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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om P Jun 10. 2024

떠나지 못한 영혼

떠나보내려 했지만 여전히 이 자리에 머무르고 있다.

 천국과 지옥 사이에 끼어있는 이곳을 세상이라 부르건 우주라 부르건, 나는 그것에 정나미가 뚝 떨어진 지 오래입니다. 왜 나는 살아가는 걸까요.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들, 내가 걸어온 모든 걸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습니다. 결국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몸뚱이는 남더라도 영혼이라도 떠나보내고 싶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영혼은 여전히 이 자리에 남아 저에게 속사귑니다. "나의 이유를 찾아줘."


나는 해질 대로 해졌습니다.


 살아감에 있어서 이유가 필요할까요. 그저 살아지는 것 아닐지요. 그런 말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삶 자체가 목적이라는 그런 말들이요.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목표가 필요합니다. 목표라 생각되던 모든 것들을 위해 온몸을 내던지며 살았습니다. 돌아온 것은 병뿐이지만요.


 이런 말도 떠오릅니다. 우리는 파도치는 바다의 물방울과 같다더군요. 그래서, 우리는 튀어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지만 크게 보면 그것은 그저 일렁이는 파도일 뿐이고, 더 크게 보면 그것은 깊은 바다의 일부일 뿐이라는 거지요. 하지만 저는 차라리 파도에 맞서기를 택했었습니다. 부르짖었습니다. "내가 있다. 내가 여기 있다!"


내가 있다. 내가 여기 있다!


 하지만 내가 여기 있건 없건, 그것이 나이건 아니건, 세상은 그저 흘러갔습니다. 나는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나는 중요한 무언가가 아니라는 사실을요. 나는 그저 세상의 물방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요. 세상은 일렁이는 파도와 그것을 일으키는 깊은 바다라는 사실을요.


세상은 파도를 일렁이는 바다입니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 물방울입니다.


 '아무렴 어때'라는 말이 아직 어색합니다. 하지만 그 말은 진리를 관통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상은 바다입니다. 세상은 파도입니다. 나는 물방울입니다. 아무렴 어떨까요. 파도가 치건 치지 않건 바다는 바다입니다. 제가 솟아오르건 내리 꽂히건 파도는 파도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한없이 조그만 하나의 점에 불과합니다. 세상은 파도를 일렁이는 바다입니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 물방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의식합니다. 나를 인정합니다. 나를 받아들입니다. 나로서 존재하기를 거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괴롭습니다. 세상과 사사건건 부딪히고, 모든 전투에서 저는 패배합니다. 패배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분심이 쌓입니다. 분심이 쌓이다 보니 복수심이 쌓입니다. 하지만 물방울이 어찌 바다에 복수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마음속으로 끌탕을 할 뿐입니다. 그저 속이 곪아갈 뿐입니다.


제가 거지 꼴이면 거지이고, 부자 꼴이면 부자입니다. 그렇게 세상은 저를 바라봅니다.


 오늘의 저는 매우 비관적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현실적입니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처럼 입으라는 말을 들어보았습니다. 그 말은 매우 현실적인 조언입니다. 제가 거지 꼴이면 거지이고, 부자 꼴이면 부자입니다. 그렇게 세상은 저를 바라봅니다. 그렇게 세상은 저를 대우합니다. 부자처럼 입으려면 부자의 돈이 필요합니다. 거지처럼 입으려면 거지의 삶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은 주어지는 것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 안에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파도를 구성하는 수많은 물방울 중 하나입니다. 제가 어디로 튈지는 저도 모릅니다. 저의 의지와 무관하게 저는 거지 꼴이거나 부자 꼴이겠지요.


 말괄량이처럼 제 마음은 어디로 튈지 몰라 늘 붙잡아두어야 합니다.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아 온 마음에 상처 투성이입니다. 제 마음에 떠오르는 수많은 감정들을 모두 붙잡아 수면 아래로 끌어내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 중에서 저에게 좋은 것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우울증이라고 합니다. 과거에 집착하면 강박증이라고 합니다. 미래에 집착하면 불안증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그 모든 것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저는 우울증이고 강박증이고 불안증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이란 녀석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정말로, 제 마음은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가끔은 신이 났다가 가끔은 한없이 우울해집니다. 누구나 그렇겠지요. 누구나 물방울이니까요. 물방울이 너무 많아 파도가 되었습니다. 파도가 되자 물방울들은 힘을 잃고 이리저리 튕겨납니다. 그 혼란 속에서 저를 다잡으려니, 제 마음은 '톰과 제리'의 제리 같군요. 이 마음이란 녀석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저는 식사를 하고 운동을 하고 글을 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을 들이쉬고 내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장은 뛰고 있습니다. 이에 감사하려고 하니, 마음은 또다시 비관적인 방향으로 일렁입니다. 이렇게 영혼이란 놈은 보내려 애써도 보내지지 않고 잡아두려 애써도 잡혀있지를 않습니다. 마음 위에서 제멋대로 춤추고 저는 일렁이는 마음을 다뤄보려 분투합니다.


 영혼과 마음은 하나입니다. 마치 뇌와 심장이 하나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둘 중 하나라도 죽으면 둘 다 죽습니다. 둘 중 하나라도 진정되면 나머지 하나도 진정됩니다. 하지만 이 영혼이라는 놈은 너무도 천방지축이고 마음이란 놈은 너무도 물렁해 쉽게 일렁입니다.


 오늘도 커피를 한 잔 했습니다. 카모마일 차도 한 잔 했습니다. 이렇게 풍요로운 삶 속에 우울할 것이 어디 있는지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영혼은 오늘 한 끼도 먹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공복감에 일렁입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제 영혼은 저와 분리되어 수많은 고통들을 토해냅니다. 마음은 그것들을 고스란히 담아두었다가 저에게 뿌려댑니다.


 받아들이세요.


 한 문장이 떠오릅니다. 받아들이세요. 수많은 자료들을 통해 배운 인지행동치료나 마음 챙김 기법보다 더 마법 같은 문장입니다.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으면 마음이 뿌려대는 고통들을 온몸으로 받아낼 수 있습니다. 세상이 저에게 던져댈 돌덩이들도 온몸으로 받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 용기가 납니다. 그런 용기에 영혼은 혀를 차지만, 그것마저 받아들입니다.


수많은 마음의 일렁임과 영혼의 구토를 받아들입니다.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마음은 내내 일렁이고 영혼은 내내 고통을 토해냅니다. 하지만 그 수많은 마음의 일렁임과 영혼의 구토를 받아들입니다. 받아들임으로써 대응합니다. 대응하지 않음으로써 응전합니다. 응전하지 않음으로써 승리합니다. 승리하지 않음으로써...


 그렇게 받아들임은 모호한 개념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개념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작용하는 방식은 모호하지만 효과는 분명합니다. 바로 나 자신과 다투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다도 파도도 모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채비를 합니다. 미래에는 더 많은 어려움들이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때마다 영혼은 고통을 토해내리라는 것도 분명합니다. 마음이 크게 일렁일 것입니다. 분명합니다.


 그것들을 모두 받아들일 준비를 합니다. 행운이 오면 고소공포증에 시달릴 것이고 불운이 오면 오물을 뒤집어쓴 채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들을 모두 받아들일 준비를 합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냅니다. 그렇게 커피와 카모마일 티를 홀짝이며, 우아하게, 꼴같잖게 하루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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