 그다음 주 2학년 생활과 과학 수업에 들어가서 훈훈한 뽀또 제자와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며 아이들에게도 한 봉지씩 나눠 주었다.




뽀또 제자들과 나는 띠동갑 -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우리 처음 만난 그날에

뽀또 제자들과 나는 띠동갑이다. 그리고 내가 자기들 담임이었던 그때 나는 29세였는데 이제 자기들이 30대가 되어 자꾸 현재 정생물 나이를 생각 못하는지 자꾸 29세 정생물을 대하듯이 ㅋㅋㅋ 후배 챙기듯 나를 챙겨 준다. 29세에 겁도 없이 남자애들 36명을 데리고 고기 뷔페에 데려가 돈을 쓴 나를 높이 평가한다는 느낌? ㅋㅋㅋ

띠동갑 개띠 선생님 챙긴다고 고생하는 우리 귀요미들아~ 샘이 농담으로 못생겨졌으면 밥 안 사준다 했지만 ㅋㅋㅋ 너희가 나에게 어떤 보물인데 ㅠㅠ 언제든 맛있는 걸 사 줄 수 있단다. 이제 아이들이 직장생활을 하니 커피는 자기들이 산다 ㅋㅋㅋ

2011학년도 2-7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우리 처음 만난 그날에~ 내가 좋아하고 즐겨 부르는 노래 가사에 딱 어울린다.

https://www.youtube.com/watch?v=rOCymN-Rwi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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