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er 1.살해 협박을받았습니다
정신을 차린 후에는 내가 얼마나 힘든지를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직관적으로 느꼈다. 그때가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 지금까지 내 주치의이신 J선생님을 처음 만난 때였다.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주치의 J 선생님은 자책하기 일쑤인 내 초자아 대신, 정신적 방어막이 되어 차분히 조언해주셨다. 주치의 선생님은 내가 받은 메일과 내가 신고하고 싶은 이유, 법적 대응 방법을 이해하신 후, 지금 내 마음 상태에 대한 소견서 작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았다.
당장은 아니었지만 이후 정신과를 주마다 빼놓지 않고 다녀야만 했던 부서진 내 마음은 ‘상기 환자는 협박 이메일 사건으로 인해 우울, 불안, 자살사고, 불면 등의 증상이 발생하여 현재 꾸준히 투약치료중이며, 향후 증상 안정될 때까지 지속적인 치료를 요함’이라는 소견이 나오기 충분했다. 이와 함께 나온 병명은 ‘우울증, 불안장애, 적응장애’였다.
원하던 바 이기는 했지만 막상 소견서를 보니 아픈 곳을 훤히 드러내 보이는 기분이었다. 병명과 소견을 그냥 읽기만 해도 내 마음이 콕콕 찔리는 느낌.
그래도 적어도 내가 얼마나 아픈지를 증명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거대한 실드였다. 날아오는 주먹을 방어할 푹신푹신한 매트가 있다는 것. 회사에서도 외면했지만 그저 맞고 있으라고 말하지 않는 주치의 선생님이 생기니 마음 한편이 든든했다. 이 한가닥 희망을 한가득 붙잡고, 나는 사건을 경찰서에 신고하고 산업재해 신청까지 가보기로 했다.
주치의 J 선생님에게는 단정한 말투에서 주는 다정함과 강요하지 않는 겸손한 말투에서 전문성을 느꼈다. 소견서를 받고도 망설이는 내게 “하기로 하셨으면 하시면 돼요”라고 단정하듯 말하지 않고 “그럼 시작하시는 건가요?”라고 되물어 마음을 확인했다. 또 “이제 타임라인은 어떻게 되나요?”라고 물어 계획을 간접적으로 물었다.
J 선생님은 내 사건을 증명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나에게 있어서는 갑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마치 을처럼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환자가 많아 뛰어서 화장실에 다녀올 정도로 쉴 틈 없이 면담을 이어가면서도, 꼭 다음 면담 차례인 사람을 테크니션이 아닌 자신이 직접 방문을 열어 초대했다.
또 나가는 길에는 눈을 맞추고 꼭 인사해주어 다음 주에도 조곤조곤 속삭이듯 위로해주는 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안정감을 주었다. 더불어 적어도 모든 과정에서 의논할 상대가 있다는 것이 든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