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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Nov 20. 2022

아픈 가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연습

엄마 에세이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가을이 왔음에도 나가기가 싫었던 이유를 알기 위해 거리를 나서야 했다. 노란 단풍잎, 빨간 단풍잎이 물들인 건 자연이 주는 선물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몸이 따라 주지 않아 나가기를 미루고 미루다 나가게 되었다.


이유가 있어야 했고 일이 있어야 나가는 나라서 없는 일을 만들어 거리로 나왔다. 아이를 유치원으로 보내고 곧장 거실에 널브러지지 않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렇게 외출하기 위해 준비한 끝에 버스를 타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버스 창 밖은 한해를 갈무리하는 듯했다. 아름답게 물들어져 있는 거리, 사람은 자신의 체온에 맞게 옷을 입고 가을을 만끽하고 있었다.


누구는 패딩을

다른 사람은 긴 코트를

어떤 사람은 반팔에 패딩 조끼를 입고 다니는 모습에 환절기와 간절기에는 옷 입는 유형이 제각각이다.


나는 어떤 옷을 입고 나왔는지 버스 창문으로 비추는 나를 점검했다. 다행히 과하지 않게 입은 나를 보았다. 가을이란 색은 나에게 어떤 색으로 입혀져 있을까.


굳이 뽑자면 2020년 가을을 잊을 수 없다. 가장 아름답게 색을 입었던 가을이 그 해 가을이었다. 가장 아팠고 가장 아름다웠던 가을을 바라보다 서글펐다.


시련과 고난을 한꺼번에 찾아왔던 2020년 가을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색이 선명했고 붉었다. 노을이 붉은 것이 아닌 단풍이 짙고 붉었다.


지금 나에게 다가온 가을 색은 시련과 고난을 이겨낸 울긋불긋한 색으로 선명했고 정확했다. 그때 가을은 아파했던 나를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선물 같았다. 숨 막히다 길거리에 물들인 가을을 보며 긴 한 숨을 토해낸다. 답답함과 수치심의 긴 한 숨이었다. 나와 아이를 살려달라는 소리가 바로 긴 한 숨이었고 그 소리가 신에게 닿기를 우주가 알아듣기를 바랐다.


2020년 가을이 지나고 몇 번의 가을이 오고 지면서 몸보다 마음이 아픈 것을 알았다. 마음이 아프니 자동적으로 몸은 더 아파했다. 가만히 앉아 코베인 격이 그해 가을이었으니깐.


심리적으로 불안했던 그 해 가을

몸보다 정신이 더 힘들었던 그 해 가을은 나보다 몸이 먼저 기억했던 것이다.


'그 해 가을 고생 많았지.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그 해 가을에 일어난 일 수습하느라 수고했고 고생 많았어. 여자 몸으로 법 문제를 해결하기란 힘들었을 텐데. 꿋꿋하게 잘 견디고 이겨내줘서 정말 고마워. 더는 그 해 가을을 되새김질하며 아파하지 말아라. 그 일이 일어난 후 오히려 너에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지 않았니. 그걸로 우리 위로하자. 가을 그 자체로 아름답게 바라보며 아파하는 상처를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보자. 그래야 너도 살고 나도 살아. 이젠 모두가 너의 편이 되어가고 있어. 우주도 신도 사람도 그러니 가을이 오면 아파하지 말고 지금 이 가을을 제대로 느껴보자'


가을의 쓸쓸함보단 아픔이 더 컸던 이유를 알았다. 바로 마음이 아파하는 걸 알지 못했던 것이다. 더는 가을이 오면 시름시름 아파하지 않고 나를 진흙 속에 넣지 않기를. 충분히 잘 이겨냈음을 그 누구보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사실을 나 스스로 인정하지 않아 가을이 오면 힘들어했음을 알아차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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