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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라는 믿음

by justit May 08. 2024


누군가 내 뒤에 있을 것만 같다 뒤돌아 보면 있다

어안이 아니더라도 주변의 느낌이 그러한 것이다.

어떤 노래를 맘속으로 응얼거리면 지나는 낯선 사람이 그 노래를 읊조리거나 매체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 우연한 일치를 설명할 길이 없다. 주위에 누가 있음을 감지하는 것은 유전적 방어 본능으로 각인된 것이라 하더라도, 마음속 감정은 속을 보이지 않더라도 어떻게 일치하는 것일까?

또 길을 가다가 서로 비켜갈 일이 있으면 어김없이 부딪힌다. 왼쪽으로 비켜서면 마주 보는 사람은 오른쪽을 택하고, 그것은 동일한 일을 두세 번 반복하고 나서야 서로 엇갈린다. 그럴 땐 어느 한쪽이 차라리

가만히 서있는 것이 낫다. 이것이 공감 능력이라면 설명이 될까?

서로 양보한다는 것이 계속 방해를 하는 일이라니?

하지만 상호 불쾌한 일은 아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우연한 일치를 겪으면서도, 현실 생활에서는 숱한 충돌이 일어날까?

자기중심의 이익을 챙기는 방향으로는 동일하니 비켜서지 못하고 부딪히는 것일까?

브런치 글 이미지 1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모두가 갖고 있다. 그런데 그러기로 작정한 사람에게는 이런 유쾌한 부딪힘이 일어나지 않는다. 계산에 의해 이모저모를 미리 따져본 결실을(?) 가져가듯, 남의 약점을 잘 이용하는 것이다. 혹 충돌할지 모르니 어느 쪽을 택하라는 예고도 없다. 순박한 사람만이 그 함정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이렇게 하면 그도 그럴 것이라는 순진한, 아니 본능적인 행동을 어긋나게 하는 것이다. 문화라는 게 이런 우연성이나 자연상태를 과학적으로 줄여 확실성을 높이는 것이라면, 그것은 차라리 끔찍한 일이다. 서로 옆구리를 부딪히며 지나가는 일이야 상호 미안하다고 하고 지나면 그만인 것을, 그 내어주는 공간을 활용해 가해 목적을 달성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문명화되어 도리를 지키기보다는, 오히려 그럼으로써 멸시하는 자연상태보다 더 나쁜 태도를 보인다.

장면은 기껏 자연적 본능을 , 양식이라는 교양으로 짓밟는 꼴이다. 먹이를 향해 돌진하는 야수성을 견주어, 짐승보다 못한 x이라는 비난이 따르지만, 이렇게 따지고 보면 맹수를 비난할 일이 되지는 못한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그런 흉포해 보이는 짐승에게는 오히려, '사람보다 못한 야수!'라는 게 어울린다. 더욱이 포식자에게는 순전히 본능에 의한 것을 무어라 비난하겠느냐는 대의명분이라도 있지만, 사람은 교육과 학습에 의해서도 그러하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오로지 본능적 행동에만 의하고 문화를 이루지 못하는 동물에게서 교훈을 얻어야 할 판이니..

그러나 사람은 길을 서로 양보하다간 부딪히며, 같은 곡조를 우연히 떠올리듯이, 공감하는 본능이 더 강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서로 사랑한다든지, 사회를 이루고 사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사람은 사람다운 지점이 훨씬 많음을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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