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집으로 왔는데 장 보는 게 일이었다. 수술 후 이제 막 상처가 아물기 시작한 내가 차를 몰고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친정엄마가 매번 택시를 불러 나가는 것도 번거로웠다. 그렇다고 퇴근하는 남편만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더군다나 아기용품을 사거나 산후조리를 위해 음식재료를 사야 하는데 시장에 가서 찾아봐도 도무지 어디서 파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다가다 만난 집주인에게 이런 상황을 얘기하자 집주인은 자기 친구 중에 아이도 잘 보고 믿음직한 사람이 있는데 한번 만나보라고 소개를 시켜주었다. 아이를 낳아서 길러본 적은 없지만 조카들이 많아 돌보는데 익숙해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깡마르고 머리 한 올 흐트러짐 없이 뒤로 묶은 꽁을 처음 만난 건 이른 아침이었다.
꽁은 면접시간보다 1시간이나 먼저 우리 집에 와서 부엌에서 우리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걸음걸이도 조용하고 목소리도 차분한 꽁. 너무 말라서 뭘 할 수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첫날부터 꽁은 엄마를 도와 아기 이불을 삶아 척척 빨랫줄에 널고, 장 보는 걸 도와주었다. 동남아시아이다 보니 신생아 옷이며 수건에 빈대가 생길까 걱정이었다. 그래서 돌 되기 전까지는 집 밖에다 숯을 펴서 삶기로 했는데, 아무리 시도해도 불이 붙지 않는 숯을 보며 망연자실했던 시간이 우스울 정도로 꽁은 몇 초 만에 숯불에 불을 피워냈다.
벌겋게 익어가는 숯을 보며 엄마와 나는 방방 뛰며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고도 그저 씩 웃고 다시 눈으로 뭘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하는 꽁을 보며 천사가 우리에게 왔다고 껍짜이(고마워요)했다.
꽁은 말수는 적었지만 그만큼 사려 깊었다. 음식 재료를 인터넷에서 찾아 사진을 보여주면 눈을 반짝이며 기억했다가 다음날 어디에선가 야채며, 고기를 구해다 주었다.
밤중 수유가 끝나고 아침까지 침대에서 일어날 줄 모르는 날 위해, 아기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바람샤워도 시켜주어 까르르 웃은 아이소리에 깨기도 했다.
늘 부산스러운 나와는 달리 꽁은 집안 분위기를 평화롭게 하는 신비한 능력이 있었다.
한국말도, 영어도 전혀 못하는 꽁과 대화하기 위해 라오스어를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사과를 그려놓고 한국말, 라오스말을 적어놓는 식이었다. 그리고 꽁에게도 한국말을 알려주었는데 우리의 주 대화는 음식재료였다. 지금은 다 잊었지만 나중에는 웬만한 식재료는 라오스말로 다 알게 되어서 시장에 가서도 척척 살 수 있게 되었다.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