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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선 Mar 22. 2021

노란 집

3 아픔의 강

3 아픔의 강


“윤희야! 민준이가 나를 버리고 떠났어!”
오열하며 소리치는 홍연의 울음소리에 놀라 깨어나 보니 꿈이었다. 너무나도 생생하여 도저히 꿈이라고 받아들이기가 섬뜩한 기분이다.
(무슨 일 있나?)
정말 죽고 못 살 것 같던 얘들이 헤어졌는지 궁금증보다 너무나도 슬프게 울던 홍연이의 모습이 자꾸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와서 손에 일이 잡히지 않는다.
요즘 친정에 가려고 마음먹었던 차라 대충 얼굴만 씻고 스킨로션을 얼굴에 찍어 바르고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덜커덩거리며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에 몸을 맡긴 채 흔들거리는 머릿속에는 울며 꿈속까지 찾아온 홍연이 모습만 가득하다.

달리는 버스 창 너머로 녹색 물이 든 산과 들이 스쳐 지나간다. 창을 살짝 열어놓자 지나가던 바람이 방향을 틀어 버스 안으로 휘휘 들어와서는 익살 궂게 머리를 헝클어 놓고 스쳐가는 바람도 오늘은 반갑지가 않다. 한참을 먼지를 일구며 달려가다 보면 혈 흔천을 지나는 다리가 있다. 그 다리 밑으로 반짝이는 햇빛을 온몸에 은박을 박아 넣고 흐르는 저 강은 오늘도 뭉클한 그리움을 유발하면서 유유히 흐르고 있다. 엄마의 강이다. 돌아가신 엄마의 유골이 흩뿌려진 강이라 다리를 지날 때마다 눈에 이슬이 맺히고 슬픔이 덮쳐온다. 왜 하필이면 이 강을 넘어 시집을 가서 다리를 건널 때마다 이렇게 아파야 하는지? 심장이 죄여 드는 아픔의 강. 혈은천은 그냥 내 가슴에 아픔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버스역에는 외출 다니는 사람들만 모여 사는 동네처럼 작은 보따리 큰 보따리를 이고 지고 멘 사람들로 붐빈다. 이렇게 사람들로 붐비는 역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헤집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일은 곤혹이다. 어쩌면 저렇게 촌스럽게 올망졸망 지고 이고 다니는 사람들 옆을 스치고 지나 만 가도 불쾌한 기분이 몸에 옮아 올 것 같은 꺼림직한 느낌이 얼굴에 씌여 누군가 알아챌가봐  늘 망설여지고 조금이라도 틈서리가 지기를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한쪽에서 인내하는 그 짧은 시간도 오늘은 지루하다.
시내로 이사 온 홍연이네 집으로 가려다 윤희는 그냥 아빠가 기다리는 시골에 있는 친정으로 가는 마을버스에 앉았다. 먼지를 뽀얗게 흩날리며 둔탁하게 달리는 버스 창 밖으로 초록색 물이 든 옥수수들이 꼬마병정들처럼 줄지어 서있는 밭보였다. 이제 이삼 개월만 지나면  팔뚝만 한 옥수수를 아기처럼 업고 서 있겠지, 그때면 마을에는 온통 옥수수 는 냄새로 가득할 것이고 옥수수를 싣고 달리는 자전거 탄 아낙들의 모습들이 줄지어 있을 것이다.


온다는 소식도 없이 온 막내딸이 좋기만 한지 이것저것 자꾸 챙겨주는 늙으신 아빠를 보고 있자니 코끝이 시큰하다. 엄마를 앞세우고 혼자가 되신 아빠의 얼굴에는 이름 모를 외로움과 쓸쓸함이 주름진 얼굴에 때 자국처럼 얼기설기 묻어나 있다. 오빠와 올케언니는 밭에 나가고 조카애들은 학교 갔는지 아버지 혼자 남은 집은 홀가분하고 조용하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 벨소리가 꼭 마치 홍연이의 부름 소리처럼 조급하게 울려왔다.
“여보세요? 누구…”
윤희야! 집에 왔구나. 내가 지금 올라갈 가?”
홍연이의 습기 찬 목소리가 말끝을 자르며 울려왔다.
“응 그래. 안 그래도 꿈에 널 봤는데… 괜찮은 거지?”
“아니! 나 안 괜찮아!”
울먹이는 듯한 홍연이의 목소리가 전화줄을 타고 슬프게 울려왔다.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것 같아 무슨 말로 끝을 맺었는지 넋을 놓고 있는 동안 수화기에서는 이미 삐-삐-하는 단절음이 들려왔다.
“와? 누구야? 멍하니 뭐 하 노?”
시내로 이사 간 홍연이 생각나세요? 지금 올라 온대요.”
“근데 얼굴이 와 그래? 무슨 일이 생긴 거가?”
“글쎄요. 목소리가 안 좋네요. 오면 알겠죠.”
경산도 말투가 다분한 아버지의 무뚝뚝한 말에 걱정이 묻어났다. 사색이 된 막내딸 얼굴을 쳐다보는 아버지의 걱정을 줄여드리려고 넘어가지 않는 밥을 억지로 입안에 밀어 넣고는 밥상을 물리고 있다가 아버지 식사가 끝나자 대충 정리하고 마당으로 나갔다.
앞마당에서 초조하게 서성거리며 홍연이를 기다리고 있자 니 멈춘 듯한 시간 속에 공기마저 다 빨려간 것 같은 공간에서 갈팡질팡하는 벌레 마냥 이대로 있다 가는 그냥 질식해서 죽어버릴 것 같다.
무슨 일이지? 정말 헤어라도 진건가?'
헤어진 슬픔이라고 생각하기에는 홍영이의 슬픔에 너무나 큰 상실감이 묻어나서 단순 헤어짐이 아니라는 생각이 찝찝하게 속에 걸린다. 조금 진정하려고 평소에 아빠가 혼자 거처하시는 초가집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마을 중앙을 지나 자전거 탄 홍연이의 모습이 보였다. 뛰어가려 다가 사람들의 시선에 눌리어 그냥 기다렸다. 홍연이의 불안한 목소리가 의연 중 그렇게 하도록 나를 지배하는 것 같아 둘은 누구도 알아서는 안될 것 같은 무거운 짐짝 같은 소식을 들키기라도 할까 봐 얼른 아무도 없는 아빠 사랑채로 들어갔다.
준이죽었!”
핵폭탄급 소식을 던지고 오열하며 품에 쓰러지는 홍연이를 안고 나도 그냥 물어 앉아버렸다.
“왜?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화장터로 보내고 오는 길이야. 나 어떡해? 걔가 없는 세상에서 나 홀로 어떻게 살라고…”
준이가 죽다니?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늘 싱그럽고 건강하게 웃던 준이의 준수한 모습이 시나브처럼 떠오른다.
“나 홍연이를 좋아해! 근데 준희도 걔를 좋아한 대.”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스러워하던 준희랑 민준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나는 민준이를 선택한 홍연이의 열렬한 사랑만을 응원했다. 같은 여자라서 그런지 아니면 둘이서 함께 가꾸어야 피어날 수 있는 인간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만이 응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인지 나는 준희의 짝사랑은 그냥 거기에서 멈춰 주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설마? 아닐 거야!’
피 묻은 준희 손과 쓰러지는 민준이 모습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아닐 거야! 몇 번 싸우는 모습은 봤어도 준희가 그 정도로 광기 있는 애는 아니지 않은가?
사랑하는 남자를 저 세상에 보내 놓고 울고불고하는 홍연이를 붙들고 꼬치꼬치 캐 물어볼 수도 없고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은 윤희 얼굴도 이미 눈물로 범벅이 되어버렸다.
“말을 해봐. 어떻게 된 일인지?”
“갑자기 저렇게..."


간질병 환자처럼 입에 거품을 물고 머리를 옷장에 대고 계속 박다가 쓰러진 걸 병원에 데려갔는데 병원에서도 무슨 병인지 모른 단다. 머릿속에 무슨 벌레가 들어갔는지 쑤시듯이 아파서 단단한 벽이나 옷장 같은 것만 보면 너무 박아서 머리는 터져 붕대를 감은 상태였고 홍연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말문이 막혔는지 혀가 굳었는지 안타깝게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눈만으로 뜻을 전달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홍연이는 받아들여야 했다고 말하는 홍연이, 20대에 말도 안 되는 남자 친구의 임종을 지키면서 혼자 두고 차마 눈을 감을 수 없어 굳어진 준이의 눈을 감기는 순간 윤희가 너무 보고 싶어서 이름을 부르며 통곡했다는 그 시간이 울며 꿈속까지 찾아와서 헤어졌다고 슬프게 울던 시간과 신기하게도 겹쳤다.
“살아 있는 것처럼 자꾸 쳐다보는 눈을 내가 감겨주었어. 목욕시켜주고 새 옷을 갈아 입혀주고 얼굴에 스킨로션을 발라주는 동안 희한하게도 눈물은 나지 않았 어. 거짓말 같았으니까.”
실의에 빠진 홍연이는 입가에 미소까지 어린 채 타인의 일상을 얘기하듯이 담담하게 울렸다.
“근데 지금은 너무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어.”
준이를 돌려 달라는 듯이 쳐다보는 홍연이의 애절한 눈빛에 윤희의 가슴이 무너진다.
민준의 죽음을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가혹하고 허망한 이 상황에서 윤희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죽음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인간의 미소함을 허무하게 받아들이는 일 밖에 딱히 할 일이 없었고 너무나 큰 상실감으로 영혼마저 슬픔에 젖어서 울고 있지 않는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민준이 어머니 뵈러 가야겠어.”
한참을 넋을 놓고 울고 있다가 슬픔과 상실감으로 기둥 같은 아들을 잃고 쓰러져 있을 준이 엄마의 생각에 서둘러 민준이네 집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 집은 초비상에 걸려있었다. 준이 엄마 랑 동생 그리고 몇몇 친구들이  슬픔과 허탈에 치어서 기운이 빠진 채 빈 껍질 마냥 구석에 기대어 슬픔을 안고 웅크리고 있었다. 전등불도 켜지 않은 집안에 흐르는 슬픈 기운은 집안에 널브러진 사람들의 몸속에 빨대를 대고 실낱 같은 기운까지 깡그리 빨아 가버린 듯했다. 구들 한복판에 누워 계시는 준이 엄마를 보자 눈물이 나와서 한참을 부둥켜안고 엉엉 울기만 했다. 그 어떤 말도 위안이 될 수 없는 시간, 죽음 앞에서 함께 울어주는 것 외에 달리 할 것이 없어서 울기만 했다.
발병해서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병명도 알지 못한 채 주검으로 변한 아들의 얘기를 꺼이꺼이 울면서 이어가는 아들 잃은 엄마를 보고 있자니 가슴은 고춧가루 세례를 받은 듯 얼얼하고 먹먹하였다.
준이가 이분한테는 어떤 아들인가? 출장을 밥 먹듯이 다니는 남편보다 큰 아들인 민준이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살아온 팍팍한 나날들, 큰 아들은 친구도 되어주고 가장의 빈자리를 메워주는 존재였다. 허구 헌 날 우리 여자애들 속에서 시시덕 거리는 아들을 보고 아랫도리에 달린 거추장스러운 물건 떼 줄 가며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아들을 놀리던 유머스러운 준이 엄마는 못 본 사이에 폴싹 늙어버린 채 슬픔 속에서 헐겁게 휘청거리고 있었다.
아들을 앞세운 준이 엄마는 그 와중에도 홍연이를 쳐다보면서
“얘를 어떻게 하냐? 너를 어찌할꼬?”
준이 엄마는 홍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꾸 오열한다.
말문이 막혀서 말을 못 하는 그 순간에도 홍연이를 혼자 두고 가야 하는 준이는 자꾸 엄마에게 홍연이를 가리키면서 말은 못 하고 턱만 주억거렸다 고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결혼하려고 했는데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은 없을 것이라며 구들장을 두드리다 가슴을 치는 준이 엄마를 보는 홍연이는 별반응이 없다. 꼭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는 듯이 담담하고 창백한 얼굴을 보니 마음은 또 한 번 쿵 하고 무너진다. 얼마나 상심이 클 가? 이 꽃다운 나이에 이런 거지 같은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다니. 너무나 가혹하였다.
우리 몇몇은 채 치우지 못한 민준이의 옷 견지와 나머지 유품들을 챙겨서 어머니를 모시고 민준이 유골이 뿌려진 혈흔천으로 갔다. 나머지 옷을 태우고 그 재 먼지를 혈흔천에 띄워 보내는 내내 짧은 생을 살고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린 준이의 허탈한 인생, 넘치는 행복 때문에 늘 불안해하던 홍연이의 재수 없는 그 말에 정말 질투의 화신이 듣고 마술이라도 부려서 홍연이에게서 준이를 빼앗아 가버린 것 일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며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해대던 홍연이가 어처구니없이 얄미웠다. 그렇게 행복한 순간순간에도 뿌리칠 수 없는 불안감으로 떨던 홍연이었다. 너무나 소중해서 사라질 가봐 전전긍긍하던 그녀, 그래서 끝내는 그 소중한 걸 잃어버리고 세상 다 산 사람처럼 흔들거리고 있다. 풀잎에 스쳐도 넘어져 쓰러질 것 같은 홍연이의 그 상실감과 허탈로 속까지 다 비워진 실낱 같은 그녀를 옆에서 껴안아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 옆에 준희가 서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인가? 이런 얄미운 생각은 꼭 이 시점에서 떠올라야 했을까? 보이는 그림에서 비치는 허상 같은 것이다. 이름 못할 불안이 머리를 쳐들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준이의 그 허무하게 짧은 인생에 화가 나서 왕왕 울어버렸던 그날, 우리 몇몇은 가져온 술을 눈물로 안주삼아 강에 한잔 우리 한잔 하면서 취하도록 마셔 댔다. 그냥 취하도록 마시고 죽고 싶어 졌다.
그날따라 붉게 타오르던 석양은 온 강변을 빨갛게 태우고 붉은 눈물을 줄줄 흘려 혈흔천을 더 붉게 물 드리며 유유히 흘러갔다. 또 하나의 아픔을 품은 채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는 이 강물,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아픔 없이 바라볼 수 없는 이 강의 끝은 어디일지 그 끝에 준이가 있을까? 어린 시절엄마의 유골이 뿌려진  이 혈흔천을 따라 어디론가 흘러가고 싶었는데 늘 이 강의 끝에 서 계실 것 같은 엄마를 찾아 강을 따라 무한정 가고 싶었는데 지금 나는 또 준이의 유골을 삼킨 채 유유히 흘러가는 이 강을 따라 그 끝에 흘러가고 싶어 진다.
저녁 강바람이 취기로 달아오른 얼굴을 식혀주면서 불어온다. 그냥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이 자갈밭에 쓰러져서 자고 싶다. 아들을 잃고 넋을 잃은 준이 엄마도 남자 친구를 잃고 실의에 빠진 홍연이도 다 귀찮아졌다. 눈을 감으니 속없이 능글거리던 준이 준수한 얼굴이 클로즈업이 되어 떠오른다.
“언제 왔어?”
“낮에 홍연이가 너 랑 헤어졌다고 울며불며 전화를 해대서 너 랑 따지러 왔어!”
“지쳐버렸 어! 까만 벌레들 무리 속에 갇혔는데 빠져나올 수가 없었 어. 어떻게 겨우 빠져나오긴 했는데 그만 귀 아래 목이 따끔하더니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 같아. 깨어나 보니 하얀 시트가 쓰인 병원 침대에 내가 누워 있었고 옆에는 눈도 코도 없는 민둥민둥한 도깨비 같은 저 아저씨는 자꾸 갈 시간이라고 재촉하고 있어.  홍연이가 저렇게 자꾸 우는데 너무 걱정 되잖아. 네가 좀 지켜 봐줘.”
“말 두 안돼? 너만 찾고 있는 애를 무슨 수로 지켜? 그 아저씨 따라가지 말고 홍연이를 어떻게 해봐. 저러다가 송장 치르게 생겼 어!”
“나는 가야 한다니까! 네 눈에는 저 도깨비 같은 아저씨가 안 보여?”
준이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출렁거리는 강우로 가볍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 뒤로 안개가 서서히 준이와 도깨비 아저씨를 삼키면서 피어오른다. 그 뒤로 하얀 강아지도 눈부시게 하얀빛을 뿌리며 사라지고 있었다.
민준아! 안돼 민준아! 건너지 마!”
누군가 부르는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온다. 민준이 목소리인 거 같기도 하고 민희 목소리인 것 같기도 하고 눈을 떠보니 민희였다. 윤희는 그만 울어버렸다. 이 친구한테 기대서라도 한바탕 울어야 가슴속에 뭉쳤던 서러움이 풀리고 숨통이 틔어 숨을 쉴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준이가 갔어! 그 도깨비 아저씨 손에 잡혀서 끌려가는 걸 보고만 있었어!"
흐느끼는 어깨를 감싸주고 다독여주는 민희도 울고 있었다. 세상 모두가 슬픔에 흐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시린 마음을 기대고 아득하게 밀려오는 거대한 적막으로 견디기 어려운 슬픔에 갇혀버렸다.

어느새 밤의 검은 면사포가 사방으로 둘러싸여 있고 밤하늘에는 누가 빼먹은 것 같이 듬성듬성한 별들이 깜박깜박 졸고 있었다. 강우에 가로놓인 아치형 다리 위로 헤드라이트를 켠 차들이 어디론 가  빨간 불을 켜고 꽁무니를 빼고 있는 모습들이 보여도 갈 곳을 잃어버린 우리의 시간은 이곳에 정체된 채로 강변에 굳어져버렸다.
얼마나 마셔 댔는지 취한 친구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진 채 머리를 사타구니에 처박고 돌 멍석처럼 앉아있다. 홍연이는 옆쪽에서 준희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었다. 달빛 아래 처절하게 창백해진 얼굴은 흡혈귀한테 모든 피를 빨려버린 듯 질리도록 하얬다. 이 시각 홍연이 옆에서 그녀에게 어깨를 빌려주는 준희를 보면서 거품처럼 사라져 버린 준이가 너무나도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며 도로 눈을 감았다.
‘그래 너라도 걔 옆에 있어줘!’
사람의 마음이란 이렇게 간사한가 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는가? 홍연 바라기 준희라면 준이 못 지 않게 홍연이를 사랑해 줄 수 있지 않을 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준이에 대한 미안함에 머리를 돌리려 하니 가슴이 더 쓰라리다. 가혹한 징벌을 내릴지라도 지금은 그냥 이 정도로 만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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