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호 | 흥미로운 역사이야기
미국 이야기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천만 명이 넘는 남자들이 군에 입대했습니다. 12,209,238명의 미군은 당시 미국 인구의 9%에 이르는 수준이었지요(1945년). 어느 나라에서나 애국심만으로 (미군의 38.8%가 자원병이었습니다) 혹은 동원령만으로 전쟁할 수는 없습니다.
무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무기는 누가 만드나요? 무기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지요. 공장이 돌아가야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군의 탁월한 경쟁력은 무기 자원이었습니다. 군수공장이 멈추지 않고 돌아갔습니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무기들은 끊임없이 전장에 공급되었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그런 무기를 만드는 데 힘을 썼을까요?
여자들이었습니다.
이런 포스터를 한 번쯤 본 적이 있지 않나요? 실존인물을 모델로 한 포스터입니다. 1943년 그래픽 아티스트인 하워드 밀러(J. Howar Miller)가 만든 포스터입니다. 가로 430mm, 세로 559mm 크기의 포스터였습니다. 여성들이여, 공장에서 일합시다! 나라를 위해 공장으로 오세요! 정도의 프로파갠더였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이 포스터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습니다. 1943년 2월에만 회사(Westinghouse Electric) 건물에 붙여졌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이 흐른 1980년대에 재조명되었습니다.
무엇으로 재조명되었느냐, 이것이 흥미로운 점이지요. 2차 세계대전은 총력전(total war)이었습니다. 적을 쳐부수기 위해서는 모든 인구가 전력을 기울여야 했지요. 남자들은 전쟁터에 갔습니다. 정부는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당시 미국문화는 여성의 사회적 활동에 대해 보수적이었습니다.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해서 나라를 돕는 대대적인 캠페인이 필요했지요. 효과가 컸습니다. 수많은 여성이 군수공장을 제2의 전쟁터로 삼아 중노동 속에서 애국심을 발휘했습니다. 그때 군수공장에서 일하던 여성을 상징적으로,
"리벳공 로지(Rosie the Riveter)"로 불렀답니다.
"리벳공 로지"는 1942년에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그 무렵 동일한 제목으로 레드 에반스(Redd Evans)와 존 자콥 로에브(John Jacob Loeb)가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크게 히트했다고 합니다.
"하루종일, 날이 좋든 비가 오든 그녀는 조립라인에 있어. 승리를 위해 일하지. 역사를 만들지. 리벳공 로지. 이 연약한 사람은 남자들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잘할 수 있어. 리벳공 로지. 그녀의 남자친구 찰리는 해병이야. 로지가 찰리를 지켜주네. 리벳으로 무기를 조이면서. 한밤까지 일하면서"
이 음반 커버를 보세요. 전투기를 만들고 있군요.
한편, "리벳공 로지"라는 노래가 미국 전역을 강타했을 그 무렵, 당대의 저명한 일러스트레이터 작가인 노먼 로크웰(Norman Rockwell)은 1943년 5월 29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발행된 전국 발행 잡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Saturday Evening Post) 표지를 디자인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의 책을 밟고 있는 리벳공 로지가 리벳 건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점심을 먹는 그림입니다. 이 표지 이미지도 굉장히 유명해졌지요. 전국 곳곳에 널리 퍼졌습니다.
1940년에 비해 1944년 무렵 여성노동자는 1,200만 명에서 2,000만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군수공장에서 일하는 미혼 여성들의 숫자는 400만 명을 넘었지요. 같은 시기 미혼 남성 군수공장 노동자의 수는 170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전쟁 시기에 미국 여성의 사회적 헌신과 노력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다시 집으로 '가정주부'로 돌아가야 했으니까요. 편하기는 하겠지만, 정든 직장을 남자들한테 넘겨주고 떠나야 했으니까 아쉬움도 크지 않았겠습니까. 군수공장의 일자리 대부분은 남성들에게 다시 되돌아갔는지도 모릅니다만, 모든 로지가 집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어요. 수많은 '로지'는 사무직 노동자로 업역을 바꿨습니다.
전시 리벳공 로지는, 여러분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미국역사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확대하는 데 상징적인 존재로 기록되었습니다. 1980년대 미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이 크게 확산되었습니다. 아까 위에서 소개한 "We Can Do It" 포스터도 그때 다시 재조명되었습니다. 뒤늦게 유명해진 것이지요. 그녀 또한 "리벳공 로지"로 불려졌습니다.
한편 미국의 적국인 일본은 어땠을까요?
일본은 좀 늦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미국과는 달리 '국가주의적이며 제국주의적으로' 여성노동력을 동원했습니다. 그들은 총력전에 임하는 미국의 자세와 리벳공 로지 소식에 깜짝 놀랐겠지요. 아차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정신대(挺身隊)라는 조직을 강제로 만들어내는 여자정신노동령을 발령합니다. 그때가 1944년 8월 22일입니다. 전세가 미국으로 현저히 기운 시점이었습니다. 12세부터 40세까지 미혼여성을 대상으로 군수공장 등으로 '강제동원'하는 법규를 공포했습니다.
미국은 자발적인 동참을 호소하는 캠페인이었지만 일본은 국가권력의 힘을 내세운 강제동원이었지요. 미국은 주로 미혼 성인여성을 대상으로 한 캠페인이었으나(기혼 여성도 포함됩니다만), 일본은 어린 학생을 동원해서 노동력을 착취하는 형태였습니다. 미국 리벳공 로지의 숫자와 숙련도는 일본의 어린 여학생들이 견줄 만한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참여가 수동적인 수준에 머물렀다는 얘기입니다.
한편, 일본의 정신대는 종종 성노예 지위에 있던 "종군위안부"와는 다릅니다.
리벳공 로지
위에서 설명한 리벳공 로지를 1분 30초 분량의 짧은 동영상으로 정리해주는 유튜브 영상입니다. 이 영상을 제작해서 업로드 한 Studies Weekly를 구독하세요. 이 채널의 특징은 러닝타임이 2-3분에 불과한 짧은 영상이지만 상당히 정리가 잘 된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점이지요. 그러나 별로 인기는 없는 채널입니다. 아니,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널이라고 말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