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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 Jung Aug 04. 2024

[창작소설] 벗, 미치광이 - 제2권 25화

주인공-2

{ 벗, 미치광이 - 제2권 24화 }에서 이어집니다.


 곰 같은 경찰은 두툼한 손으로 담배를 꺼내 물고 유달리 작아 보이는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아랫니에 낀 무언가를 혀로 빼려는 듯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가 연기를 뿜는다. 하지만 이내 크고 힘세지만 착한 곰의 얼굴로 돌아온다. 쩝-하는 소리를 내는 걸 보니 아랫니에 낀 것을 빼냈나 보다.

 「아저씨, 경찰이죠?

그는 어린아이로부터 하늘이 왜 푸른색인지 따위의 질문을 들을 때와 같이 푸근하면서도 장난기 어린 얼굴을 하고, 연기를 옆으로 뿜으며 대답한다. 그는 담배연기를 뿜으면서 말해도 기침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네, 학생. 경찰 맞아요. 경찰을 보니 신기해요?」

 「아뇨, 신기하기는요. 전혀요. 그리고, 저는 학생이 아니에요.」

 「아하. 실례했습니다. 워낙 어려 보여서요. 설마 하니 미성년자가 경찰 앞에서 당당하게 담배를 피우지는 않을 텐데 말이죠. 실례했어요. 그나저나, 노량진에서 여기까지는 어떤 일로 왔어요?」

그의 말씨에서 악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를 속여온 대부분의 사람들도 처음에는 친절했다.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 딱히 내가 대답을 늦춘다고 해서 다그칠 것 같지도 않다. 그래,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

 「어려 보인다는 말도 하시는 것 아니에요. 그거 성희롱이에요. 경찰이 그런 것도 몰라요?」

족히 마흔은 들어 보이는 덩치 큰 남자의 입에 물려 타들어가던 담뱃재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다가 맥없이 끊어져 땅으로 떨어진다.

 「아니, 그래도 초면인데⋯⋯. 무슨 말만 하면 뭐라고 짜증내시고 그러시면 안 돼요. 안된다고 봐요, 저는.」

그가 기분이 상한 듯 투덜거리며 나를 향해 말한다. 그리고는 편의점 안쪽으로 고개를 돌려 큰 소리로 외친다.

 「허형사! 동안이라고 하면 성희롱이냐!」

편의점 안쪽에서 곧장 대답이 들려온다.

 「성희롱 맞을걸요, 여자한테 그러면! 뭔데! 또 무슨 일인데요!」

편의점 안에서 들려오던 허형사의 목소리가 커지더니 결국 편의점 문이 열린다. 허형사가 말을 잇는다.

 「선배님. 제발 좀 우리 일만 합시다, 예? 아 지금 뭐 하는데⋯⋯. 우리 탐문 갈 데가 아직 한참은 더 있어요. 여기서 이러고 계실 때가 아니라고. 뭐, 여기 학생한테 동안이네 어쩌네 그런 거예요 지금?」

왜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를 학생이라고 부르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허형사가 다그치자 선배 형사는 담배꽁초를 파라솔 아래 깡통으로 던질 뿐 말이 없다. 꽁초는 깡통의 모서리에 부딪히고 밖으로 튕겨 나와 토사물의 흔적이 남아 있는 땅바닥에 떨어진다.


 허형사의 질문에는 침묵하던 그가 다만 조용히 욕을 뇌까리며 파라솔 쪽으로 걸어와 꽁초를 주워 깡통에 넣는다. 그가 막 굽힌 허리를 세울 때에 내가 먼저 말을 꺼낸다.

 「경찰 아저씨. 두 분의 일을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나는 둘이 내 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잠시 틈을 둔다. 선배 형사가 말한다.

 「거의 들어갔었어. 깡통이 쭈굴쭈굴해서 안 들어간 거야.」

 「아 뭐가요, 뭐가. 일 안 해요?」

이 둘은 내가 조금 전 한 말을 듣지 못한 걸까? 나는 목을 가다듬고 다시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어 말한다.

 「잘 들어요. 제가요. 두 분의 일을요. 도와드릴 수 있다고요. 아시겠어요?」

파라솔 그늘에 붙어 선 선배 형사와 편의점 문 손잡이를 잡고 선 둘의 얼굴을 내가 중간에서 번갈아 살핀다. 허형사는 세상 다 귀찮은 듯 짜증 가득한 얼굴로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신경질을 내는 그의 목소리가 유리문 너머로 들리지만 풍경소리에 묻혀 알아들을 수는 없다. 선배 형사는 볼을 손톱으로 긁으며 파라솔 아래 플라스틱 의자의 위치를 그늘로 옮기더니, 막상 본인은 그늘 밖 의자에 앉는다. 그가 손짓으로 내게 와서 앉으라 하기에, 나는 군말 없이 따른다. 이미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은 나를 향해 그는 손바닥을 정면으로 펴 보이며 잠시 기다리라는 듯 신호하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기 너머의 상대에게 그가 말한다.

 「처음에 고민하던 것 중에 말이야. 어, 그렇지. 큰 것 말고, 작은 걸로. 응. 두 개. 아, 알았어. 세 개. 부탁 좀 하자.」

그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내 얼굴을 향하던 두툼하고 커다란 손바닥을 내려놓는다. 나는 의자를 조금 뒤로 옮겨 자세를 고쳐 다리를 꼬고 앉는다. 플라스틱 의자에는 어떻게 앉아도 편안하지 않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편안암 그 자체보다는 편안하게 앉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나는 팔짱을 끼고 그와의 대화에 대비한다.


 잠시 뒤 허형사가 여전히 짜증스러운 얼굴로 수박주스 세 개를 손에 들고 파라솔로 다가온다.

 「후배를 챙기는 법이 없어, 아주.」

허형사가 탁상에 주스를 내려놓으며 말하자 선배 형사가 대꾸한다.

 「어쨌건 결국에는 세 개 샀잖아. 왜 맨날 나한테 뭐라 그러냐 너는.」

 「아, 예. 예. 아무렴요.」

허형사는 대화를 서둘러서 대충 매듭지으며 주스를 선배 앞에 하나, 내 앞에 하나 내려놓고는 플라스틱 의자 하나를 당겨 앉고 말없이 주스를 들고 목에다 가져다 댄다. 갈증보다 바깥공기의 열기가 그에게는 더 큰 짜증인 것 같다. 그런 후배를 못마땅하게 위아래로 훑어보고서 선배 형사가 내게 말한다.

 「마셔요. 내가 사는 겁니다. 그래, 들어나 봅시다. 저희를 도와주실 수 있다는 게 뭐예요?」

마침 목이 마르던 참에 마다할 이유는 없다. 내가 뚜껑을 돌려 열고 주스를 입에 가져다 댈 때 옆에서 허형사가 작은 목소리로 생색은-하며 비아냥 거린다. 시원하기는 하지만 단 맛이 너무 강해서 오히려 갈증을 부추기기만 하는 주스를 내려놓고 내가 말한다.

 「살인 사건 수사하시는 거죠?」

선배와 후배 형사의 표정에서 아주 잠깐 놀라움이 비쳤지만 이내 사라진다. 후배 형사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명함을 꺼낸다. 후배를 따라 하기라도 하듯이 선배 곰 형사도 명함을 꺼낸다. 나는 말없이 손을 뻗어 명함을 집어든다.

 「형사 배웅⋯⋯. 형사 허형사⋯⋯.」

장난하나?


 내가 눈썹을 추켜올리고 이름이 이상한 명함 두 장과 그 주인 둘을 번갈아 쳐다보니, 나와 같은 반응이 낯설지는 않은 눈치다. 곰처럼 생긴 형사는 정말로 이름이 웅이다. 그가 허형사라고 부르던 건 이름일까 직함일까. 내가 두 명함을 주머니에 넣으려는데 곰형사가 조급하게 말한다.

 「잠깐만요. 그거 잃어버릴 수 도 있으니까, 지금 전화기에 번호를 저장해 두세요. 뭐, 어려운 부탁은 아니니까.」

난감한 일이다.

 「없어요, 전화기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형사의 눈빛이 가늘게 빛난다.

 「폰이 없어요? 요즘 세상에?」

주어진 일의 목적달성이 우선인듯한 그의 말투에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상냥한 사람이 좋은데, 이상하게 첫인상부터 까칠하기만 한 허형사의 태도에 믿음이 간다.

 「네, 없어요.」

 「왜 없어요?」

 「왜라니요? 없으니까 없죠. 있으면 이유가 있겠지만.」

 「있건 없건 이유는 있죠. 필요가 없어요? 폰이?」

 「필요해요.」

 「그런데 왜 없어요?」

그의 말이 맞다. 있는 것에도, 없는 것에도 이유는 있다.

 「일이 좀 있었어요. 두 달 전 즈음에 누가 저를 육교에서 떨어뜨렸거든요. 전화기는 병원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부터 안보였어요. 하나 새로 사기는 해야 하는데, 신분증도 없고 일자리도 구해야 하고 그래요. 아무튼, 그래서 없는 거예요.」

허형사는 입술을 동그랗게 모으고서 작은 소리로 오-하며 선배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그 모습을 본 곰형사는 잠시 시간이 멈춘 듯 생각하더니 탄성과 함께 말을 뱉는다.

 「아! 유지양. 압니다, 알아요. 정형사 하고 변형사가 맡았던 사건인데, 뉴스에도 나오고 말이죠. 건강해 보여서 다행입니다. 응. 그런데, 그 사건은 피의자가 치료 중에 사망해서 종결됐어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아니, 제가 볼 때 오히려 유지양이 저희를, 아니, 누구라도, 누구를 돕기보다는 오히려 도움이 필요하신 것 같은데요. 방금 얘기한 것처럼 신분증도 없고, 휴대폰도 없고, 직장도 없고⋯⋯. 아, 이 편의점이 전에 일하던 곳이었네. 맞네, 맞아. 그렇죠?」


 나름 내가 강력범죄 분야에서는 유명세를 탔나 보다. 유명세라면 끔찍하게 싫은 마당인데 큰일이다.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

 「네, 제가 유지인데요. 제 사건 하고는 상관없이⋯⋯. 지금 두 형사님이 조사하고 계신 사건 말이에요. 제가 그걸 도와드릴 수 있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이번에는 곰형사가 입술을 가로로 길게 늘어뜨리고 허형사를 쳐다본다. 허형사는 마시던 주스를 내려놓고 혀를 길게 내밀며 형편없는 수박주스의 맛을 표정으로 내비치며 말을 꺼낸다.

 「뭐, 어떻게요? 목격자세요?」

 「네.」

허형사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파이고 귓바퀴가 까딱하며 움직인다. 곰형사는 탁상으로 몸을 기울여 내게 신경을 집중하면서 담배를 하나 꺼내문다. 내가 같이 몸을 숙이자 그가 담뱃갑을 내쪽으로 조심스럽게 밀어내고, 미끄러지던 그의 담뱃갑은 탁상 가장자리에서 멈춘다. 나는 그에게 예의상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내 담배, 불사조가 좋아하는 버지니아 레드를 꺼내 문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허형사를 가운데에 두고, 나와 곰형사가 말없이 불을 붙이고 연기를 뿜는다.

 「저희가 설명을 보태지는 않습니다. 목격하신 사건이 뭔지 말씀해 주세요. 저희가 수사 중인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는 이후에 판단할 문제입니다.」

허형사가 업무적인 말투로 짧았던 침묵을 깬다. 이름이 형사라서 그런지 허형사는 정말이지 형사다운 형사이다.


 대답을 하되, 한 마디 한 마디에 신중해야 하는 나로서는 그와 대화함에 있어 속도 조절을 해야만 한다. 그는 일톤트럭 짐칸에서 일어난 사실을 모르고, 목격자라고 밝힌 나를 채근할 입장이 아니다. 그에게 나는 번거로운 업무를 줄여줄 동아줄이다. 그러므로 그는 나의 대답을 신중하게 기다려 줄 것이다. 나는 담배를 평소보다 느리게 피운다. 내가 절반 정도 태웠을 때, 이미 곰형사는 손을 뻗어 내게 건네었던 담뱃갑을 집어 들고 한 개비를 새로 꺼내고 있다. 새로 담배를 입에 문 그가 담뱃갑을 움켜쥔다. 내게 권했을 때에도 그 속에 한 개비만 남은 것을 그는 알고 있었을까. 크고 두꺼운 손이 라이터를 켜는 순간, 내가 말을 꺼낸다.

 「살해 도구가 드라이버죠.

두 형사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쭈욱 내민다. 그때, 풍경소리가 울리고 편의점 사장이 밖으로 나온다. 나 혼자서 경찰 둘을 상대하고 있는 모습에 불안했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자백이라도 할까 봐서 그는 두려운 것이다. 완벽하게 마무리해서 타살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할 거라 장담했던 사장이지만, 경찰이 가게로 찾아옴으로써 실수가 있었음을 그는 이미 직감한 터였다. 그런 그를 안심시키는 일이 우선이라고 내 직감이 속삭인다. 서둘러야 한다. 어쩌면 사장이 먼저 자수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내 인생은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지고야 만다. 더 이상은 안된다. 내 인생이다. 침착하자.


 「다시 일할 수 있는지 여쭤보려고 온 거예요. 두 분 때문에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네요. 퇴원하고 나서 처음 들렀는데 말이에요. 제 얼굴을 알아보기나 하실지 모르겠네요. 일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그 일이 있었거든요. 저 사장님이 저를 많이 챙겨주셨어요. 여러모로. 사장님, 저 기억하시겠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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