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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Feb 15. 2024

오직 '나'만 생각하기!

박완서 읽기 15. 박완서 장편 소설 『오만과 몽상』②

피곤한 몸으로 잠을 깨웠다. 11일 간의 긴 연휴를 끝내고 오늘 출근을 해야하는데 연휴 전보다 몸은 더 무겁고 마음은 그보다 열 배쯤 더 무겁다. 어제 큰언니를 만나러 천안에 다녀와서 그런 걸까. 암이라는 못된 병을 견디느라 내 몸의 반으로 작아진 언니와 걸으며 내가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수시로 막히는 고속도로에서 왕복 5시간을 운전하며 몸을 비틀다 보니 몸 여기저기가 틀어진 것처럼 움직일 때마다 삐거덕거린다. 도로는 너무 많은 차들로 시원하게 달릴 수가 없었다. 지금 내 머릿속이 어제의 고속도로 상황 같다. 너무 많은 생각들로 꽉 들어찼는데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제처럼 5시간 쯤 지나야 생각의 끝에 도착할 수 있을까. 글로라도 막힌 시간을 좀 단축해볼까 하고 노트북을 켜고 앉았는데 오늘 브런치북 <박완서 읽기>를 연재해야 하는 날이다. 아직 다 읽지 못한 『오만과 몽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이 깊어진다. 


오빠는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고 나는 돌볼 사람이 필요해. 서로 필요해서 이러는 거야. 그렇지만 돌보고 마음으로부터 잘해줄 사람이 나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아마 오빠도 잘은 모를 거야. 아무도 모를 거야. 몰라도 좋아. 오빤 나에게 그런 사람인 걸로 충분히 감사해. 왠 줄 알아? 나에게 그런 사람이 없었다면 아마 나도 딴 애들처럼 재봉틀 기름이 돼버렸을 테니까. 그래 재봉틀 기름이 돼버린다니까. 우리들이 어떻게 하루하루 재봉틀 기름이 돼버리는지 그런 아무도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게 돼 있어. 소위 일류 미싱사가 된다는 게 뭔 줄 알아? 틀일에 이골이 난다는 건 자신을 아낌없이 녹여서 재봉틀 기름을 만드는 일이야. 재봉틀에 우리 마음이 옮아 붙은 것처럼 그게 알아서 저절로 돌아갈 때쯤 우린 다 녹아버려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돼. 아무것도. 그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야.

박완서 장편 소설 『오만과 몽상』2권 p.9


의사가 될 현을 뒷바라지 하듯 돌보는 공장 미싱사 영자의 말이다. 남녀의 사랑도 아니고 그렇다고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고맙다는 인사를 받거나 공치사를 할 수도 없는 일을 영자는 매일 자진해서 한다. 재봉틀 기름이 되어서 자신이 다 녹아버릴까봐 두려운 영자는 현을 돌보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듯하다. 아직 결말을 읽지 못했지만 영자는 현에게 버려질 것이다. 영자도 아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예상은 하면서도 더 열심히 자신을 희생해가며 뻔한 결말을 유예시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네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인생의 끝이 죽음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니 자신을 아낌없이 녹여서 재봉틀 기름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니냐 말이다. 


대한민국의 여자로 태어나 딸로 살다가 며느리가 되어 부모가 넷으로 늘어나고, 아내가 되어 남편과 세트가 되고, 자식들 뒷바라지가 당연한 엄마로 살다보면 어느새 고독하게 죽음을 생각할 나이가 된다. 너무 많은 역할을 한몸으로 다 해내다 보면 생활에 이골이 난 사람처럼 자동으로 몸이 움직이고, 과학적으로 효율성이 없다는 멀티태스킹도 가능하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도록 달리다가 몸이 천근만근인 듯 무겁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가끔 찾아온다. 오늘처럼 비까지 추적추척 내리고 아직 날이 밝지 않은 것처럼 사방이 회색빛 배경인 날에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내 몸의 무게가 더욱 더 견디기 힘들어진다. 정신은 홀로서기를 다짐하지만 몸은 자꾸만 기대고 싶은 이 기분을 어찌해야 할까. 


'나'라는 인간을 제대로 보기로 한다.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을 모두 잃었으니 자식으로서의 역할은 졸업했다. 그렇다면 한 남자의 아내로서 '나'는 어떤가. 다행히 남편과 나는 친구 같은 관계로 힘들 때는 적당히 기대어 위로받고 좋은 일은 함께 기뻐하며 축하한다. 나를 가장 편하게 해주고 외롭지 않게 해주는, 가장 소중한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큰언니를 보면서 느낀다. 죽음으로 가는 길에는 오롯이 혼자임을, 특히 몸이 겪는 고통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자식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오히려 자식이 어렸을 적에는 자식을 통해 내 존재감을 확인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넘어간 자식은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하는 여행객처럼 가끔은 낯설고 또 가끔은 불편하다. '나'를 '나'로서 살게 하는 건 그저 '나'일 뿐이다. 이제 누구를 돌보는 것에서 나의 역할이나 존재감을 찾을 것이 아니라 '나'를 돌보는 일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주변에 아픈 사람이 너무 많다. 50대가 되니 모두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듯 비상벨이 울린다. 평균 수명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조용히 떠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복은 로또 당첨 만큼이나 어려워 보인다. 더 이상 미루면 안되겠다. 양보다는 질, 절주와 소식, 그리고 기분 좋을 만큼의 적당한 운동과 질 좋은 수면이 필수다. 마음이 먼저인지, 몸이 먼저인지 따질 겨를이 없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다. 다행히 나는 읽고 쓰는 걸 좋아하니 정신 건강을 챙기는 건 몸보다는 수월할 듯하다. 피곤할 정도로 몸을 혹사하지 말고 되도록 많은 시간을 좋아하는 일에 쏟으며 살기로 마음먹는다. '나'를 잃으면 모두를 잃는 것이다. 남편도 자식도 '나'보다 우선일 순 없다. 모든 복잡한 생각들에서 오직 하나 '나'만 건져놓으니 꽉 막힌 길이 뚫린 것처럼 시원하다. 단순하고 가벼운 삶을 다짐하며 오늘의 <박완서 읽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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