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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SS Sep 20. 2022

캐나다의 한국 김치와 '김치 시지마'

우리 김치도 이미 세계적인 명품입니다.


요즘 대학 학위논문에 대한 많은 사회적, 도덕적인 이슈들이 터져 나오고 있어 조금 민감한 내용이지만 제가 다니던 그 시절은 대학 마지막 학년에 졸업시험도 있었지만 졸업을 위한 논문을 작성해 제출해야 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무슨 주제로 써볼까 한동안 고민하며 찾다가 김치에 대해서 쓰기로 결정하고 필요한 여러 자료들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식품공학을 전공한 저에게도 김치는 늘 어머니께서 천일염에 절인 배추와 무, 파, 갓등 각종 야채와 갖은양념으로 담가서 잘 익힌 후 식탁에 빠지지 않고 항상 올라가며 추운 겨우내 먹고 지내기 위한 김장이라는 대역사(?)를 매년 반복한다는 것 외에는 별로 크게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수집한 자료들을 통해 논문을 작성해 가며 김치가 생각했던 것보다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과학적으로나 영양학적으로도 매우 잘 만들어진 우리 조상들의 뛰어난 발효식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끝날 줄 알았던 김치와의 인연은 대학 졸업 후 몇 년 뒤 직장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당시 식품 대기업인  00에서는 '00집'이라는 브랜드로 김치의 국내 판매와 해외 수출을 목표로 상품화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저는 외주 설비 지원 멤버로 팀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치의 종주국답게 각 지역을 대표하는 맛깔난 김치의 레시피를 준비하고 일정한 품질유지를 위해 규격화시킨 시제품을 만들 수는 있었지만 제품의 상품성을 부여하는 유통기한과 포장방식의 문제라는 벽에 마주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발효식품이라는 김치의 특성상 유통기간을 늘리기 위해서는 발효를 지연시키며 제품이 천천히 익어가도록 해야 하며 발효과정 중 만들어지는 이산화탄소도 자연스럽게 배출시켜 부풀어 오르지 않는 형태의 포장방식도 요구되었습니다. 그러나 시작하자마자 곧 어려움과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미생물과 유산균에 대한 기초연구와 제품 개발이 다른 나라들 특히 일본이나 덴마크, 프랑스에 비해 떨어지고 다양한 포장소재와 기술 또한 뒤져 있는 수준이어서 일본과 프랑스 업체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 직접 방문하여 그들의 기술과 설비에 대한 정보를 얻고 이를 바탕으로 테스트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포장에서 발효에 의해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면서도 외부 공기의 유입은 가능한 차단해야 하는 특수한 포장소재와 형태를 개발하면서 동시에 유사한 제품을 외국에서 찾고 있었는데 높은 벽에 가로막혀 프로젝트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발효를 지연시키거나 억제하는 미생물의 적용 실험도 같이 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포장 쪽에 더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실패한 사례로 한 일본 업체가 개발한 초고압설비 장치를 적용하여 미생물을 불활성화 시키는 테스트를 시행했는데 놀랍게결과물은 열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지만 초고압만으로도 김치찌개가 만들어지는 등의 계속되는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일단 업소용으로 제품 출시를 시작했습니다. 요즘 식당에 대용량으로 납품하는 방법으로, 담근 김치를 플라스틱 백과 박스에 포장해서 공급하는 방식이었는데 아무래도 가정보다는 사용량이 많기 때문에 회전이 빨라 시어지기 전에 소모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집에서 담그는 김치가 아닌 공장에서 대규모로 만든다는 '공장 김치'라는 오명을 쓰면서 판매는 지지부진했습니다.


더구나 김장시즌에는 더 많은 김치를 만들다 보니 판매 안된 재고가 쌓여 직원들에게 싼 가격으로 판매하거나 그나마도 포장이 부풀거나 맛이 시어진 것은 무료로 나누어주는데 한 번은 10박스씩 받아 부모님과 친지들에게 나눠 주려했는데 '공장 김치를 어떻게 먹냐, 됐다'라고 하며 거절해서 처리하는데 애를 먹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계획은 서서히 진행하는 발효와 시지 않게 하는 미생물의 적용 테스트의 결과물을 낼 때까지 계속 뒤로 연기되었고 그 이후로 저는 회사의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팀에서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때쯤인가 어릴 적에 특별한 이름으로 기억나는 제품이 하나 있었습니다. 1976-77년경에 친척이셨던 서울대 미생물학과 교수님의 개발로 상품화되었던 '김치 시지마'란 제품이었는데 김치를 담글 때 소량을 첨가하여 가능한 천천히 발효시키면서 서익어가게 만들며 김치의 신맛을 최소화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자료를 찾을 수 없어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몇 가지 유산균이 합쳐져 만들어진 제품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게 프로젝트에서 빠지면서 김치에 대한 관심도 조금씩 제 기억에서 잊혀 갈 무렵 출장차 방문했던 프랑스 파리에서 우연히 식품 관련 전시회에 참석한 프로젝트 팀 멤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팀원들로부터 일부 팀 개편이 있었고 예상대로 포장보다 미생물 쪽으로 개발 방향을 바꾸어 보강 연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특히 새롭게 보강된 팀장과 팀 연구원으로 잘 알던 대학교 선배들이 합류하게 되어 타지에서 우연한 만남이 더욱 반가웠고 기억에 남을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하였습니다.


그 이후 몇 년 뒤 저는 캐나다로 이민을 오게 되고 시간이 제법 지나며 김치에 대한 맛의 진한 향수를 불러오게 될 즈음 2007년에 캐나다를 방문하신 친척분이 한국에서 선물로 준비해 오신 '00집'의 다양한 종류의 그 김치를 보고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아 드디어 성공했구나! '


공항에서 출발 전에 캐나다에는 김치가 있을까 싶어 사셨다는데 잘 만들어진 보관용 쿨링백에 가져오신 그 김치는 종류별로 정말 하나하나 맛깔스럽게 잘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너무나 가슴 뿌듯하고 어떤 식의 처리를 했는지 포장지에 기재되어 있는 원료들을 하나씩 살펴보는데 역시 유산균 이름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김치는 여러 재료가 발효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유산균이 만들어지는데 이 유산균들이 김치 맛에 영향을 주는 발효로 만들어진 부산물을 생성합니다. 김치의 발효를 주도하는 유산균 중 류코노스톡(leuconostoc)은 시원한 단맛과 청량감을 주는 이산화탄소를 만들고 와이 셀라(weissella)와 락토바실러스(lactobacillus)는 신맛을 내는 젖산을 주로 만듭니다. 따라서 어떤 유산균이 발효를 주도하느냐에 따라 김치의 맛이 달라집니다. 이러한 원리를 적용하여 맛과 시어짐을 방지하면서 상품성을 높인 일반 고객용 제품을 완성시킨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 김치는 한국 고유의 전통 발효식품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고 이곳 캐나다에서도 초창기 제가 참여했던 그 회사 그 브랜드로 타 유사제품과는 차별화되어 프리미엄 가격의 제품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많은 저가의 중국 제품 및 소규모로 만든 공장 제품이 진열대에 같은 김치라는 이름으로 나와 팔리고 있지만 감히 비교할 수준의 제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국 업체 또는 이곳의 소규모 업체들이 정말 잘 만들어진 김치를 생산하려고 했다면 그들도 저희가 겪어왔던 같은 문제들과 마주했을 것이며 해결을 위한 많은 시간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저의 직업적인 습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세계 어느 곳을 가든지 관심 있고 흥미 있는 먹거리를 보면 먼저 제품의 레이블을 봅니다. 거기에는 제품이 대한 영양분석, 사용된 원료들, 보관방법 및 유통기한 등 모든 정보가 들어있으며 심지어는 프로세스까지도 유추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곳에서 Food Scientist로 먹어보고 리뷰했던 모든 김치 제품들은 그러한 노력과 정성들이 거의 없는 제품들이었습니다. 과연 그 제품들에는 오래전 우리 조상 때부터 만들기 시작해서 우리가 상품으로 개발을 시작하던 25년 전부터 내려온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하기 위해서 쏟아부은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이 정말 조금이라도 들어가 있을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회사의 모든 제품들은 김치의 세계적인 명품이라고 자부합니다. 명품은 어느 분야든 그 제품의 역사를 가지고 스토리와 장인의 혼이 스며들어 있는 진정한 가치를 부여한 품이라고 믿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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