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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서른 여덟

"걷는 걸 제일 못하네"

by 주원

연휴를 앞둔 영향인지 수영강습반 등록생 15명 중에 5명만 출석했는데 우등생들이 모두 결석하는 바람에 제가 얼떨결에 가장 앞서 출발하는 1번이 됐습니다. 자유형, 배영은 뒷사람과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할 만큼 속도를 낼 수 있어 무리가 없었습니다. 앞사람 정체 없이 제 속도대로 쭉쭉 나갈 수 있어 처음엔 재밌고 신났습니다.


문제는 숨 고르기로 레인 한 바퀴 걷기를 할 때 생겼습니다. 본래도 물속 걷기가 잘 안 돼서 붕붕 점프하며 앞사람을 간신히 따라가곤 했는데 맨 앞에서 저항을 곧바로 맞으며 가려니 속도가 더뎠습니다. 되돌아올 때는 물길을 역행해야 해서 도는 커녕 거의 제자리걸음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저 때문에 정체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져 팔다리를 버둥대다 바짝 따라붙은 뒷사람 다리를 몇 번이나 치기도 했습니다. 한 바퀴를 다 걷고 돌아왔을 때 제 바로 뒤에서 걸으신 분이 저에게 한마디 하셨습니다.


"걷는 걸 제일 못하네"


한번 긴장하니 뒤에 이어진 평영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동작은 흩트러지고 속도는 더 느려지고, 뒷사람은 쫓아오고, 수업이 끝날 때까지 허둥지둥했습니다. 앞서가는 자, 1번은 어려운 자리였습니다.




걷기를 못하지만 물속 걷기를 연습하는 대신 다른 영법을 부지런히 수련해서 오늘 들은 말을 참말로 만들어야겠습니다. 못하는 것 중에 으뜸이 아니라, 다 잘해서 걔 중에 맨 끝에 걷기가 있는 걸로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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