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의 설교를 듣는 둥 마는 둥 나는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고휴대전화만 계속 만지작거렸다. 내 왼쪽에텔콤셀 대리점 점원 옷을 입은 사내가 고개를 떨구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금요일정오, 직장 업무의 리듬을 깨는 회중 예배 시간은 누군가에게 꿀 같은 낮잠 시간이기도 하다.
맨앞줄에서부터 옆 사람으로, 그리고 줄을 바꿔 뒤로 잘 전달되던 녹색 헌금함이 그 사내 앞에서 진도를 멈췄다. 헌금함에 돈을 안 넣을 작정이라면 그냥 옆 사람에게 밀어내면 그만인데 그가 계속 졸고 있으니정체(停滯)가 발생했다. 이대로 놔뒀다간 헌금함은 이맘의 설교가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주저앉을 것 같았다. 일장 연설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이어질 예배 시간에는 그 자리에 엎드려 절을 해야 하는 데 헌금함을 거기에 계속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헌금함을 들어다가 내 바로 오른편에 바띡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사내 앞에 건넸다. 바띡을 입은 사내는주머니에서 지폐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지폐가얼마짜리인지 보이지 않게 손바닥으로 가려서 구멍 안으로 쓱 밀어 넣었다. 헌금함은 이제 다시 가던 길을 바삐 갔다.
한국 시각으로 이제 오후 2시가 넘어간다. 서울보다 시곗바늘이 두 시간 늦은 서부 인도네시아 시간대(GMT +7)에 나는 살고 있다. 뭐라도 새로 업데이트된 게 없는지 같은 페이지만 계속 들락날락거리며 확인했다. 내가 기고한 글이 오늘 공공 매체에 올라갈 예정이었다. 인도네시아 수도 이전과 관련한 뉴스를 정리한 글을 며칠 전에 송부했다. 당시에는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수도를 자카르타에서 보르네오섬으로 이전하겠다는 엄청난 계획을 막 공식화한 터였다. 내 이름 석 자가 공신력 있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 발행하는 매체에 올라갈 일에 나는 들떠 있었다. 어머니께 자랑도 했었다.
매체는 신흥지역을 동남아시아, 인도-남아시아, 중동부유럽, 러시아-유라시아, 중동-아프리카, 중남미로 나눠놓고 권역별로 정치와 경제 소식을 대중에 전달한다.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달력에 빨간날을 제외하곤 매일 신흥지역의 간추린 '뉴스브리프'를 게시한다. 그리고뉴스브리프에서 다뤘던 내용 중에서 시사점이 두드러진 현안을좀 더 심층적으로 파고드는 '이슈트렌드'가 A4 용지 한 페이지 반 분량으로 매주 나간다. 나는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었기에 동남아시아 권역을 맡았다. 아세안 회원국 10개가 내 몫이었다. 우리 정부의 신남방 정책으로 신흥지역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지역이다 보니 뉴스브리프가 권역 중에서 가장 많게 하루 8개 나가야 했다.
작성 규칙은 제법 깐깐했다. 국내 언론사 보도 기사를 옮겨오는 건 반칙이다. 반드시 외신 기사를 발췌 번역해야 했다. 그리고 내 생각을 넣어서도 안 된다. 모든 문장은 외신 기사나 보고서에 기초해야 했다. 게다가 내가 글을 전개하는 방식이 업체 측에서 원하는 바와 달라서 초반에 애를 많이 먹었다. 예를 들어서 나는 자카르타가 반복적으로 홍수 피해를 보아 왔고, 해수면 상승과 지반 침하로 커다란 재난 위기에 봉착했다는 배경지식을 독자에게 전달할 목적으로 첫 문단에서 과거 재난 발생 사례들을 시계열로 정리했는데, 담당자는 "기왕에 일어난 일을 잔뜩 늘어놓고 뭘 어쩌자는 거냐?"는 피드백을 달아서 보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수도 이전 계획을 발표했다는 핵심을 먼저 띄우고 두괄식으로 쓰라는 소리였다.
고료는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초창기에 뉴스브리프 분량은 편당 300자 내외였는데, 달랑 2000원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슈트렌드 고료는 편당 5만 원을 받았다. 고치고 또 고치고 정말 정성 들여 썼다. 다섯 시간이 넘어갔던 것 같다. 푼돈이었지만 내가 쓴 글이 여러 사람이 보는 공공 매체에 실리고, 덤으로 돈까지 받는다니 뿌듯하기만 했다. 글이 누리집에 올라가면 어머니께 카톡으로 링크를 보내려고 이맘의 설교 시간 내내 계속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던 것이다.
예배가 끝나고 점심을 먹고 나서야 글이 누리집에 올라갔다. 그런데 웬걸? 검수자 이름 옆에 자랑스럽게 박힐 줄 알았던 내 이름 석 자가 빠졌다. 뭔가 착오가 있었겠지? 나는 이 일을 알선해 준 지인에게 카톡 메시지를 넣어 물어봤다.
형님 죄송하지만, 그게 맞습니다
그는 착오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원고의 작성자라는 사실을 외부에 발설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한술 더 떠 업체 측이 나더러 비밀 엄수 서약서를 한 통 써달라고 했다고 했다. 그쪽에서 켕기는 게 많은가보다. 업체가 입찰을 넣을 때 모든 콘텐츠를 박사급 연구원이 작성하는 걸로 했던 모양이다. 생산 비용을 절감하려고 대학원생에게 외주를 줬던 것이다. 그는 내게 다시 한번 더 죄송하지만, 이 일을 경력으로 쓰지 못할 거라고 덧붙였다. 그도 사회과학 분야 석사 학위를 받기 위해 막 대학원에 등록한 상태였다. 나는 인문학 과정이긴 했지만, 인도네시아 현지 이슬람대학교에 석사 과정생으로 등록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