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능과 연관된 전반적인 검사를 받았다. 호르몬 수치, 전립선 검사 등에서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신체 상태만 보면 자연임신을 기대해봐도 될 정도였다. 심리적인 문제를 염두에 두고 정신과 검사도 함께 받았다. 남편은 힘든 신체검사를 잘 받았지만 오히려 심리검사에서 거부반응을 보였다. 여전히 이런 부분에 있어서 보수적이었다.(16화) 몇 번의 상담을 받는 동안 나는 밖에서 남편을 기다렸다. 의사선생님은 나에게 남편과의 상담내용에 대해 집에 가서도 묻지 말라고 했다. 매사 긍정적이고 솔직한 남편인데, 내가 모르는 그들 사이의 이야기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 병원을 찾게 된 이유는 하나였다. 여기는 성 관련 문제를 약이나 시술 없이 치료하는 곳이었다. 가령, 약으로만 발기가 되는 사람에게 약 없이도 성생활이 가능하도록 치료를 돕는 병원이었다. 대신 일회성 치료가 아닌 꽤 긴 시간과 꽤 큰 금액을 들여야 했다. 정확히는 몰라도 난임병원에 들어가는 돈만큼 이미 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성 관련 문제에 특화된 병원 자체가 잘 없기 때문에 선택권 또한 없었다. 어쩌면 우리부부의 평생이 달린 문제인데 그거에 비하면 합리적인 금액이었다.
갈 때마다 병원에서 숙제를 받아왔다. 성관계를 맺기 위한 뻔한 방법이 아닌 '이걸 왜..?'와 같은 반응이 나오는 과제였다. 매주, 격주로 병원을 갔지만 숙제를 하는 시간을 포함하면 일주일이 바빴다. 그중 가장 와닿았던 건 서로의 몸을 열심히 탐구해야 하는 과제였다. 심지어 내가 내 몸을 구석구석 보기도 해야 했다. 실제로 과제를 하면서도 '와, 이건 좀..' 수치스러운 느낌도 들었다.
"해보니 어떠셨어요?"
의사선생님은 숙제 후 꼭 소감을 물었다. 나는 솔직하게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던데요?'라고 답했다. 선생님은 항상 이유나 정답을 먼저 알려주시지 않았다. 그저 또 다른 숙제를 안겨줄 뿐이었다. 그렇게 숙제를 하고 소감을 말하면서 바뀐 건 부부 사이에 성 이야기가 오가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서로의 몸이 익숙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손을 잡고 포옹을 하고 입을 맞추는 것과는 다른 원초적인 느낌이었다. 야하지도 수치스럽지도 않은 '자연스럽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더는 서로가 두렵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병원에 다니고 있다. 두 달이 조금 지난 지금, 완쾌를 말하기에는 이른 시점이다. 다만 내가 브런치에 기록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하나였다. 지금처럼 우리가 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바꾸려고 노력한다면 못 할 게 없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 결혼 8년 차가 되어서야 우리가 함께 하는 미래가 그려졌다.
나는 남편을 사랑한다. 어떤 시련이 찾아와도 다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주 3회 발행을 목표로 시작했지만 끝이 다가오면서, 우리의 현재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간이 찾아오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장편으로 호흡을 가져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느꼈다. 언젠가 글에 썼듯, 이 글을 완성한 후 남은 감정이 '후련'이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는데 사실 조금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이 아쉬운 마음 덕분에 또 다른 글을 써보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다. 글을 엎고 싶고 게을러질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내 글에 꾸준히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몇 분의 독자님 덕에 힘이 났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