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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Feb 18. 2024

"배운 대로 살지 못한다면 생긴 대로 살아야지."

김훈의 《흑산》이 생각나는 영화 <자산어보>

영화 <자산어보>(2021)를 기다렸었다. 김훈의 《흑산》을 감동적으로 읽고 오래오래 기억하는 까닭이다. 소설을 읽고 한동안 청년 창대를 마음에 품었다. 정약전과 창대의 대화를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영화 <자산어보>>의 원작이 김훈의 《흑산》이라는 말은 없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소설을 생각했다. 책을 읽으며 상상했던 장면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소설 속 대화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반갑고 좋았다. 그래도 굳이 영화와 소설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김훈의 《흑산》이 더 좋다. 영상도 좋지만 글이 더 많은 걸 품고 있다.


이준익의 흑백 영화 <동주>를 좋아한다. <사도>를 보며 이준익 감독이 사극을 참 잘 만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자산어보>는 이준익 감독이 만든 흑백 영화이며 사극이다. 적어도 실망하지는 않는다.



어느 시대든 싸움 없는 때는 없었다. 외부와의 싸움이든 자신과의 싸움이든 그 싸움에서 나를 지켜내는 일은 언제나 치열하다. 나는 지금 누구와 어떤 싸움을 하고 있는가. 나를 잃지 않고 있는가. 결국 나를 지켜낼 것인가.



출세를 위해 정약전 곁을 떠났던 창대는 다시 돌아왔다.


배운 대로 살지 못한다면 생긴 대로 살아야지.


현실에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었던 창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생긴 대로 사는 건 현실이고 배운 대로 살고 싶은 건 이상이다. 항상 이상은 멀고 현실은 가깝다. 그래서 이상은 간절하고 현실은 지겹다.



서로 다른 길을 가더라도 각자의 삶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정약전과 정약용의 우애가 애틋하다. 코로나를 핑계로 몸과 마음이 함께 멀어진 내 형제들이 생각났다.



창대의 말은 분명해서, 물을 것이 없었다. 모르는 것을 말할 때도 창대의 모름은 정확했다.
창대는 물을 수 있는 것과 물은 수 없는 것, 대답할 수 있는 것과 대답할 수 없는 것을 뒤섞지 않았다. 창대는 섬에서 태어나서, 서너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이지만 고요히 들여다보아서 사물의 속을 아는 자였다.

김훈의 《흑산》 에서


영화 <자산어보>에서 순수하고도 깊은 두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나도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어진다. 그런 벗이 곁에 있다면 사는 내내 행복할 것 같다. 순수를 잃지 않고 좀 더 깊어지기를 소망한다.



내일은 김훈의 《흑산》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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