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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한 Jul 20. 2016

나는 아빠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빠처럼만 살 수 있었으면


"너는 나처럼 살면 안 될 거 아니야."


 부모는 언제나 자식이 자신보다 더 잘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간직하고 있다. 자꾸 자신을 닮아가려는 자식을 보며 '저러면 안 되는데 어쩌나'하는 조바심마저 느끼기도 한다. 자식을 보며 대견하고, 안타깝고, 미안한, 단 하나의 감정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을 나는 아빠를 보며 많이 느낀다. 아빠는 내가 자라 올 동안 더 많은 것들을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언제나 미안해하셨다. 


 사실 어렸을 때는 용돈을 많이 주지 못하는 아빠가 이따금씩 밉기도 했다. 또래 친구들과 비교하면서 용돈이 적다며 투덜거리기도 했다. 머리가 크면서 나의 용돈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것들이 있었고(물론 지금도 있지만), 아빠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우리 집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는 것, 항상 용돈을 더 주지 못해 미안해했다는 것 등등 많은 것들을 알았다. 


 아빠는 포기한 것이 참 많았다. 아빠는 딱 내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었다. 장남이었던 아빠는 한순간에 4명의 동생들을 이끄는 가장이 되었다. 자신의 꿈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먹고사는 일에만 오롯이 매달려야 했다. 고달팠을 테다. 절망적인 현실이, 긍정이라곤 보이지 않는 미래가 아빠를 쥐고 흔들었지만 아빠는 그저 묵묵히 생계를 꾸려갔다. 아빠는 어렸을 적부터 나에게 이 일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며 생활이 여유로워지면 일을 그만둘 거라고 말했지만 그 말을 들은지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똑같은 일을 하고 계신다. 


 여름엔 땡볕에서 태양을 내리쬐며 더위와의 사투를 벌이고 겨울엔 차가운 바람을 견뎌가며 아빠는 그렇게 지난 30여년을 견뎌오셨다. 그런데도 아빠는 당신의 건강은 생각지 않고 가족들 먼저 챙기시곤 한다. 이젠 본인의 몸을 챙길 때도 됐지만 그런건 안중에도 없다. 으레 그래왔으니 '난 괜찮으니까'라고 말하는 아빠의 모습이 언제나 안타깝다. 전역 후,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나서 아빠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실감하게 되었다. 백만원 남짓 버는 일이 이다지도 힘든데 한 가정을 책임져야 되는 가장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오늘은 더우니 나가지 말아요. 더우면 에어컨도 좀 키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게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내가 아빠를 우러러보게 된건 단순히 아빠가 돈을 벌기 때문은 아니다. 내가 보는 아빠는 가장이기 이전에 좋은 남편의 모습이었고 좋은 아버지였다. 날씨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직업이라 얄궂은 날씨를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엄마가 밥은 먹었는지, 아프진 않는지 걱정하셨다. 나에겐 '오늘 많이 더우니 나가지 말고 더우면 에어컨을 켜고 있으라'면서 그늘진 곳에 있는 나를 걱정하셨다. 


 얼마 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11시가 넘어서 집에 오니 아빠가 주무시지 않고 계셨다. 아빠는 엄마에게 내가 배고플테니 밥을 차려주라고 하셨다. 이거 저거 정리하다보니 12시가 되서야 밥을 먹게 되었는데 그 때까지도 아빠는 주무시지 않고 계셨다. 알고 보니 내가 노트북을 사려고 엄마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청했는데 아빠는 그게 못내 마음에 걸리셨나보다. 나는 밥을 먹으며 얘기를 하려나 했지만 아빠는 내가 다 먹을때까지 기다리셨다. 결국 1시가 다 되어서야 아빠는 하려던 얘기를 꺼낼 수 있었다. 금전적인 도움은 순전히 아빠의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나의 의사를 묻고 더 보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까지 얹으셨다. 


  그 10분 정도의 대화를 하기 위해, 아빠는 2시간을 기다렸다. 밥먹으면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였지만, 아빠에겐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듯 하다. 아마 하루라도 빨리 도움을 주고 싶었을테다. 그리고 더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해 하셨을테다. 그래서 더욱 입을 떼기가 힘드셨을지도. 많이 고마웠다. 아빠의 그런 사려깊음을 보면서 자랄 수 있다는게 감사했다. 



"무릎에 뼈밖에 없는거 좀 봐. 볼 때마다 속상해..."


 아빠는 다른 동년배의 중년 남성들보다 감정표현에 익숙하다. 아빠가 원래 그런 사람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정말 무뚝뚝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기분을 잘 알기에 우리에게 더 많은 표현을 하려고 노력하신거라고 한다. 50대의 중년 남성이 20대 중반의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는 것이 과연 쉽겠는가. 


 몇년 전, 나의 삶이 밑바닥까지 내려가며 마음이 많이 아팠을 때, 아빠가 언젠가 이런 얘기를 한적이 있다.


"그냥 건강하게 자라주어서 그게 고마워."


 이 화려하지 않고 덤덤한 말 한마디가 나에겐 가슴 벅찬 위로가 되었다. 


 나는 아빠를 아주 많이 닮았다. 외모는 물론이거니와 성격마저 판박이처럼 닮았다. 그래서 아빠는 날 더욱 애틋하게 생각하는 듯 하다. 마른 체격탓에 무릎은 항상 뼈만 남아있는것 처럼 보여 아빠는 내 무릎을 볼 때 마다 속상하다며 살 좀 찌우라는 투정어린 잔소리를 하신다. 속상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말이 얼마나 애틋한 말인지 많이 느낀다. 


아빠의 그런 감정표현들이 나는 정말 고맙다. 무뚝뚝한 중년 남성이 될 수 있었지만 친구같은 아빠가 되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하셨다. 아무리 자식이지만 사랑한다는 말이 입밖으로 나온다는건 어려운 일이니까. 





 내가 아빠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걸 아빠는 알까. 이십 몇년을 살아오면서 아빠같은 사람은 더 만나본 일이 없다는걸 아빠는 알까. 아빠는 자기처럼 살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아빠만큼만 살고 싶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자랐을 때, 그 아이도 다시 아빠처럼 살고싶다는 생각을 하게되지 않을까. 


  요즘 들어 아빠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을거란 생각도 많이 든다. 지금까지 쌓아온 아빠의 노력들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질 수는 없으니까. 


 

 오늘은 월급이 들어왔으니 아빠가 좋아하는 치킨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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