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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Nov 03. 2022

일상 루틴에서 작은 기적 발견하기

엄마 에세이

나의 일상은 단조롭다. 일을 하지 않고 집에 있는 나는 집에서 작은 기적을 맛보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혼자서는 잘 안되던 쓰는 삶이 함께 하면 또 그 작은 기적이 이루어져 더 많은 글이 쓰고 싶어 진다. 약간 마약 같다고 해야 할까?


살림을 하는 주부라서 집에서 이루어낸 성취감을 찾아내는 그 일은 아무래도 집안일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매일 약을 잊어버리지 않고 먹어야 하기에 한 달 치 약을 약통에 요일별로 구분하고 정리하는 일이 한 달에 한번 한다.


오늘이 그날이다. 약을 정리할 시간이 다가오면 문득 달력을 본다. 그리고 이내 '벌써 한 달이 지나갔네'를 실감하게 된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빈 약통을 바라보며 몇 달 치 약이 들어있는 서랍을 조용히 연다. 한 달 정도 먹을 수 있는 약을 꺼내어 약통에 넣는데 아침 약이 다르고 저녁 약이 달라서 매번 이 작업을 하게 된다.


'약'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분명 자기 전 약을 먹었는데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약을 먹지 않고 잤다는 무의식이 발동하여 자다가 깨어나 약통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약통 앞에서 다시 생각한다.


'조금 전에 약 먹지 않았어? 아, 맞다 약 먹었네' 안심하며 다시 잠자리에 든다. 이런 일이 부지기수라서 트라우마로 자리를 잡고 말았다. 트라우마를 없애기 위해 약통에 약을 넣었는데도 트라우마는 친구처럼 내 곁에 머물고 있다. 한 번 두 번 약을 먹지 않은 것은 내가 가진 병에 큰 위협을 주지 않지만 이게 습관이 되면 병은 다시 악화된다.


그래서 주치의는 약을 빼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작년에 재발하고 난 후 트라우마 증상은 더 심각해져 자다 벌떡 일어나서 약을 또 먹으려고 했던 나를 발견하곤 한다. 어느 날은 저녁 약을 두 번 먹은 적도 있으니 아주 심각한 정신적 피로를 느끼고 있는 건 분명했다.


지금은 약을 먹은 후 한번 더 약을 먹었다는 인지를 나에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다 일어나서 또 약을 먹으니 말이다. 한 달가량 먹을 수 있는 약을 약통에 넣으며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말한다. 한 달 두 달 석 달이 되면 병원 가야 할 날이 다가온다.


재발 후 선생님은 육 개월에 한 번 오는 것이 불안하면 석 달에 한 번 오라고 하셨다. 선생님 말 중 '내가 병으로 불안한가' 감정을 알아야 했다. 선생님 권유로 석 달에 한번 서울행 기차를 타고 전철을 타고 서울 잠실나루 역에 내린다. 편도만 3시간 30분이 걸리는데 왕복 7시간이 걸리는 이제는 장거리 여행이 되고 말았다.


병원에서 채혈하고 두 시간 기다림 끝에 선생님을 만나는데 진료는 5분이 걸리지 않는다. 특이한 상황이 없다면 기존에 먹던 약을 처방하고 다음 예약일을 잡고 약국에서 약을 타는 일이 전부다. 정말 본격적으로 병원 관련한 일을 보는 건 30분도 채 걸리지 않은 셈인데 먼 거리 병원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지방과 서울에 위치한 병원에서 처방하는 약은 똑같다. 다만, 제약사가 다르다는 걸 코로나가 한참 유행할 때 알게 되었다. 급격하게 유행했던 20년도 그때는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특이한 상황이 없다면 기존 먹던 약을 거주지역 대학 병원 약국으로 처방을 보내겠다고. 그리고 내가 다니던 대학 병원 근처 약국을 찾았는데 그때 약사가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여기 병원에서는 이 약을 쓰지 않아요. 그래서 처방 내린 일수보다 약이 남는데 이건 우리가 판매 못하거든요. 다 가져가셨음 합니다"라는 약사의 말이었다.


그때 서울과 지역의 차이점은 바로 약이구나라고 확실히 알게 되었다. 지역에서 치료받던 내가 천안으로 이사를 가면서 서울에 위치한 병원으로 옮겼다. 그 후로는 병증이 악화되지 않았고 적절한 시기에 대장 내시경으로 재발된 대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빠른 처지로 내가 먹을 수 있는 부작용이 적은 약을 처방하여 두어 달만에 대장은 회복했다.


만약 내가 살고 있는 대학병원에서 재발했다면 분명 입원을 권했을 것이고 학생들 학습용인 내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온갖 약을 처방해 상태를 확인하고 온갖 검사로 환자를 괴롭혔을지도 모른다. 10년 전 내가 발병한 이 병으로 대학병원에서는 나를 갖고 온갖 검사와 온갖 약을 처방했고 하지 않아도 될 뻔한 검사를 하면서 결국 그 치료를 미루게 되었다. 약으로 호전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절한 타이밍, 환자를 지켜보는 여유, 의사의 적절한 사고 판단, 의사의 경험치가 환자를 편안하게 할 수도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서울과 지방 병원의 차이점이다. 그 당시 약사 말에 앞으로 계속 써야 하는 약이라서 다 달라고 했다. 지방에서 처방하는 약은 액체였다. 그러나 서울에서 처방한 약은 고체다. 난 두 가지를 다 접했는데 액체보단 고체가 내 몸에 맞았다. 병원을 옮기고 8년째 서울에 위치한 병원을 다니고 있다. 옮길 생각은 아직 없다. 별 탈 없이 내 건강을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서울과 지방 병원은 치료방법이 확실히 달라요. 약도 다르고" 이 말은 동생이 부산에 위치한 병원으로 옮기려고 할 때 지인이 말해준 것이다. 다들 잘 안다. 서울에서 치료받는 것이 병에는 더 유리하다는 것을. 하지만 각자가 처한 상황이 있으니 동생은 서울에서 부산으로 병원을 옮기려고 했던 것인데 부산에서는 동생을 받아주지 않았다. 


같은 약일지라도 처방이 같더라도 나와 맞는 병원은 있다. 그 병원을 찾기란 쉽지 않지만 찾아야만 한다. 일상에서 찾았던 루틴에서 기적은 8년 전 알게 된 서울에 위치한 병원과 함께 하는 거. 그리고 매달 약통에 약을 정리하는 것이 상상 이상으로 뿌듯하다. 무사히 한 달을 보냈을 수 있다는 뿌듯함이 정리함으로써 찾아오는 거 같다.


집에서 약통에 약을 정리하는 일은 병원에 있었더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니깐. 평범한 일상이 나에게 주어지지만 그 속에서 나름대로 아주 작은 기적을 맛보며 살아가고 있다. 약을 정리하는 일, 아이가 어지럽힌 거실 정리하며 상쾌함을 맛보는 일, 내가 자고 일어난 이불 자리 정리하며 오늘 밤 포근하게 잠들 일을 상상하는 일, 아이가 견학 가는 날에는 아이 원하는 도시락을 완성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그 도시락을 먹는 아이 얼굴 상상하는 일, 매일 한편 글을 쓰는 일, 일상에서 내가 써야 할 글감을 찾는 일, 요가를 무사히 다녀와서 몸의 균형이 바르게 잡혀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일을 상상하는 일, 별 탈 없이 하루를 마무리 짓는 저녁 시간 등 다양한 형태로 기적을 안겨주는 삶을 찾아 오늘도 기적의 한 줄을 써본다.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상의 루틴으로 나를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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