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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나 Oct 31. 2020

엄마와 프랑스 영화

노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올해 일흔일곱의 엄마는

몇 년 전 현역에서 은퇴한 후

꽤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

정도가 심했던 언젠가

호흡이 곤란할 정도의 위기상황으로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을 정도다.

평생 일터가 있었고

NGO 대표 혹은 어느  정당 소속 정치인이라는 신분이

선명하게 쓰인 명함

곳곳이나 차 안에 굴러다니는 것을

발견는  것이 다반사였다.

아버지보다 더 일찍 나가 더 늦게 들어오셨고

아버지의 저녁 준비는 오롯이 내 몫이었다.

아침 일찍이나 저녁 늦게

얼굴을 볼 수 있던 엄마였다.

그런 이유로 은퇴 후

낮시간 집에 있는 엄마의 모습은

내게는 전혀 익숙지 않은 장면이기도 했다.

그런 엄마는 출근할 일이 없어진  어느 순간부터

노년의 삶을 받아들여야 하는 그 시간들과 씨름하고 계셨다.

당황스러움을 대체할 무언가를 찾 엄마의 시도는

집안 대청소,

특히 손댈 수 없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 같은

엄마의 옷장과 화장대에 있던 물건들을

버리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백만 원이 넘는다는 청소기를 사들여

마치 명품가방을 애지중지하듯 소중히 다루시면서

하루에 한 번

물걸레 청소가 되는 최신식 청소기로

마루와 방 청소에 온마음을 았다.

집안 청소뿐 아니라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여

기어이 딸의  품평 한마디를 고야 마는 끈질김으로

가사노동의 세계에서 나름의 전문성을 혀가셨다.

젊은 날

일하는 중 생긴 틈새 시간에

가까운 시장에서 문어를 사서 가방에 넣어두고는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어

일주일 넘게 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우리 엄마.

 거친 성품  그대로의 엄마가

어느 날 대변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요리 후 사방으로 널브러진 남은 재료며

분리수거는 과정은 생략하고

종량제 봉투 속으로 직행한 쓰레기들과

냉장고 손잡이 가스렌지 손잡이 등

손닿은 곳은 하나도 빠짐없이  묻은

음식물을 닦는 일은 나의 몫이기는 했

그렇게 이전과 다른 분야에서

나이듦과 화해를 시도하는

엄마의 버티고 있음이 늘 고마웠다.

아무 것도 하지 않 것이 아니라서

얼마나 감사했지.


엄마의 은퇴 후 세상은

여성 노인들이 회원 대부분인

집 근처 체육센터 확장됐다. 

주요 프로그램인 아쿠아로빅을 일주일 세 번 나가시더니

자주 회원들을 모아  친목회를 드하셨고

노래교실에 참여한 후

주변 지인들을 원근 각처에서 데려와 함께 수강하셨다.

이런 좋은 프로그램은 더 큰 규모로 진행되어야 한다며

일을 추진하시는  등

새로운 세상에서도

특유의 집중력과 규모의 확장이라는

전문성을 발휘하셨다.

노래교실 수강은 다소 후유증을 동반했는데

낮시간 내내 트로트를 BGM 삼아 깔아 놓으 덕에

 무의 중에 트로트 가사 흥얼거리다

흠칫 놀라도 했다.

물론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평생 해 온 일의 전문성을 발휘하여

여성 관련 행사의 고문으로 석하거나

후배들을 격려하고 키우는 일의 강연자로 서시기도 했다.

성공한 여성 커리어 우먼으로

주례를 부탁하는 지인들이 있기도 해

가끔 나도 엄마의 주례사 쓰는 일을 돕기도 했다.


아버지의 암투병 간에 나는

간병을  위해 친정으로 들어갔다.

5년이라는 짧지 않은 투병 생활이 이어지셨.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혼자 남엄마 계실 집이

왜 그리 크게 느껴졌던지.

평생 자식들을 잘 키우기 위해

내가 죽기를 각오하고 산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으시던

내게는 그토록 사랑하 아버지였

그 아버지의 부재라는 시간은

내게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다

.

그러나

정작 엄마에게 아버지는

평생 원망과 불평의 대었다.

딱히 애정 어린 대화 기억이라고는 

손에 꼽을 만큼 정도로

자주 다퉜던  엄마의 남편이던 우리 아버지.

하지만,

그렇게라도 긴 세월을 함께 살았던

남편이 떠난 이후

그 휑뎅그레한 공간에 남은 엄마의 고독이

왜 그리 가슴을 지 모르겠다.

세 자녀 중 엄마와의  갈등이

가장 첨예했던 딸이었던 내가

낯설기만 했던 엄마의 외로움을 본 순간

남을 엄마를 홀로 두고 사를 결심하기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미적거리 이 살기가

벌써 십여 년이다.

바로 옆에서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온 전문직 여성이

엄마의 은퇴 후를

자세히 들여다보 된 것도 그 덕분이다.

화려한 이력 뒤에 숨어 있는

그 외로움과 눈물이

왜 그렇게 선명하게 보는 건지.


그러나

여성의 나이듦 그런 쓸쓸함의 모습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이

그 어떤 나라보다 빠르게 이뤄진 오늘의 대한민국 땅의

수많은 여성 노인의 일상이

외로움과 쇠퇴의 길만으로 열있는 것은 

코 아니다.

최근  유명해진 할머니 유튜버의 활약상을 보거나

인생 이모작의 실천으로 실버 모델의 길을 가거나

가깝게는

손주들 나이의 아이들에게 구연동화를 읽어주는

봉사활동을 기쁨으로 실천하는 분도 본다.

나이듦의 과정을 통과하는 모든 여성들은

성공지향과 과시의 어떤 것들이 우위의 가치로 여겨졌던

젊은 날의 열정과 패기는 아니지만 

다른 차원의 의미 있는 시간을 맞이할 수 있다.

인생의 지혜를 담은 성장한 영혼

작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

너무 바빠 돌아보지 못한 것들에

온 마음을 쏟을 수 있는 시간 맞이 수 있는 기회다.

엄마의 변화를 가까이서 지켜본 내게는

나이듦의 이 시간이

더욱 아름답게 여겨진다.


며칠 전

엄마가 프랑스 영화를 보고 왔단다.

유명한 '남과 여'의 후속작

 '남과 여, 여전히 찬란한'이란다.

원작을 만든 감독이

나이 든 남녀 주인공과 다시 찍은 최신판이다.

감독은 원작 발표 후 20년 되던 때

또 한 번 같은 주인공들과 영화를 찍고

다시 '노년의 남과 여'를 만들었다.

주인공은 치매를 앓고 있어 대부분의 기억이 없지만

사랑했던 여인만 기억하고 있었다는 내용이라  한다.

엄마 왈,

"딱 우리에게 맞는 정서였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던데 "라신다.

더 젊었던 날들

바쁘기만 했던 엄마는

프랑스 영화를 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 시간의 연장선상인

나이 든 어느 날의 엄마에게서

프랑스 영화 감상평을 듣는다.

처음 듣는 감상평이지만

마음이 따뜻해진다.

영화의 원어 제목에 붙은 프랑스어 부제를 해석하자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이다.

제목처럼

나이듦과 화해한

엄마의 지금 이 시간이

녀의 인생  

가장 아름다운 날들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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