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이 되는 영화
도시의 빽빽한 건물들이 답답합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소음이 되기도 하고요. 정리 안 된 집안은 제 속을 더 복잡하게 만들죠. 가만히 있어도 해야 할 일들이 저를 향해 달려듭니다. 진짜 조용한 곳에서 누가 차려주는 맛있는 밥 한 끼 먹으면 마음이 풀릴 것 같은데 말이죠. 이런 날, 도심에서 벗어나 시골살이를 하는 아날로그식 영화가 힐링이 됩니다. 식구들 없는 시간에 가장 편한 자세로 영화 감상을 해 보세요. 영화가 끝날 때쯤엔 공기 좋은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어질 수도 있습니다. 파도치던 마음이 잔잔해지고 가족을 위해 정성껏 밥을 차리고 싶을 수도 있어요. 저는 이런 영화를 보면 마음이 착해집니다. 여유가 생겨요. 그리고 이런 삶을 꿈꾸게 됩니다.
- 꾸준함의 성공, 성실함의 승리! 영화 <카모메 식당>
2, 30대에는 강도가 센 운동을 좋아했는데 40대 이후부터는 주로 요가와 산책을 즐깁니다. 한창 일할 때는 성공과 관련된 자기계발서를 주로 읽었는데 일을 쉬고 난 이후부터는 인문 특히 문학에 끌려요. 전에는 최근에 개봉하는 영화, 관객이 많이 찾는 영화를 그때그때 발 빠르게 찾아가 봤는데 지금은 오래된 영화, 그날의 제 기분에 맞는 영화를 찾아봅니다.
무더웠던 여름날, 가족들 생각하며 농산물 시장에서 장을 봤어요. 땀에 흠뻑 젖어 장 본 것을 낑낑대며 주방으로 옮기고 정리까지 마치고 나니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지 않더라고요. 누가 나를 위해 밥 좀 해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힐링이 필요했어요. 긴장하지 않고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 <카모메 식당>(2007)을 찾아봤습니다. 살찐 동물을 좋아하는 사치에가 핀란드에서 조그만 일식 식당을 운영해요. 갈매기라는 뜻의 카모메 식당. 말라깽이 엄마를 생각하며 누군가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것이 사치에의 즐거움이었는지도 몰라요.
카모메 식당은 일본식 주먹밥을 주메뉴로 하는, 동네 식당이에요. 개업하고 한 달 넘게 손님 없는 식당에서 사치에는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합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그릇과 테이블을 매일 닦아요. 손님을 기다리고는 있지만, 그녀에게는 조바심을 찾아볼 수 없어요. 첫 손님 토니에게는 돈을 받지 않고 매일 커피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사치에는 가끔 수영을 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항상 합기도의 기본자세, 무릎걸음을 해요. 무술을 했다는 아버지에게 사람들 앞에서 울지 않는 법을 배웠다는 그녀. 매일 이 운동을 하며 아버지를 생각하고, 혼자 타국에서도 의연하게 살아가는 힘을 키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을 뿐'이라는 그녀의 소박한 삶의 철학이 좋았습니다. 그녀는 손님이 없는 가게에서도 항상 똑같은 모습으로 손님을 기다리며 여유롭고도 평화로운 표정을 짓고 있어요. 삶의 철학이 있는 사람은 어디서든 어떤 모습으로든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토니가 궁금해했던 만화 갓챠맨(우리가 알고 있는 '독수리 오형제'인 것 같아요.)의 주제곡을 전부 알고 있는 미도리에게 말을 걸어요. 선뜻 자신의 집에서 함께 있자고 제안합니다. 갓챠맨 노래를 아는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일 거라는, 순수한 믿음이 그녀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에요. 누구에게도 거부감을 갖지 않는 사치에의 담담한 눈빛과 미소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카모메 식당 안으로 이끕니다.
밥을 해주는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착해요.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먹는 사람도 더불어 착해집니다. 남편과 싸우고 화해할 때, 두 아들의 기분이 안 좋을 때도 제가 차려준 밥상이 열일을 합니다. 사람은 역시 밥심입니다. 진심은 통하는 법. 착한 여자, 사치에의 식당이 사람으로 꽉 찹니다. 사치에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져요. 사람의 마음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것이 글과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글을 쓰고 싶은 이유와 사치에가 음식을 만드는 이유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제 진심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함께 행복해지는 꿈.
<카모메 식당>의 사치에는 꾸준함의 성공, 성실함의 승리를 보여줍니다. 제 일인 듯 박수 치며 기뻐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바빴던 날엔 느낌 좋은 사치에, 터프한 미도리, 정중한 마사코가 '어서 오세요'라고 반기는 카모메 식당에 가보고 싶습니다. 그녀들과 마주 앉아 향 좋은 커피를 마시고 주먹밥을 먹으며 이야기 나누다 보면 일상의 시간이 좀 천천히 흐르고 마음에 푸근한 여유가 깃들 것만 같아요. <카모메 식당>은 제게 최고의 힐링 영화입니다.
- 맛있고 따뜻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 추천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에는 보는 내내 군침 돌게 하는, 맛있는 음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쉽게 사 먹을 수 없는,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음식들이에요. 그리고 그 모든 재료는 자연에서 얻을 수 있답니다. 봄이어야만, 여름이니까, 가을이라서, 겨울까지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소중한 음식들입니다. 스크린에는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사계절 자연이 담겨 있습니다. 봄에는 꽃향기를 맡고, 여름에는 땀 흘리다 시원한 콩국수를 말아 먹고, 가을에는 노랗게 물든 들판을 달리고, 겨울에는 눈 속에 갇혀 온돌방에서 외로움과 함께합니다.
2, 30대에는 불편해 보이기만 했던 시골집이 40대를 넘긴 우리 부부에게는 너무 예쁘고 평화로운 공간으로 보였습니다. 당장 가서 살고 싶을 만큼요. 도시는 풍요로운데 배가 고파요. 돈은 많은데 마음은 가난하죠. 그래서 전 우리 두 아들이 걱정돼요. 소중한 것을 찾지 못한 채 배고프고 마음 가난한 어른이 될까 봐요. 돈이 많은 엄마가 아니어서 많은 걸 다 해줄 순 없어요. 하지만 언제든지 두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사계절 자연을 닮은 엄마로 살고 싶습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이 엄마는 딸에게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작은 숲을 만들어 주고 떠납니다. 엄마의 꿈을 찾고 돌아오겠다며 말이죠. 우리 가족에게도 우리 집이 언제든 돌아와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혜원이는 고향 친구들 덕분에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만의 작은 숲을 찾게 돼요. 그리고 꿈을 찾겠다며 떠난 엄마를 이해하게 되죠. 엄마와 혜원이의 예쁜 요리를 보며 저도 그런 요리가 하고 싶어졌어요. 많이 기다려야 하는 요리. 그래서 더욱 맛있는, 그런 음식을 정성껏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힘을 쫙 빼고, 화장기도 다 지운 민낯의 영화입니다. 그래서 보는 내내 가볍고 편안해요. 힘주고 사느라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쩌면 꿈을 찾을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될지도 모르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로 따뜻해질 것 같은 희망을 품을 수도 있어요. 잠시 쉬어가도, 조금 달라도, 아직 서툴러도 괜찮아요. 각자의 리틀 포레스트를 찾을 수 있다면 다 괜찮아요.
이 영화를 보고 우리 부부는 함께 할 거리를 찾았습니다. 나이 들어가는 우리를 위해 함께 농사를 배워보기로 했어요. 그리고 집 짓는 것도 배워보자고 했습니다. 전에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일인데 이런 계획들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설렜습니다. 우리 부부는 영화 덕분에 종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함께 산책하며 많이 걸었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께 하는 소박한 시간에 감사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보는 영화는 늘 그렇답니다.
- 인생은 부지런히 일하고, 정성껏 요리하고, 맛있게 먹는 것! 영화 <리틀 포레스트:여름과 가을>
남편과 우리나라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를 보고 우리도 시골에 가서 살자고 했습니다. 그냥 해 본 말이 아니에요. 일을 그만두고 책 읽고 글 쓰며 사는 생활에 푹 빠져 지내면서 복잡한 도시, 시끄러운 사람들 틈에 사는 것이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건강이 허락되고, 소박한 노후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만 돈 벌 수 있다면 도서관이 있는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전에 우리 두 아들이 성인이 되어 독립할 수 있어야 하겠죠. 아무튼 <리틀 포레스트>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원작이 된 영화 두 편을 이어 봤습니다. 남편은 일본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혼자, 더 몰입해서 감상했어요.
<리틀 포레스트:여름과 가을>(2015)의 원작은 인기 만화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동명 만화입니다. 작가 자신이 도호쿠 지방에서 생활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네요.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꽤 인기를 끌었던 만화래요. 영화에 나오는 소박한 집이 참 좋았습니다. 영화에서처럼 산속에 덩그러니 있는 집에서 혼자 살 자신은 없지만, 도시의 높은 아파트에 갇혀 살고 싶지는 않아요. 일을 그만둔 후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내가 얼마나 반갑고 기특한지 모르겠어요. 이런 마음이라면 남들이 욕심내는 큰 집을 사기 위해 아등바등 일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인물들의 스토리와 관계에 조금 더 집중한 것 같아요. 사계절을 다 담아서 더 풍성하고 속도감이 더해진 느낌이죠. 반면 일본의 <리틀 포레스트>는 주인공이 자급자족해 먹는 '요리'에 보다 초점을 맞췄어요. 요즘은 먹을거리가 넘쳐나는데도 바쁘게 사느라 한 끼를 '때우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 같아요. 자신을 위해 제철 재료로 정성스러운 한 끼를 차려내는 이치코를 보면 당장 부엌으로 달려가 건강한 밥상을 차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말은 믿을 수 없지만 내 몸으로 해 본 것은 믿을 수 있다는 이치코의 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편리한 것은 쉽게 잊히지만 나를 힘들게 하고 불편하게 했던 것들은 오래 기억되는 법이죠. 남이 하는 말을 듣고 따라 하는 건 쉽지만 그게 내 것은 아니잖아요.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내 몸으로 배운 것들이 진짜 내 것이 되는 거죠. 어차피 죽으면 쓸 수도 없는 육신인데 살아있는 동안 쓸모 있는 몸으로 살았으면 싶습니다.
“자신이 몸으로 직접 체험해서 그 과정에서 느끼고 생각하며 배운 것, 자신이 진짜 말할 수 있는 건 그런 거잖아. 그런 걸 많이 가진 사람을 존경하고 믿어.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주제에 뭐든 아는 체하고 남이 만든 걸 옮기기만 하는 놈일수록 잘난 척해. 천박한 인간이 하는 멍청한 말 듣는 데 질렸어. (···) 남이 자길 죽이는 걸 알면서도 내버려 두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진 않아. (···) 부모님을 비롯해 코모리 사람들을 존경하게 되었어. 참말을 할 수 있는 삶을 사셨구나 하고.”
도시에서 회사를 다니다 다시 코모리로 돌아온 유우코의 대사입니다. 이치코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도시로부터 도망쳐 온 자신과 달리 유우코는 자기 인생과 마주하러 돌아왔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20대에 지금과 같은 생각을 했다면 유우코처럼 내 인생과 마주하러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제가 떠나고 싶은 이유는 자연과 가까이 있어야 제가 진정 원하는 인생을 제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서예요.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남편과 언젠가는 떠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답니다.
음식 하나를 위해 쏟는 정성이 놀랍습니다. 예전의 저였다면 한 끼 먹으려고 그 짓을 하냐며 핀잔을 주었겠지만, 지금은 그런 과정을 기꺼이 하고 싶어졌어요. 기다리면서 얻게 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거든요. 그렇게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인 음식이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을까요.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겸손해지듯 한 끼 식사 앞에서 경건해집니다. 천천히 느끼며 사는 삶을 원합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돈을 향해 달리지 않으렵니다. 사람들 틈에서 진심 없는 말로 떠들고 웃고 싶지 않아요. 자연과 가까이라면 제가 원하는 삶이 가능할 것 같아요. 부지런히 일하고, 정성껏 요리하고, 맛있게 먹는, 정직한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1년을 마무리하며 보면 좋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겨울과 봄>
<리틀 포레스트:여름과 가을>도 좋은데 <리틀 포레스트:겨울과 봄>은 더 좋아요. 화이트 크리스마스는커녕 12월에 함박눈 한번 보지 못했는데 영화에서나마 실컷 눈을 볼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눈이 오지 않는 도시는 겨울답지 않아요. 사회 시간에 분명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고 배웠는데 점점 계절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도시에서는 사계절의 맛을 온전히 느낄 수가 없잖아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아요. 연말이 되면 "벌써 1년이 갔어?" 하며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 시간이 야속했는데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 일 년 사계절을 천천히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도시에서 돈으로 키운 아이들보다 시골에서 자연이 키운 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는 것 같아요. 자연 속에서 어른이 된 남자는 낭만적이기까지 합니다. 자연의 언어를 배워서일까요. 영어, 수학보다 나무와 꽃, 곤충 이름을 더 많이 아는 아이가 좋습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은 세상살이를 가르쳐 주지 않잖아요. 남자 어른이 되어도 전등 갈 줄도 모르고 망치질도 못해요. 두 아들이 다 커버린 지금, 뒤늦게 후회합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남편이 지방 발령을 받아 시골로 갔더라면 지금 우린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상상해 봅니다. 왜 그때는 이 도시를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는지 아쉬워요. 지금 제 맘이라면 당장이라도 짐을 쌀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말이죠.
겨울과 봄에도 코모리는 여전히 분주합니다. 이 계절엔 다음 계절을 준비해요. 매일 똑같은 일상을 부지런히 삽니다. 편리함만을 좇는 요즘, 저는 그런 수고로움이 참 보기 좋더라고요. 벼는 사람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합니다. 보살피는 사람의 정성으로 성장하는 건 사람이나 농작물이나 모두 같은 것 같아요. “잘 먹겠습니다” 이치코는 완성된 요리 앞에서 항상 두 손을 모으고 감사 인사를 합니다. 정성과 기다림이 만든 한 끼의 식사가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치코는 '추위도 좋은 조미료 중의 하나'라는 가르침을 자연에서, 요리를 통해 배웁니다. 요리의 변신은 놀랍기만 합니다. 자연은 사계절 끊임없이 다양한 식재료를 무상으로 제공해요. 도시에 살면서 그런 자연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무엇보다 자연이 사람들로 인해 점점 상처받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워요.
이치코는 가을에 도착했던 엄마의 편지를 뒤늦게 읽습니다. 자기만 홀로 남겨두고 훌쩍 떠나가 버린 엄마가 원망스럽고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이 편지를 통해 이치코는 코모리를 떠나 다시 세상과 부딪쳐볼 결심을 합니다.
뭔가에 실패해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볼 때마다 난 항상 같은 걸로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같은 장소에서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돌아온 것 같아서 좌절했어. 하지만 경험을 쌓았으니 실패를 했든 성공을 했든 같은 장소를 헤맨 건 아닐 거야. '원'이 아니라 '나선'을 그렸다고 생각했어. 맞은 편에서 보면 같은 곳을 도는 듯 보였겠지만 조금씩은 올라갔거나 내려갔을 거야. 그런 거면 조금 낫겠지.
아니, 그것보다도 인간은 '나선' 그 자체인지도 몰라.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돌면서 그래도 뭔가 있을 때마다 위로도 아래로도 자랄 수 있고 옆으로도······. 내가 그리는 원도 점차 크게 부풀어 조금씩 나선은 커지게 될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힘이 나더구나.
엄마의 편지
5년 후 이치코는 다시 코모리에 있습니다. 5년 전처럼 도망쳐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기 위해 코모리로 돌아왔어요. 전과는 다르게 눈빛이 단단해졌습니다. 꼭 다문 입술에서 힘과 의지가 느껴져요. <리틀 포레스트:여름과 가을>과 <리틀 포레스트:겨울과 봄>, 1년을 마무리하면서 보기에 참 좋은 영화입니다. 한 해를 시작할 때 결심했던 일들을 다 이루지 못해 아쉽고 후회도 되었지만 1년 동안 내 삶도 나선을 그리며 성장했을 거라 믿게 되었어요. 차분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저의 사계절을 추억했습니다. 조금 단단해진 마음으로 다음 1년을 계획하고 다짐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