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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나비 기어다니다

by justit

"야, 잠깐만!"
나비 한 마리가 나풀거리며 꽃잎 끝에 내려앉았다.
얼른 모바일을 꺼내 사진을 찍으려고 다가갔다.
그런 낌새를 감지한 것처럼, 나비는 얼른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린다. 사람 소리를 알아들을 리 없지만 야속하게도 나비는 모델이 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은 나비를 볼 기회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물론 이미 작성된 이미지는 인터넷에 널려 있지만, 그래도 내 손으로 직접 화면에 담고 싶었는데....
나비는 알에서 시작해 애벌레, 번데기를 거쳐 성체가 되는 완전 변태라고 한다. 그런 성장 과정과 성체가 된 후 날개 색을 통해 변화, 자유, 영혼, 순수함, 행운 등 다양한 상징어가 붙는다. [아카 라이브]
나비는 곁에서 지켜보면 대단히 연약해 보인다. 오죽하면 그 날갯짓을 '하늘거린다' 라고 할까?
그런데 이런 다양한 상징을 탑재한 나비가 과연 왜소한 존재이기만 할까?
"하늘"은 "한+얼"로 분석되며, "한"은 우주, 무한, 영원함을, "얼"은 자연과 지혜를 의미한다. 우주의 원리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신성한 존재(예: 하느님)와 연결되기도 한다. [네이버 AI 브리핑]
"허공 : flaquear (스) - 하늘대다, 하늘거리다 (虚空 xūkōng)
[유용한 정보 블로그]
그러고 보면 나비는 대기의 상승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날갯짓을 한다. 일순간 온 우주가 그를 날아오르게 떠받치는 것이다.
"새는 날개의 어원이다.(아래아 모음)[ㅂ·ㄹ羽]+[ㄷ·ㄹ羽]+[ㄱ·ㄹ羽]->;.... [ㄷ·ㄹ羽]+[ㄱ·ㄹ羽]->;[달게->;달개;翼]->;[날개;翼]...." [네이버 어학사전]
그런데 '날다', 날개가 있음은 새, 하룻살이, 나비에게도 모두 부여된 속성이다. 그렇지만 다른 기관, 신체 형성 등에 따라 달리 불린다. 거기에다가 하룻살이보다는 나비, 그보다는 새가 더 고등 동물로 분류된다. 생물학적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진리일 것이다. 하지만 형이상학적으로 쳐다보면 결코 만만찮다.
새는 처음부터 날개를 달고 나온다. 하늘을 날 것이 미리 정해져 있다. 그렇지만 나비도 애초부터 그러했을까? [완전 성체가 되기도 전 번데기로 생을 마감하는 걸 제외하면 말이다]
알에서 깨어나 애벌레로 나뭇잎 위를 기어 다닐 때만 해도 겨드랑이가 간지럽다는 걸 미처 모른다. 그러다가 번데기로 웅크리고 있는 동안에 비로소 날개도 형성될 것이다. 이런 변모를 통해 기어 다니던 것이 하늘을 날아오른다는 건 차원이 바뀌는 비약 아닌가?
거기에다가 또 다른 상징을 붙여 조그만 날갯짓 하나로 엄청난 변화를 초래하는 '나비효과'의 주연 아니던가!
나비를 통해 자연의 조화를 읽은 루소, 자기 극복을 사유한 니체, 생명 변화를 연결한 하이데거, 꿈에 나비가 된 장자 등 그것에 관련된 생각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물론 그것은 나비만의 특권은 아니다. 새의 비상과 자유, 코스모스의 질서와 조화 등 갖가지 사물은 사유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굳이 나비를 다루었던 것은, 기어 다니는 것에서 나는 것으로, 한계에서 무한으로의 변신을 꿈꾸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존재를 내 카메라 프레임 안으로 가두려 했으니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던가!
미처 영상으로 포착하지 못한 게 당연한 일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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