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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맹 Nov 03. 2024

아직 진행 중인 이야기

난임병원에 바로 가지 않은 이유 (2)

성기능과 연관된 전반적인 검사를 받았다. 호르몬 수치, 전립선 검사 등에서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신체 상태만 보면 자연임신을 기대해봐도 될 정도였다. 심리적인 문제를 염두에 두고 정신과 검사도 함께 받았다. 남편은 힘든 신체검사를 잘 받았지만 오히려 심리검사에서 거부반응을 보였다. 여전히 이런 부분에 있어서 보수적이었다.(16화) 몇 번의 상담을 받는 동안 나는 밖에서 남편을 기다렸다. 의사선생님은 나에게 남편과의 상담내용에 대해 집에 가서도 묻지 말라고 했다. 매사 긍정적이고 솔직한 남편인데, 내가 모르는 그들 사이의 이야기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 병원을 찾게 된 이유는 하나였다. 여기는 성 관련 문제를 약이나 시술 없이 치료하는 곳이었다. 가령, 약으로만 발기가 되는 사람에게 약 없이도 성생활이 가능하도록 치료를 돕는 병원이었다. 대신 일회성 치료가 아닌 꽤 긴 시간과 꽤 큰 금액을 들여야 했다. 정확히는 몰라도 난임병원에 들어가는 돈만큼 이미 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성 관련 문제에 특화된 병원 자체가 잘 없기 때문에 선택권 또한 없었다. 어쩌면 우리부부의 평생이 달린 문제인데 그거에 비하면 합리적인 금액이었다.


갈 때마다 병원에서 숙제를 받아왔다. 성관계를 맺기 위한 뻔한 방법이 아닌 '이걸 왜..?'와 같은 반응이 나오는 과제였다. 매주, 격주로 병원을 갔지만 숙제를 하는 시간을 포함하면 일주일이 바빴다. 그중 가장 와닿았던 건 서로의 몸을 열심히 탐구해야 하는 과제였다. 심지어 내가 내 몸을 구석구석 보기도 해야 했다. 실제로 과제를 하면서도 '와, 이건 좀..' 수치스러운 느낌도 들었다.


"해보니 어떠셨어요?"


의사선생님은 숙제 후 꼭 소감을 물었다. 나는 솔직하게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던데요?'라고 답했다. 선생님은 항상 이유나 정답을 먼저 알려주시지 않았다. 그저 또 다른 숙제를 안겨줄 뿐이었다. 그렇게 숙제를 하고 소감을 말하면서 바뀐 건 부부 사이에 성 이야기가 오가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서로의 몸이 익숙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손을 잡고 포옹을 하고 입을 맞추는 것과는 다른 원초적인 느낌이었다. 야하지도 수치스럽지도 않은 '자연스럽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더는 서로가 두렵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병원에 다니고 있다. 두 달이 조금 지난 지금, 완쾌를 말하기에는 이른 시점이다. 다만 내가 브런치에 기록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하나였다. 지금처럼 우리가 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바꾸려고 노력한다면 못 할 게 없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 결혼 8년 차가 되어서야 우리가 함께 하는 미래가 그려졌다.


나는 남편을 사랑한다. 어떤 시련이 찾아와도 다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주 3회 발행을 목표로 시작했지만 끝이 다가오면서, 우리의 현재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간이 찾아오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장편으로 호흡을 가져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느꼈다. 언젠가 글에 썼듯, 이 글을 완성한 후 남은 감정이 '후련'이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는데 사실 조금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이 아쉬운 마음 덕분에 또 다른 글을 써보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다. 글을 엎고 싶고 게을러질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내 글에 꾸준히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몇 분의 독자님 덕에 힘이 났던 거 같다.


모르는 타인의 이야기를, 그것도 이렇게 긴 글을 통해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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