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자녀들에게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권면한다(엡 6:1). 여기에 쓰인 "순종하다(ὑπακούω)"는 단어는 앞서 아내들에게 권면할 때 사용한 "복종하다(ὑποτάσσω)"라는 단어보다는 어감이 더 부드럽다. "복종하다"가 자기 자신을 상대방에게 굴복시키다는 의미이고, "순종하다"는 "아래에서 듣다(under-listening)"는 뜻이다. 그러나 두 단어는 호환이 가능하다. 이는 바울이 "순종하다"는 단어를 종들에게 권면할 때도 사용한 것에서 알 수 있다(엡 6:5). 그럼에도 바울이 자녀들에게 "순종하다"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좀 더 세심한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다. 순종은 자신을 상대방보다 낮춰서 듣는 일이라고 단어로 설명하는 것이다. 마치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마리아처럼(눅 10:29).
그렇다면 자녀들은 이 순종을 어떻게 배울까? 바울은 "아내와 남편" 그리고 "자녀와 아버지"의 순서를 통해서 그리고 "순종하다"는 유의어 사용을 통해서 자녀들이 순종을 엄마한테서 배운다고 암시한다. 개인차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대체로 자녀들은 가정에서 엄마를 아빠보다 더 유능한 존재로 인식한다. 이것은 엄마가 가진 멀티태스킹 능력만이 아니라 엄마가 하는 일들이 자녀들의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필요를 더 채워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녀들은 아빠가 엄마 말을 듣는 경우를 그 반대보다 더 자주 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더 똑똑하고 유능한 엄마가 아빠 말에 순종하는 것은 볼 때 "왜?"라는 질문을 갖는다. 그러면서 순종을 배운다. 순종은 결코 능력이나 지혜의 우열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각자가 가진 역할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질서를 존중하는 행위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자신들보다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분들은 자신의 부모로 주신 질서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그런 것처럼, 부모의 말을 순종하는 것은 겸손할 때만 가능하다. 능력이나 지혜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편의 말을 듣는 방식은 여전히 나 자신을 의지하는 삶이다. 내 능력과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이 부모 밑에서 태어나고 자라게 하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부모에게 순종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질서를 따라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부부가 되게 하셨고 지금도 이 가정을 통치하신다는 신앙의 표현이다.
자녀들은 엄마에게 순종을 배우는 것처럼 아빠에게는 사랑을 배운다. 엄마는 대체로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아이들은 엄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체감하며 자란다. 문제는 젖먹이 때부터 엄마의 사랑을 체감하다 보니 그것을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아는데 엄마가 자신에게 한 것처럼 누군가에게 하라고 하면 "내가 게 엄마도 아닌데 왜?"하고 따진다. 특히나 아들들은 엄마의 끔찍한 사랑을 받고 자랐음에도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는 일에는 서툴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의 본능적인 사랑이 아니라, 아빠의 실천적인 사랑에서 자녀들은 사랑을 배운다. 사랑을 한 단어로 정의하면 "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내어주셨다. 바울은 남편들에게 자기 몸을 끔찍이 여기는 것처럼, 자신을 내어주어 아내를 돌보라고 권면한다. 결국 자녀들은 아빠가 엄마를 어떻게 사랑하는가를 보며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사랑을 표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랑으로 돌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를 더 빛나게 하는 아빠의 모습에서 사랑을 보고 배운다. 이렇게 보면 최고의 가정교육은 부모가 부부로서 서로 순종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