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다 녹지 않아 빙판길이 되어버린 운악산을 오른 적이 있다. 20대 때부터 아빠를 따라 등산을 몇 번 다녀봤지만 이런 설산은 처음이었다. 남편은 유산소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 남편을 '건강해지려면 운동해야지'라는 말로 채찍질해서 산으로 데려갔다. 어떻게 신는 건지도 몰랐던 포장도 뜯지 않은 아이젠을 무기 삼아 오르기 시작했다. 너무 미끄러우면 그때 차야지, 그럼 아무 문제없을 거야. 남편은 나보다도 산이 낯선 사람이었다. 얼마 오르지도 않았는데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자꾸 멈추려는 남편의 팔을 잡아끌면서 산을 오르고 또 올랐다. 이때까진 잘 몰랐다. 설산을 내려온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아이젠을 신어야만 건너갈 수 있는 구간이 나왔다. 남들에게 물어물어 아이젠을 착용했지만 사용해 본 적이 없으니 겁이 났다. 미끄러지는 순간 곧장 낭떠러지였다. 여기서는 서로를 의지해서 갈 수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지나가는 걸 보며 요령을 익혔다. 오히려 주춤거리면 위험하다고 해서 한 번에 길을 내려왔다. 문제는 남편이었다. 이미 녹초가 된 남편이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지면 어떡하지, 그런 불안감이 엄습했다. 남들은 잘만 지나가는데, 우리에게는 목숨을 거는 것과 다름없는 순간이었다. 보는 내가 손발이 떨릴 정도로 남편이 천천히 내게로 걸어왔다. 그 구간을 지남과 동시에 남편의 체력은 한계를 넘어섰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고 급기야 엉덩이로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말을 붙이기도 무서울 정도로 처절한 모습이었다. 그날 운악산을 오르내리는데 6시간이 걸렸다. 대부분의 등산객이 떠난 오후 4시, 텅 빈 주차장에 도착을 했다. 평지로 내려오자마자 긴장이 풀리면서 참았던 눈물이쏟아졌다. 남편도 아마 하산을 하면서 찔끔찔끔 울었던 거 같다.
이날 등산은 남편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쳤다. 심한 근육통과 몸살이 찾아왔다. 약국에서 주는 약만으로는 몸이 회복되지가 않았다. 결국 병원을 찾았고 피검사까지 받게 되었다. 갑상선 염증 수치가 꽤 많이 올라있었다. 의사선생님은 과도한 운동이 원인일 거라 말했다. 앞으로 무리한 운동은 삼가고 걷기 위주의 운동을 하라는 진단서를 받았다. 오직 남편의 건강을 바라며 등산을 해왔는데···. 운동은 원래 힘든 거라며 내 기준에 맞춰 등산을 시킨 거 같아 미안했다. 다시는 설산에 오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새것과 다름없는 아이젠을 처분했다. 남편이 다시 운동을 시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22년 2월, 운악산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남편은 더 유리몸이었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그날부터 낯선 운동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는지 새로운 운동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나는 운동을 강요하진 않을 테니 몸이 어떤 상태인지 상담이나 받아보자고 했다. 그렇게 재활피티센터를 찾아가게 되었다. 트레이너 선생님이 신체의 균형과 가동범위 테스트를 진행했다. 한 발 들고 서있기, 누워서 한 발&한 팔 들기, 양손을 등 뒤로 넘기기, 쪼그려 앉기 등 기본적인 동작을 시켰다. 하지만 남편은 거의 한 동작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30대에 이렇게 몸이 굳은 사람을 처음 봤다고 했다.
"저한테는 돈을 버는 것보다 저 사람을 고칠 수 있을지가 더 중요한데 솔직히 자신은 없습니다. 예약도 아내분이 하고 지금 상담도 아내분 위주로 진행되고 있는데 남편분의 의지가 없다면 맡고 싶지 않습니다."
재활피티센터에서 거절을 당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운동을 강요하지 않기로 했으니 남편이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만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센터에 온 순간부터 침묵만 유지하던 남편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저 하겠습니다. 변하고 싶어요."
그때 만난 선생님과 1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 스쿼트 자세를 취하는 것조차 힘들어하던 남편은 어느새 양손에 10kg씩 덤벨을 들고도 스쿼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장족의 발전이었다. 서서히 운동에 취미를 붙여가던 남편은 등산 이후로 피해왔던 유산소 운동을 시작했다. 요즘 안양천에서 한창 러닝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1km를 안 쉬고 뛰는 게 목표였다면 이젠 5km도 거뜬히 달린다. 이번주는 남편의 생애 첫 마라톤이 예정되어 있다. 5km 코스지만 말이다.
나도 남편을 간호하면서 많이 바뀌었다. 먼저, 내자신이 단단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등산, 러닝을 남편에게 권하기 전 나부터 시작을 했다. 70kg이 넘는 몸무게로 무작정 뛰고 올랐다. 런데이라는 어플을 통해 초급자 플랜, 쉬지 않고 30분 달리기를 성공했다. 몸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릎이 아파지면서 근력운동도 병행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체지방이 빠지고 그 자리에 근육이 붙기 시작했다. 최근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모든 항목에 녹색불이 들어왔다. 매년 잴 때마다 혈압이 높아서 곧 약을 먹게 될지도 몰랐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남편의 식단을 챙기다 보니 요리에 취미도 생겼다. 바쁘다는 핑계로 식단에 소홀했는데 배달과 외식을 줄이기 시작했다. 하루 온종일 걸린다는 곰국도 끓여봤고 도토리가루를 사서 묵도 쒔다. 강화도 텃밭에서 자란 소소한 야채들로 반찬을 만들어먹기도 한다. 남편의 건강을 바란 것뿐인데, 어느새 나도 바뀌고 우리의 삶도 달라지고 있었다.
요즘 달리는 건 싫지만 남편을 따라 안양천으로 나간다. 걷다 보면 저 멀리서 반환점을 돌아오는 남편이 보인다. 날이 맑아서일까? 그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남편의 뒷모습
결혼한 지 햇수로 8년이 되었다. 결혼을 결정할 때도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에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왜 결혼을 택했냐 묻는다면, '저 사람이라면 사막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겠구나' 사랑보다 사람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주변 지인들은 우리부부를 오랜 세월 함께한 노부부 같다고 표현했다. 알콩달콩은 아니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로 만들어진 편안함이 있었다.
남편을 간호하고 곁을 지키면서 사랑이 샘솟기 시작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나아가는 그에게 반했다. 결혼 8년 만에 반했다는 말도 참 웃기지만 그렇게 사랑을 깨닫기 시작했다. 대학생 시절, 사랑을 주제로 수많은 습작을 하면서도 찾지 못했던 사랑이란 감정의 실체였다.
사랑은 두근거림, 설렘, 행복, 기쁨 이런 단어로 대체할 수 있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다. 어느덧 33살이 된 나에게 사랑이란, 남편이 평생 행복하길 바라는, 그렇게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