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제가 이제 밀칠 수도 있는 나이가 됐다는 것을 깨닫고 작전변경을 합니다.
‘요것이 이제 좀 컸다고 날 밀치네? 폭언과 협박 비율을 더 높여야겠어.’
저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차라리 맞는 게 나았습니다.
체구가 작은 성인여성에게 주로 맞았고, 뼈가 부러질 정도로 때리진 않았기 때문에
몸으로 때우는 게 나았던 것 같았습니다.
그 성인여성은 적당히 제가 죽지 않을 정도의 강도와, 남들이 제가 맞고 산다는 걸 눈치채지 못할 부분만 때렸습니다.
물론 성인남성에게 맞는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 있고, 아마 이 글을 쓰지 못하고 이미… 그런 일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게 더 나을 수 도 있다는 생각을 늘 했습니다.
죽으면 편안할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굳이 맞는 것과 폭언 중 고르라면 맞는 것을 택하겠습니다.
하지만 전 작은 승리를 맛본 대신 (강아지 편), 폭언으로 인해 영원히 피할 수 없는 트라우마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엄마의 공갈협박과 폭언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너 때문에 개가 죽은 거야. 니 년 때문에!!!”
“그럴 거면 나가 살아! 나가!”
“너 엄마 혈압 터져 죽는 꼴 보고 싶어? 기어이 엄마를 죽여야 속이 편하겠지!!!”
“너 때문에 엄마가 이렇게 된 거야!!!!”
“이게 엄마를 밀쳐? 왜 아주 칼로 찔러 죽이지 그래? 여기 칼 있어 칼 쥐고 찔러! 칼 잡아 빨리!!!”
“이년이 어디라고 말대꾸를 해?”
“너 어디야? 이게 감히 늦게 와?”
“학교고 뭐고 다 때려쳐 그럼! 그리고 나가!”
“이게 돌았나 어디서 교태를 부려?”
“이 개새끼 갖다 집어던지기 전에 어서 말 안 해?”
“너 빨리 이리 안 오면 이 개 진짜 내다 버려버린다?”
“어디서 저런 게 태어나서…”
“여보 저거 저거 저 새끼 꺼 다 내다 버려.”
“이년이 미쳤나? 나가서 몸 팔고 싶냐?”
“여보 저거 성모자애원에 갖다 줘버리고 와. 빨리!!!!!”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날 죽여라 차라리 죽여! 옥상에서 뛰어내려줄까? 너도 죽고 싶어? 그럼 나가 죽어!!!”
미성년자에게 차마 못 담을 말들을 내뱉어 놓곤 정작 엄마 자신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성인이 되어 한동안 잠깐 독립해서 나가 살았을 때는, 반대가 너무 심함에도 무릅쓰고 나갔기 때문에
엄마는 저를 눈앞에 두고 휘두를 수 없으니 화가 머리꼭지까지 돈 상태였습니다.
저는 엄마 아빠 없는 저만의 공간이 생겼습니다. 숨통이 조금 트입니다.
전화가 옵니다.
엄마입니다.
안 받으면 후폭풍이 몰아칠까 봐 두려워 전화를 받습니다.
미친 듯이 욕설을 퍼부으며 무슨 소리인지도 모를 말들을 내뱉어 냅니다.
저는 전화기를 현관에 두고 방으로 들어가 쭈구리고 앉습니다.
현관문에서 노크소리가 납니다.
저는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지릅니다.
집주인아주머니가 입주기념이라며 휴지를 선물로 들고 오셨습니다.
눈이 벌게진 저를 한 번 보고, 바닥에서 소리를 내지르고 있는 휴대폰을 내려다보더니
“저게 아가씨 엄마가 아가씨한테 그러는 거라고?” 하며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보입니다.
휴지를 건네주시고 “… 그래도 새집인데 입주 축하해요.”라고 말해주고 나갑니다.
전화는 혼자 계속 멀리 욕을 퍼부어댔고
대답하지 않으면 더 큰일이 닥쳐올걸 알기에 저는 드문드문 대답하며 겨우 전화를 끊었습니다.
제 입장에서 폭언보다 폭력이 더 나았던 이유는
폭력은 엄마의 에너지를 금방 닳게 했지만 폭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몇 시간이고 지치지 않았습니다.
폭언을 하다 지치면 잠깐 쉬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벽에도 혼자 생각하다 혼자 화가 치민 엄마가 언제고 잠든 저를 때리면서 깨워 또 지옥 속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맞아서 뼈라도 부러지면 그 핑계로 엄마로부터 잠시 떨어질 수라도 있지만
폭언은 영화에서만 보던 CIA 고문과도 같았습니다.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질문들을 하고 대답을 듣길 원했습니다.
저를 재우지 않았습니다.
한 자리에 한 자세로 꼼짝 못 하게 앉혀놓고 계속 폭언을 퍼부어댔습니다.
저는 그냥 몇 대 맞고 끝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영혼 없이 대답을 합니다.
영혼 없이 대답하면 똑바로 대답하지 않는다며 엄마 손에 잡히는 물건이 제게 날아옵니다.
가끔 몇 시간이고 이어지는 폭언을 듣다 못한 아빠도 지겨워서 엄마 말을 끊어내곤 했지만
결국엔 엄마가 이겼고 아빠는 한숨 쉬며 잠들어버렸습니다.
저는 잠도 못 자고 새벽까지 시달렸다 학교에 갔습니다.
폭력은 제가 키가 엄마 아빠보다 커지고 나선 얼추 멈추었지만
폭언은 제가 성인이 되어서도, 독립해서 나가 살 때도, 어쩔 수 없이 다시 엄마 아빠와 같이 살게 되었을 때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겁니다. 제가 죽거나 엄마가 죽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