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중순 이탈리아와 로마 일주 여행이 잡혀 있었다. 그것도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그러나 요즘 세상이 어수선하여 모든 것을 취소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나에게 이탈리아와 로마 그리고 네덜란드의 미술관들을 다녀오는 것은 커다란 꿈이자 당연히 하여야 할 일들이었기에 그 서운함은 사실 표현하기 힘들다. 또한 낯선 곳에서 집을 얻고 그곳에서 생활하는 생경함이 주는 긴장감?은 잠들어 있는 내 온몸의 세포를 깨우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함께 여행을 하기로 했던 친구는 말한다. "셀린? 좁쌀 같이 많은 날들 언젠가 또 기회가 오겠지? 우리 그때는 지팡이라도 짚고 가자" 그러고는 한참을 둘이 웃었다. 몇 해 동안 여행다운 여행을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 독자들도 알다시피 다사다난한 일들이 많았었기 때문임을 잘 아실 거라 생각된다. 혼자 있는 시간들이 점점 길어질수록 요즘은 외롭다기보다는 사랑이 가끔 그립다. 아니 사람이 그립다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겠다.
<Gondolas in venice/앙리 마르탱/oil on canvas/1909>
이번 여행을 통해 친구와 수다를 떨기도 하고 의견이 맞지 않아 힘들 수 있었을 여행 속에서 나는 사람과 부딪히기를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를 20대에 만났다. 같은 직장, 같은 나이, 같은 해에 결혼을 하고, 같은 해에 똑같이 아들을 낳았다. 심지어 우린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함께 살았었다. 더 재밌는 사실은 그녀가 아빠 친구의 며느리이며 우린 이름까지 비슷하다(실명을 거론하지는 않겠다.)라는 것이다. 세상 이런 운명 같은 친구가 또 있을 수 있을까? 나는 그런 그녀를 지금도 너무 사랑한다. 아이들이 성장하여 집을 떠나고 우리는 우연인지 같은 해 같은 병을 앓고 서로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었다. 그 사이 서로가 그리워 눈물을 흘리면서도 참아야 했다. 그녀도 나만큼 아프기에 나도 그녀만큼 아팠기에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힘든 일인지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고는 말하지만 사람이 365일 늘 혼자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래서 가끔 친구와 미술관 나들이나 차를 마시기도 하며 나의 외로움을 풀어낸다. 그렇게 나라는 사람은 사람에 대한 그리고 사랑의 고픔을 채워나가고 있다.
<Lover/앙리 마르탱/oil on cavas/년대미상>
목가적 풍경 속 연인은 지금 사랑에 빠져있다. 잔잔하게 들어오는 빛과 풀을 뜯는 양들 마저 그들의 사랑에 방해가 될까 조용한 모습이다. 남자는 여자의 곁으로 다가가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 듯 보인다. 남자의 고백을 들은 여인은 쑥스러움에 자신의 속내를 쉽게 밝히지 못한 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참으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연인의 모습이다. 풀밭의 작은 들꽃들은 자신들의 질긴 생명력을 통해 그들의 피어나는 사랑이 변함없을 것을 예고하는 듯보이고, 우거진 나무조차도 화려하게 눈이 부신다. 그리고 활짝 핀 나무의 꽃은 연인의 사랑이 앞으로 더욱 더 아름답게 번성할 것을 보여주고 있다. 두 사람은 지금 얼마나 설렐까? 그 가슴 두근거림의 순간! 평생 잊지 못할 그 순간을 지금 두 사람만이 느끼고 있다. 사람이 살며 희열? 의 순간을 몇 번이나 맞이하게 될까? 그 희열의 순간을 화가는 도시의 남녀가 아닌 시골의 순수하고 청정?한 남녀를 등장시켜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사랑이 주는 희열의 순간!! 그래서 그 두근거림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도 아름다운 순간일 수밖에 없다.
<Rest-휴식/앙리 마르탱/oil on canvas/년대미상>
두 연인 아니 부부는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침부터 서둘러 일어나 농가일을 마치고 하루를 마치며 자신의 집 아래 언덕에 나란히 앉아 누구의 방해도 없이 지는 해를 등지고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눈다. "오늘은 밭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요. 내일은 우리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 "여보 오늘 아이들이 이런 행동을 했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또는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아무 말 없이 그저 자연 속에서 함께 서로를 보듬을 수도 있겠다. 둘이 함께 하는 휴식의 시간은 그들만의 세상이며, 우주이다. 함께 자연 속에서 힘든 삶을 살아가면서도 신뢰를 잃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 그래서 지금 휴식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은 더욱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태양은 언덕을 붉게 물들여 저물어 가는 하루를 쉬어가는 두 사람에게 휴식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Brides walk under the apple trees/앙리 마르탱/oil on canvas/년대미상>
사랑이란 상대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사람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이 있듯이 온화하고 긍정적인 사람과 함께 한다면 상대 또한 그 전이로 인해 온화함을 배울 것이며, 고집쟁이와 같은 상대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한다면 고집쟁이가 될 수 있다. 나의 경험으로 볼 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믿음이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다면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엔 서로를 닮아 있게 된다. 그래서 부부는 닮아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우리는 상대를 처음 만나 그 가슴 뛰고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살아가며 잊은 채 생활한다.
나는 말하고 싶다. 우리에게 있었던 그 아름다웠던 시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고. 매 순간을 늘 가슴 뛰게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그 가슴 뛰던 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가슴 뛰는 사랑을 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 사랑을 쉽게 놓지 말길 바란다. 그러한 순간은 쉽게 아무와 함께 나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랑을 놓아버린다면 어쩌면 평생 후회라는 깊은 상처를 가슴에 담고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자화상/앙리 마르탱/83.6cmx88.6cm/oil on canvas/1905>
위의 그림을 그린 화가는 프랑스 태생의 앙리 마르탱((Henri Jean Guillaum Martin)이다. 그는 아주 섬세하고 화려한 듯 그리고 목가적인 풍경을 그린 화가이다. 그의 그림 또한 사랑이 가득하다. 흐르는 물결, 돌다리, 멀리서 바라본 마을의 풍경과 숲을 걷는 남자의 뒷모습이라든지 여인의 일하는 모습, 아이들이 뛰어노는 순간 등을 통해 사람이 가져야 할 사랑을 보여 준 화가이다. 그러므로 그는 사물과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시안을 가지고 있는 화가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그는 주로 점묘법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다. 조르주 쇠라와 같이 수학과 과학적으로 계산된 점이 아닌 물감을 엷게 만들어 흘리듯 살짝 찍어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그의 아슬아슬한 점의 색채는 빛과 함께 화려하면서도 빛을 반사하는 눈부심과 밝고 아름답고 때론 고즈넉한 사색에 빠져들게 한다. 앙리 마르탱 또한 내가 좋아하는 화가 중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