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기분 좋은 일기를 쓸 수 있는 날이다.
내가 코치로서 선수들에게 바라는 점은 명확하다.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맞춰 시간을 투자하며 발전과 개선을 이어가는 것. 또한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물로 보여줘야 된다. 스마트워치나 심장 박수를 체크 해주는 기어가 없어, 매번 운동 기록(내가 시간을 투자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세세하게 남기지 못했다. 그래도 확신한다. 매 훈련을 Strava에 기록하지 않았어도, 내 꾸준한 훈련은 언젠가 결과로 증명될 것이라고.
어제는 시합 전날이라 스타트 번호를 받고 호수의 수온을 확인한 뒤 돌아왔다. 우리 클럽 중 친한 친구들이 다른 대회에서 좋은 기록이 나온걸 보고 들었다. 그 좋은 기록이 나에게는 욕심이 아니라 동기부여로 다가와야 하는데, 시합날이 가까워지자 동기부여를 넘어 무언의 압박으로 다가왔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세운 목표 안에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평소처럼 식사를 하고 준비물을 챙겨 시합장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마치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물안경을 챙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합 시작까지 45분 남짓. 서둘러 주최 측에 상황을 알렸고, 방송으로 여분의 물안경을 가진 참가자를 찾았다. 다행히 같은 철인 동호회에서 한 분이 여분을 가져왔고, 덕분에 빌릴 수 있었다. 몸풀기 수영으로 어깨를 충분히 풀어 주었다. 어깨가 준비되어 있어야 수영 속도가 붙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출발. 내 번호는 104번, 한 번에 110명 가까운 인원이 함께 호수로 뛰어들었다. 첫 철인 때는 출발부터 포기하는 마음으로 모두가 멀어질 때 천천히 들어갔지만, 이번에는 함께 나섰다. 하지만 물속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앞은 보이지 않고, 옆에서는 누군가 내 쪽으로 파고들었고, 뒤에서는 발을 차였다. 50미터쯤은 정신없이 자유형과 평영을 번갈아 하며 나아갔다. 그리고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물속에서 머리를 넣는 것이 무서워졌다. 패닉이었다. 옆에서 가던 세이프가드에게 솔직히 말했다. “나 지금 패닉이 와서 시합을 포기할 것 같아. 혹시 모르니 옆에서 지켜봐 달라.” 주위를 둘러보니, 빠른 선수들은 이미 멀리 가버렸고 내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2년을 기다려 다시 도전한 철인을 이렇게 허무하게 끝낼 수는 없었다. 기록을 줄이고 싶었지만, 지금은 패닉에 빠져 속도조차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단 천천히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평소의 페이스를 되찾자 몸이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속도도 붙었다. 예상보다 빠르게 수영을 마쳤다.
자전거 파트는 이번에 처음으로 에어로바를 사용했다. 친구가 빌려준 바를 잡고, 타이어에 바람을 가득 채운 채, 시작과 동시에 젤을 먹고 달렸다. 놀랍게도 자전거는 생각보다 수월했고, 수영에서 먼저 떠난 사람들을 하나둘 제쳤다. 20km가 남았을 때 조금씩 지쳐갔지만,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웠다. “Happy, positive, all is good. 나는 할 수 있다. 그리고 해야 한다.” 자전거 여행 때 나를 다독이던 말이었다. 덕분에 47km를 1시간 20분 안에 마칠 수 있었다.
마지막 달리기. 첫 철인에서는 가장 자신 있던 달리기조차 5km만에 포기하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자전거-달리기 전환 훈련을 한 덕분에 근육이 금방 달리기 모드로 바뀌었다. 속도는 평소 같진 않았지만, 몸이 가볍고 다리에 무거움이 없었다. 다만 두 번의 다리를 넘을 때 오르막에서 허벅지가 경직될 것 같은 느낌을 참아야 했다. 마지막 50m에서는 다리에 힘이 빠져 속도를 낼 수 없었지만, 팔을 힘껏 저으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목표는 3시간 이내 완주였는데, 결과는 첫 대회보다 30분 가까이 단축된 2시간 42분. 두 번째 철인은 그렇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