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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예예 Oct 08. 2023

빼빼로 10개만 먹고 다시 공부하자

공부할 때 먹기 좋은 과자, 빼빼로


11월이 되면 편의점 과자 진열대는 빼빼로로 가득 찬다. ‘저거 다 팔리려나…’싶을 정도로 쌓인 직사각형 과자꽉들을 보고 있으면 빼빼로데이의 위력이 실감 난다. 1년에 단 한번. 이 가늘고 긴 과자는 국내 최고 영향력을 가진 과자가 된다. 하지만 그 유효기간은 딱 한 달이다.


빼빼로는 선택의 폭이 넓은 과자다.


11월 11일이 지나면 빼빼로는 마법에서 풀린 것처럼 다시 평범한 과자로 돌아온다. 가장 눈에 띄는 자리인 계산대 앞, 가게 앞, 과자 진열대 중앙에서 내려와 본래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간 빼빼로를 보면 안타깝다. 이 과자의 쓸모는 빼빼로데이에만 있는 게 아닌데. 사실 빼빼로는 시험 공부할 때 먹기 좋은 독서실 최적화 과자다.


빼빼로 2+1 행사 시즌은 시험기간

시험기간에 처음 빼빼로를 먹었던 건 대학교 1학년 2학기 기말고사쯤이었던 것 같다. 한창 시험공부를 했던 12월 초쯤에는 빼빼로데이가 끝난 다음 달이라 그런지 2+1 행사가 흔했다. 하나 덤을 놓칠 수 없어서 웬만하면 과자 세 통을 집어 들었다. 양이 많으니 친구와 나눠먹기 좋았다. 가끔 과자를 사고 열람실로 돌아가는 길에 공부하다 쉬러 나온 친구를 마주치면 함께 빼빼로 한 통씩 나눠먹으며 수다를 떨다가 서로 파이팅 응원의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자리로 복귀하곤 했다. 그러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오독오독 빼빼로를 한 봉지씩 먹으며 시험에 대한 불안, 피곤함도 털어내고 서로 응원도 주고받은 덕분인 것 같았다.


야금야금 먹기 좋은 과자

시험기간 여대 열람실은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열람실로 돌아와 문 열고  들어오는 친구들을 가만 보고 있으면 옷차림부터 그녀들의 학습 의욕을 엿볼 수 있었다. 큰 후드티와 고무줄 바지 그리고 전공책들이 다 들어갈만한 커다란 백팩. 책상 위는 또 어떤가. 전공별로 쌓인 책과 프린트물, 필통, 물통, 커피... 그리고 각자의 소중한 전투식량이 되어주는 간식이 있었다. 저마다 취향에 따라 귤, 초콜릿, 홈런볼 등 각양각색이었지만 모든 간식들은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했다. 물론 나의 빼빼로도.  


첫째. 냄새가 나지 않을 것. 옆 자리 학우의 간식 냄새 때문에 절로 고개가 돌아간다면?
비매너 간식이다.

둘째. 씹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을 것. 간식을 한 입 씹을 때마다 와그작 소리가 난다면?
옆 자리 학우의 집중력을 깨는 방해공작이다.

셋째. 먹고 손가락에 흔적이 남지 않을 것. 다 먹고 손가락에 묻은 양념을 닦아야 한다면?
책장을 넘길 수도 필기를 할 수도 없으니 열람실에 온 목적에 맞지 않는 간식이다.


'과자 몰래 먹'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과자 중에 빼빼로와 홈런볼도 있었다. 역시 나 뿐 아니었다. ̄▽ ̄


나만의 휴식 타이머

빼빼로는 입의 심심함을 잘 달래주는 과자이기도 했다. 가느다란 과자를 오도독오도독 씹어먹다 보면 그 리듬으로 마음이 안정이 되는 것 같았다. (입을 벌리지 않고 먹으면 나만 들을 수 있는 데시벨로 오도독 소리가 난다.) 아몬드/누드/기본/딸기/녹차 등 맛과 식감이 다양해서 질리지 않았다. 두께도 선택할 수 있었다. 기본두께를 먹으려면 롯데 빼빼로, 가느다란 걸 먹고 싶으면 포키, 아예 두꺼운 걸 먹고 싶으면 통크!


오독 오독... 이것만 먹고 다시 공부하는 거야..


잠깐 휴식을 취할 때는 빼빼로를 타이머로 삼기도 했다. 이 가느다란 막대과자 10개를 고이 꺼내 ‘10개 먹으면 다시 공부하자!’ 결심하고, 하나, 둘, 셋… 먹다 보면 차츰 힘이 났다. 공부에너지가 서서히 차오르는 것 같았다. 사실 지금 와서 고백하자면 때론 더 쉬고 싶다는 생각에 빼빼로 10개를 아주 천천히, 정성스레 씹어 보기도 했다. 1초에 한 번 오독, 다음 1초에 또 오독.. 하. 공부 빼고 모든 게 재밌는 시험기간에 이 시간은 소소한 힐링타임이었다. 빼빼로 수십 통을 먹고 난 무사히 대학을 졸업했다.


회사에 시험기간은 없지만

요즘도 가끔 시험기간처럼 회사에 할 일이 많을 때 빼빼로가 생각난다. 이 과자를 한 통 먹고 나면 다시 집중할 힘을 얻을 것 같다. 이미 그렇게 힘내면서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나. 결국 해낼 수 있다는 응원을 주는 친구, 빼빼로는 내게 그런 추억들을 되새겨주는 과자다. 그동안 고마웠고 앞으로도 파이팅 하자, 빼빼로!

(빼빼로데이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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