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작가님이 최근에 임신한 고양이를 길에서 구조하여 임시 보호하고 계셨다. 혹여나 집에서 보호하는 동안 새끼를 출산할 수도 있어서 탯줄을 잘라야 한다던가, 응급상황에 대비하여 따로 공부를 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고양이 얘기를 할 때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작가님에게서 엄마의 말투가 묻어났다. 평소 차분하신 작가님이 목소리 톤부터 한 톤 올리며 사랑스러워 미칠 것 같은 고양이 세상에 대해 얘기하시는 모습이 새삼 낯설었다.
한 분은 자신의 얘기를 보탰다. 자기는 지금껏 고양이를 키우지 않다가 얼마 전 길고양이를 키우게 됐는데, 그러다 보니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고양이들을 보면 안타까워서 눈을 뗄 수가 없다고 했다. 길고양이들은 늘 겁을 먹은 채 자동차 밑이나 좁고 어두운 골목 어딘가에 숨어 몸을 웅크리고 있다고. 신경 쓰이는 녀석들 때문에 가방엔 항상 고양이가 좋아하는 간식인 ‘츄르’를 넣고 다니고, 비가 오는 날이면 괜히 우산을 꺼내 들고 추위에 떨고 있는 고양이들은 없는지 살폈다고 했다. 보호와 사랑의 마음을 늘 가방 속에 가지고 다니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고양이의 발바닥을 보고 반한 적이 있다. 길고양이들은 두려움이 많아서 바닥에 벌러덩 누워있는 일이 별로 없는데 고양이를 키우는 지인의 집에 초대받아갔을 때였다. 지인이 키우는 고양이도 몇 년 전 길에서 구조하여 데려온 아이였는데, 이 녀석은 내가 들어오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세상 편하게 벌러덩 누워 햇볕을 쬐고 있었다. 고양이 옆으로 다가가 아기의 손끝처럼 부드럽고 핑크빛을 띠는 발바닥을 손으로 톡, 건드려봤다. 신기한 감촉이었다. 말랑말랑 젤리 같았다. 실제로 고양이의 발바닥을 ‘핑크 젤리’, ‘분홍 젤리’라고 부른다고 한다.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이 녀석은 내가 발바닥을 건들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잠깐 째려보긴 했으나, 다시 누어 천하태평으로 낮잠을 잤다.
지인은 고양이의 발바닥 감촉도 집사의 행복이지만 구수한 발 냄새를 맡는 것조차 행복이라고 했다. 고양이의 엉덩이를 토닥여주는 일이나 집안에 살림살이를 안전하게 배치해 놓는 일은 사랑 그 자체였다. 길에서 수많은 위험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길고양이들은 늘 경계태세를 갖춘다. 아무리 사뿐사뿐 조심히 걸어도 조금의 굳은살이 생길 테다. 반대로 집에서 가족들의 사랑을 받는 집고양이들은 길고양이보다 더 반들반들한 핑크색 발바닥을 가지고 있겠지. 보드라운 핑크빛은 사랑과 보살핌의 마음이 있어야만 유지가 가능한 것이었다. 동네에 길고양이 1마리가 11마리로 늘어나는 데는 6개월도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가 지나다니는 길목 어딘가엔 태어나서부터 사람들의 날 선 태도에 겁부터 배운 작은 생명체들이 벌벌 떨며 숨어있다.
작가님의 집에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새끼 고양이 5마리가 태어났다. 작가님의 극진한 관심과 사랑 속에 안전한 집에서 어미의 젖을 먹으며 자라고 있었다. 이제 그 아이들은 시기가 되면 입양의 절차를 밟아 다른 가정의 품으로 인도해야 한다. 나는 그중에 ‘백설’이에게 마음이 갔다. 자꾸 작가님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다. 눈에 밟히는 이유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더 하얀 털에 핑크색 코와 핑크색 조그마한 입이 귀여워서다. 핑크색 발바닥까지 합치면 백설이는 핑크의 쓰리콤보를 갖춘 아이.
“작가님, 저 백설이가 너무 아른거리는데 어쩌죠?”
“저마다의 인연이라는 게 있어요. 고양이와의 삶이란 밥과 물, 장난감을 가져다 바치고 냄새나는 응가와 쉬를 치워줘야 하는 일의 반복입니다. 손과 다리에 긁히는 자국도 많이 생길 거고요. 그런데 이상하게 상처를 내려다볼 때마다 싱긋 웃게 됩니다. 왜인지는 직접 경험해 보시면 알아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생명체와의 인연이 당신에게도 닿길 바라며...”
생명의 소중함을 너무나도 잘 안다. 어릴 때 강아지를 키운 적이 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고 계셔서 집에 동생과 둘이 있는 날이 많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지금의 백설이처럼 생긴 작은 강아지를 선물 받았다. 내게 찾아온 인연이었다. 강아지의 이름을 ‘해피’라고 지었다. 늘 곁에 품으며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했다. 해피를 통해 여자들은 생리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엄마가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교배를 시키고 왔다고 했을 때에도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해피의 젖이 커지고 배도 불어나는 것을 보고 곧 새끼가 태어나는구나, 했다. 몸이 무거워 힘들어하는 해피를 나는 계속 쓰다듬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해피는 무거운 몸으로도 꼬리를 살랑대며 현관까지 마중 나와 있었다. 누군가에게 마중받는 기분이 그리 좋은 줄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엔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왔는데 해피가 나와있지 않았다.
“해피야, 어디 있어?”
해피가 누워있을 곳으로 가보니 출산의 경험도 없던 해피가 이불에 축축한 무언가를 쏟은 채 힘들어하고 있었다. 크게 불어난 자궁 사이로 뻘건 양수막에 싸여있는 새끼가 반쯤 나와있는 게 보였다. 혹여나 잘못될까 봐 해피를 조심스레 안고 한쪽 손으로는 자궁에서 조금씩 빠져나오는 작은 생명체를 받치고 동물병원으로 뛰어갔다. 아니, 뛰다가 떨어트릴까 봐 조마조마하며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왼손에 받치고 있는 붉은빛의 핏덩어리는 한 여름의 내 손보다 더 뜨거웠다. 피를 보면 극도의 공포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런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동물병원에 도착해서야 엄마에게 빨리 와달라고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은 막에 싸여 죽을 뻔했던 새끼 강아지를 호흡할 수 있게 마사지를 하며 해피의 그곳에서 네 마리의 강아지를 더 꺼냈다. 강아지 배꼽에 연결되어 있는 탯줄이 마냥 신기했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는 것은 단순한 사랑보다 더 뜨거운 것이어야겠구나 생각했다.
아직도 왼손에 닿았던 작은 생명의 온기가 생생하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것은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기꺼이 내가 희생하더라도 너희가 안심하며 살아갈 수 있게 두 손으로 안아 만든 울타리처럼. 나는 다시금 백설이의 여리한 핑크빛 코와 입술과 발바닥을 핸드폰을 꺼내어 본다. 사진 속 백설이의 '핑크 젤리'를 손으로 콕, 찍어본다. 우리의 인연이 실제로 닿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