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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SS Nov 03. 2022

성경구절을 타투로 새겼다고?

아직도 조금 받아들이기 힘든 타투문화에 대하여


스스로 개방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도 머리 묶고 수염 기르고 귀걸이 하며 자유로운 인생이라고 자부하며 살아왔기에 아이들에게도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을 위해 많은 제약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가지 아직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있는데 그것은 타투(Tatoo)입니다. 우리가 문신이라 부르는 타투에 대해서는 사춘기인 학창 시절부터 트라우마가 좀 있어서 그런지 선입견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제 모습이 잘 바뀌질 않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인간은 수천 년 동안 몸에 문신을 새겼다고 합니다. 때로는 평범하고 정교하게 그리고 개인적이면서 영구적인 디자인은 부적, 지위의 상징, 사랑의 선언, 종교적 신념의 표시나 장식품, 심지어 처벌의 형태로 다양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서양에서의 문신은 다양한 문화에 속하는 영구적인 형태의 보디 아트로 여겨져 왔습니다. 문신은 수천 년 전 이집트에서 발견된 미라의 피부에서도 발견되며 이를 통해 고대 예술의 한 형식이라는 명확한 증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 중국의 유교 문화권에서 문신은 주로 야만인의 풍습으로 여겨왔지만 일부 증표나 개성의 의미로 하는 문신도 있었습니다. 고대 중국 소설에서 일부 묘사되는 주인공의 문신은 개성으로 보지만 형벌로 문신을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는데 문신을 죄인에게 새기는 낙인으로 사용했으며 노예에게는 문신이 주인이 있다는 증표로 사용되었습니다. 중죄인에게는 죄상을 얼굴 혹은 팔에 새김으로써 범죄경력이 있는 자임을 알리고 수치심을 주려는 형벌로 사용했는데, 현재의 '실명 공개'나 '전자 발찌'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죄상을 몸에 새긴 채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당시 기준으로도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라 후대로 갈수록 빈도가 줄어들었습니다.




저의 학창 시절 타투의 기억은 주로 범죄와 지근거리에 있는 분들이 팔뚝에 '바르게 살자' '의리' '우정' 같은 문구를 잉크로 써넣은 (그려 넣은) 좀 조악한 수준의 것으로 남아있습니다. 실제로 고등학교 시절 교내에서 주먹 꽤나 쓴다며 깍두기 머리 형님들의 세계에 일찍 발을 담근 학교 학생들 중 몇 명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교복을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단순히 몸에 그려진 문신이 발견되어 이유 없이 무차별로 검거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유명한 삼청교육대에 강제로 끌려갔지만 무사히(?) 수료하고 돌아와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인 월요 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의 훈화 대신 단상에 올라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들의 살벌한 추억(?)을 되살리는 간증을 생각납니다.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처음으로 일본 오사카에 출장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의 거래처를 방문하여 업무 뒤 저녁 술자리에서의 과음으로 다음날 갔던 사우나에서 마주친 그 화려한 야쿠자들의 문신은 저에게 일종의 공포감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한 가지 색으로만 된 흑백 티브이를 보다 처음으로 컬러 티브이를 본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탕 안의 잠겨있던 몸을 일으키며 나타난 온몸을 휘감는 화려한 색상의 용과 호랑이의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은 한 동안 머리에서 잘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릴 때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가끔 눈썹 문신을 한 분들과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할 때는 눈 주위의 푸른색으로 서슬 퍼런 섬뜩한 느낌을 받은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캐나다에서의 타투는 하나의 표현예술로 받아들여져 수많은 사람이 다양한 형태와 색의 타투를 몸 곳곳에 하고 있고 심지어 북미에서 리얼리티 TV Show 'Ink Master'로 10년 넘게 방영되며 많은 마니아들의 열광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수많은 타투 전문점들이 성업하고 있으며 타투 비용은 크기와 색상, 사이즈, 심지어  타투이스트의 유명도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인데 대략 200~2,000불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Google


아이들이 커가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너희들이 타투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저의 요청은 어느 정도 지켜지는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몇 해 전 여름 캐나다를 방문한 친구의 가족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성인이 된 친구의 두 아이들도 함께한 자리였고 그중 디자인일을 하는 친구 큰 아이가 꺼낸 타투에 대한 이야기가 화재에 올랐습니다.


친구 큰아이: "저는 기회가 되면 타투를 정말 하고 싶은데 부모님이 무조건 반대를 하세요."

친구: "타투는 안된다. 내가 죽고 난 후에라도 하지 마라."

친구 큰아이: (저를 쳐다보며) "아저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 "나도 다른 건 몰라도 타투는 반댈세."

친구 큰아이: "타투도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 중의 하나인데 왜 그렇게 기성세대들은 색안경을 쓰고 반대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타투에 대한 논쟁이 한창일 때 저의 큰 아이가 외출했다 돌아와 식사자리에 함께 했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화기애애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친구의 큰 아들이 갑자기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빠 그런데 이 누나는 팔 안쪽에 타투를 했는데 보기 좋아요. 저도 한번 해볼게요. 허락해 주세요."


하며 큰 아이를 지목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식탁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저의 큰 아이에게로 향했습니다.


 아이: "아! 네... 얼마 전에 했어요." 


하며 팔이 짧은 티셔츠를 걷어서 보여주는 데 어깨부터 내려오는 팔 안쪽에 문신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순간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이야기했건만...


친구의 가족이 떠난 후 큰 아이와 대화할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 "아빠가 네가 하고자 하는 어떤 것에 대하여 하지 말 것을 강요한 적이 있었니? 어떻게 하지 말라고 부탁한 타투를 아무런 이야기 없이 그렇게 쉽게 해 버릴 수가 있니."

아이: "제 외모나 몸을 꾸미고자 하는 행동에 대해 성인인 제가 아빠에게 꼭 허락을 받아야 하나요?"

나: "물론 아니지만 타투에 대해서는 어릴 적부 그렇게 하지 말 것을 부탁하지 않았니?"

아이: "...."

나: "더구나 성경에도 몸에 문신을 하는 그러한 행위는 하지 말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걸 잘 알지 않니?"

큰 아이: "그래서 성경 말씀을 타투로 새겼어요."

나: "뭐라고?


! 식사 때에서 끝자리에 앉았고 언뜻 보아서 몰랐는데 다시 자세히 타투를 보니 히브리어로 되어있었습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는 것 같아 거기서 끝냈습니다. 큰 아이의 행동에 대한 배신감과 이해해주지 못하는 아빠에 대한 야속함이 엉켜  이후로 큰 아이와는 한동안 서로 정겨운 대화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큰 아이는 2년 뒤 자기가 그동안 준비한 집으로 독립해서 나갔고 이제는 가끔 한 달에 한번 집에 오거나 가족 모임 때에나 볼 수 있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와이프는 아직도 그때의 타투 문제 때문에 섭섭하냐고 묻습니다. 저는 질문에 답변 대신


'자식은 어릴 적 품 안의 자식이지 다 크면 아무 소용없다'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와이프가 그러더군요.


'부모는 자식에게 잘해준 것만 기억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섭섭했던 것만 기억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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