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친구 B가 한밤 중에 전화해서 들뜬 목소리로 청혼을 받았다고 했을 때 여자는 축하한다는 말도 못한 채 우리가 벌써 그런 나이가 된 것을 믿을 수 없다고 청혼받은 친구보다 더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했다.
여자가 B의 임신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게 진짜냐고 몇 번이나 되물었는지 모른다. 우리가 아기를 가질 수도 있구나, 잠깐 혼잣말을 했지만 이번에는 잊지 않고 B에게 축하한다고 얘기해주었다.
"임신 초기에 병원에서 애기를 확인시켜주는 방법이 애기 심장소리를 들려주는 거야. 애기 심장소리가 막 두근두근 들리는데 기분이 이상하더라. 남편이랑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애기 심장소리만 듣고 있었어."
여자는 B와 전화를 끊고 우리의 맨 처음은 병원진찰실을 울리는 심장소리였구나, 생각하면서 평소보다 빠르게 두근거리는 것 같은 자신의 왼쪽 가슴에 가만히 오른손을 올려본다.
'드르륵'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여행을 가야겠다며 어느 날 훌쩍 떠나버린 대학 후배놈이 이제 돌아왔다고 보낸 문자다. 여자와 남자는 알고 지낸 지 오래된 사이지만 단 한 번을 만나지 않고 한 해를 보내는 때도 있고 몇 달씩 내내 붙어다니는 때도 있어 주변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사이이기도 하다. 여자는 남자를 내일 만나기로 하고 다시 왼쪽 가슴에 오른손을 얹어본다. 심장이 드르륵 거린다.
"왜 다들 내가 모르는 데로 가는 거냐고. B는 이제 엄마가 되고, 너는 뭐 어디를 여행하고 왔다고? 나는 그런 나라가 있는 줄도 몰랐어. 에이 몰라 다 가버려. 나는 유희열이 더 늙기 전에 만나러 갈테니까. 혼자 갈꺼야 혼자!"
남자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마신 술로 여자는 취했다. 남자가 여행지에서 찍어온 사진을 보면서
자신은 회사를 때려치우고서라도 따라갈 수 있었는데 왜 혼자 좋은 데 갔다와서 가짜만 보여주고 있는거냐고 신경질을 부리다가 남자의 비싼 카메라를 떨어뜨릴 뻔도 했다.
지하철 승강장 의자에 앉아서 여자는 숨을 고른다.
남자는 선 채로 술 취한 여자를 돌봐주고 있다. 여자가 남자의 오른손을 덥썩 잡아 자신의 심장쪽으로 가져간다.
이것은 본능적 애정표현, 우리의 맨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