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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리브 Oct 20. 2024

나를 쫒는 모험




어린 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이란 개념은 마치 수학의 0이란 숫자와도 같이 간단해 보이면서도 굉장히 어렵고 철학적인 개념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나 부모님 같은 다른 사람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게 된다. 남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내서 하게 되면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랑의 맛에 취해 꽤 오랜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드디어 그것이 부질없다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나에 대해서 알아야 남은 삶을 최대한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에 대해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 결국 세상에 대해 알게 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만큼 자신에 대해 알아내는 것이 어렵다고 할 수 있고 또한 세상이란 것이 그렇게 엄청나게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겠다.






소크라테스라는 위인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너 자신을 알라고 한 이유가 그것이 결국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대해 알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방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 바로 내 안에 결국 이 세상이 녹아들어 있고 이 세상도 뜯어보면 결국 나의 조각들과 같은 성분들로 이루어 것으로 보일 때가 있다.


나라는 존재가 광활한 우주 속의 먼지같이 하찮은 존재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나하나 사라다고 해서 이 세상은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탄생이 이 넓은 세상에 그 어떤 변화를 주었고 나의 죽음과 함께 세상의 일부가 손상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가정하고 나면 많은 종교들의 메시지가 설명이 되기 시작한다. 기독교와 불교 그리고 이슬람의 가르침이 일부 이해가 될 수 있다.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메시지도 효력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모든 생명과 세상은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도록 설계되어 있다.






우린 모두 각자 개개인의 목표가 있다. 하지만 결국 목적지 즈음에 다다르면 세상의 여러 가지 유무형의 존재들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이 목표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결국 삶 자체라고 끼게 될 수 있다.


신해철님의 명곡 민물장어의 꿈 마지막 부분에 나오다시피 아무도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일 수밖에 없다.


죽기 전까지 얼마나 나 자신에 대해 게 될 수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 태어난 이상 이미 목표는 정해져 있고 그곳을 향해 그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길 그리고 결국에는 웃으며 세상과 작별하게 되기를 나는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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