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M본부의 다큐멘터리 <추강, 김지섭>을 맡았다. 안동출신 독립운동가인 김지섭을 다룬 인물다큐였다. 그는 김원봉, 곽재기, 김시현 등과 조국의 독립운동에 참여한다. 독립투쟁을 목적으로 국경을 넘어 만주, 상해, 시베리아 등 각지를 돌다, 1922년 상해에서 의열단에 입단했다. 1924년 일본 도쿄에서 소위 제국회의가 열려 일본의 총리대신을 비롯해 여러 대신들과 조선총독이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도쿄로 향한다. 침략의 아성인 황성 정문에서 호위경관에 저지당하자 폭탄 한개를 던지고 재빨리 궁성쪽으로 달려가 니쥬바시(이중다리) 한복판에 나머지 폭탄을 던지고 붙잡혔다. 1925년 무기징역을 언도받고, 이치가야형무소에 수감되었지만, 결국 1928년 2월 20일 치바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취재팀은 그가 옥사한 치바형무소를 찾았다. 우린 촬영허가를 받지못해 관계자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촬영을 감행했다. 치바형무소의 간판을 걸고 네비게이터의 설명을 듣고, 도로 건너편으로 넘어가 전경을 찍고 철수했다.
2년뒤 M본부가 <독립운동에 깃든 경북인의 혼>으로 독립 운동가연구의 권위자이신 김교수님과 함께 치바형무소를 다시 찾았다. 카메라선배에게 촬영주의사항을 알려줬 지만, 그는 취재의욕이 불타 형무소관계자의 감시를 아랑곳하지 않고 촬영에 열중했다. 10분쯤 지나서야, 형무소관계자가 낌새를 채고 10여명이 우리쪽으로 달려왔다.
김코디: 선배님, 우리 걸렸어요. 빈 메모리카드있죠?
카메라: 응 있어.
김코디: 그럼 그걸로 갈아끼우시고, 촬영본은 몰래 숨기세요.
왠지 일본어로 하면, 꼬치꼬치 캐물을것 같아서 난 영어로 대응했다.
형무소관계자 : 실례합니다. 어디서 나오신거죠?
김코디: 죄송합니다만, 일본어를 모릅니다.
형무소관계자: 일본어 아는 사람 없나요?
김코디: 무슨말인지요? 일본어를 못합니다.
형무소관계자: 이 카메라는 무엇이죠? 무엇을 촬영하는거죠?
김코디: 미안합니다. 무슨말 하시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그들은 10여명이나 있었지만, 영어를 할수 있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서로 답답해했다. 난 이렇게 마무리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한 관계자가 전화를 하더니 5분뒤에 영어가능자가 출동했다. 완전 반전이였다.
형무소관계자: 실례합니다. 전 치바형무소 담당 0000입니다. 이 카메라는 무엇이고? 여러분들은 어디서 오신건가요?
김코디: 안녕하세요. 저흰 한국에 있는 모대학의 한일역사연구팀입니다. 담당교수님과 함께 현장조사를 나왔어요. 카메라는 현장조사를 기록하기 위해 가져왔구요.
형무소관계자: 그렇군요. 뭘 촬영했나요?
김코디: 아직요. 교수님과 상의 후, 촬영할 예정이였습니다.
형무소관계자: 그럼, 확인시켜주세요.
김코디: 선배님, 카메라 보여주세요.
그들은 여러명이 카메라에 붙어 확인했다. 빈 메모리카드가 들어가있으니 허탕이였다. 그들은 예상했던 영상이 없다보니, 어안이 벙벙했다.
형무소관계자: 정말 촬영하지 않은거죠?
김코디: 예,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보시다시피 아무런 영상이 없지 않습니까.
형무소관계자: 다음부터 촬영하실려면, 본부에 연락하셔서 허가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코디: 알겠습니다. 저야말로 괜한 오해를 사게해드려 미안합니다.
우린 임무완수를 하고, 무사히 치바형무소에서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