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집으로 와 01화

스웨터

by 준혜이

아는 언니가 따뜻한 도시로 이사갔다. 내가 이 곳에서 떠나지 않고 사는 날이 늘어날수록 나를 떠나가는 사람이 늘어간다. 남겨진 사람이 되는 건 싫은데 나는 해마다 이렇게 같은 곳에 남겨져 작별 인사를 한다. 안녕, 나중에 놀러와. 네, 나중에 꼭 놀러갈게요.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이 기대되지만 기다리는 마음에 내가 벌써 지치고 피곤해지려 한다. 나에게 외면하고 살아야 할 빈자리가 또 하나 늘었다. 보고 싶은 사람 생각에 곁에 있는 사람에게 냉정해지는 이 계절이 또다시 찾아왔다.

나보다 키가 작고 마른 언니가 어느 겨울날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내가 옷 좀 줄까. 그 때부터 나는 언니의 옷을 하나, 둘 받아입기 시작했다. 언니 옷을 입고 있는 나를 언니는 재미있어했고 어떤 날은 자신에게 그런 옷이 있었는 줄 몰랐다며 놀라기도 했다. 나였으면 사지 않았을, 언니가 준 옷을 입은 날에는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옷은 뭐야. 남편이 묻는다. 나는 대답 대신 웃긴 표정을 짓는다.

스웨터가 잔뜩 든 쇼핑백을 언니가 나에게 안겨줬다. 나는 스웨터를 안고 언니에게 다 마음에 든다고 얘기했다. 새 옷을 선물 받는 것보다 더 좋은 이 마음을 제대로 전하고 싶었는데 무슨 말을 해도 부족할 것 같아 나는 그냥 고맙다고만 했다. 여러 날에 걸쳐 이사를 마치고 언니는 비가 내리는 날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그 곳에 도착하면 언니가 볼 수 있게 나는 메세지를 보냈다. 여기도 겁나 추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 곳에 언니가 잘 알고 있는 겨울이 언니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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